패권 경쟁의 연장선이자 국가안보 전략
현지 바이오테크기업들도 강하게 반발
美 특허비중 높은 韓 기업 피해 불보듯
각종 세금에 특허 수수료까지 “이중과세”
기업, 출원 줄일듯…“정부 협상력 필요”

트럼프 행정부의 특허제도 개편은 명분상 미국 재정 건전화와 세수 확대지만, 그 배경에는 중국 기업 견제 의도가 뚜렷하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협상이 교착 상태인 가운데, 미국 정부는 특허 등록 유지비용 구조를 ‘정액제’에서 ‘특허 가치 비례 요율제(1~5%)’로 바꾸는 초강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특허 시스템 개편은 235년 간 유지돼온 미국 특허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평가된다. 특허는 발명과 기술을 보호하며 공개를 통해 후속 연구의 기반을 제공하는 미국 경제의 핵심 제도다.
미국 상무부가 고려 중인 새 수수료 체계는 미국에 수만 건의 특허를 보유한 중국 화웨이, BOE 등 첨단 제조·인공지능(AI)·디스플레이 분야 중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에 직접적인 ‘비용 장벽’을 세우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조치는 미국 내 특허 등록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들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공산이 크다. 현재도 15% 수준의 상호 관세 부담을 짊어진 상황에서 특허 수수료까지 대폭 인상될 경우 기업들의 대미 사업 비용 구조가 심각하게 악화 될 수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이미 미국 내 매출에 대해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납부하고 있음에도 특허 가치에 따라 별도의 ‘수수료’를 다시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이중과세”로 보고 있다. 정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해외 특허 출원은 원래도 국내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일이었고, 이번 조치로 그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출원 시 국내 대리인뿐 아니라 현지 대리인을 병행해야 하는데, 거기에 가치 연동 수수료까지 붙는다면 기업들은 출원 자체를 줄이거나 등록 특허 중 일부는 연체료를 내지 않고 소멸시키는 방식으로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특허 출원 전 시장성 검토, 비용 분석이 매우 중요해졌으며, 전략 산업에 대해선 정부 차원의 보조나 협상력 강화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이번 조치가 단순한 수수료 인상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 불확실성’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도 위협 요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요율 범위(1~5%)만 제시했을 뿐, 특허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 내부에서도 반발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특허 제도 개편은 현지 바이오테크 기업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으며, 사업 단체들은 이미 특허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크 램리 스탠퍼드대 교수는 “대부분의 특허 출원자는 해당 특허의 실제 가치를 사전에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처럼 모호한 기준으로 비용을 부과하는 것은 혁신을 위축시키는 최악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이 단순한 수익 증대를 넘어 기술패권 경쟁의 연장선이자 국가안보 전략으로 결합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중국이 희토류 등 전략물자 수출을 제한할 경우, 미국은 특허 수수료와 관세를 동시에 무기화하며 대응에 나설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외국 기업의 미국 진입 비용은 구조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가치 기반 특허 수수료제’가 단순한 제도 개정 수준을 넘어 글로벌 기업 경영환경을 직접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또 다른 대형 정책 변수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로서는 기존보다 훨씬 정교하고 전략적인 특허 관리·출원 전략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토로했다.
미국 특허청은 연간 약 45억 달러의 자체 수입으로 운영되는 자체 자금 조달 기관이다. 하지만 새 수수료 구조가 도입되면 수입이 수십억 달러 이상 증가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운영 비용을 넘어 국가 재정에 직접 편입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특허청의 수수료 책정 권한은 내년 만료 예정으로, 의회의 결정 여부에 따라 계획의 실현 여부가 좌우될 전망이다. 이번 방안을 주도하는 러트닉 상무장관은 전직 월스트리트 금융인이자 특허 보유자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정 수익 확대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는 골드카드 영주권 등의 정책을 앞세워 수익 증대를 도모한 바 있다.
서지용 교수는 “트럼프식 개편은 중국을 겨냥한 정책이지만, 한국 기업은 의도치 않게 피해자로 엮일 가능성이 크다”며 “오히려 이런 상황을 역이용해 미국 진출 한국 기업이 직접 불합리한 구조를 설명하고, 실리를 확보하는 외교적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