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회계법인에 '고용보장' 명시 촉구 의견서 전달

"노동자의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인수ㆍ합병(M&A)은 '회생'이 아니라 '해체'이며 이는 또 다른 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뿐입니다."
강우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 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일회계법인 앞에서 홈플러스의 회생절차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용보장 및 사업 유지ㆍ발전'을 핵심으로 하는 노동조합 공식 의견서를 삼일회계법인에 전달했다. 마트노조는 홈플러스를 비롯해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조직돼 있는 노조로, 홈플러스지부에는 약 28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다.
앞서 서울회생법인은 지난달 20일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에 대해 회생계획 인가 전 기업 인수를 허가했다. 이에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은 인가 전 기업 인수를 위한 투자설명서와 입찰안내서 준비에 돌입했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가 이날 삼일회계법인에 전달한 의견서에는 '투자설명서 등에 △인수자의 고용 승계ㆍ안정 계획 △유통업 중심의 사업 유지와 발전에 관한 청사진 △단체협약 승계 △구조조정 금지 등의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홈플러스의 지속가능한 사업 운영 전략을 명확히 제시하는 인수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측이 이와 같은 의견서를 전달한 것은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구노력에 소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MBK 측이 직접 투자가 아닌 '비용 절감'을 내세워 사실상 홈플러스 폐점을 종용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앞서 MBK 측은 삼일회계법인에 2035년까지 82개 점포만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홈플러스는 2023년 말 기준 전국에 가맹점 72곳·직영점 244곳을 두고 있다.
김주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은 "(MBK 측에서) 비용 절감 노력을 하겠다면서 홈플러스 매장이 들어선 건물의 임대인들에게 임대료를 50%까지 깎아주지 않으면 폐점하겠다고 했고 거의 대다수 매장은 임대료 협상이 안돼 폐점을 통보했다"며 "이 같이 홈플러스를 하루 빨리 청산하겠다는 식의 신호가 올 3월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는 전국 매장의 폐점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했다. 최철한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사무국장은 "홈플러스 점포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약 1000명의 노동자들이 실업상태에 빠지게 된다"며 "삼일회계법인은 홈플러스를 온전히 유통업으로 유지할 수 있는 회사로의 매각을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마트노조 관계자들은 홈플러스 측의 '1조 원 이하 금액으로 인수 가능' 주장에 대해 "홈플러스의 경영은 신경쓰지 않은 채 이익만 취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차입매수(LBO) 방식의 매각을 주장하는 것으로, 진정한 회생이 아닌 투자금 회수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수용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장은 "(MBK의 매각 시도는) 10만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외면한 채 빈 껍데기만 남은 홈플러스를 청산하려는 '먹튀' 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함재규 민주노총 부위원장 역시 "담보물권으로 채권을 상환하면 된다는 주장은 담보이자만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해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날 홈플러스는 삼일회계법인이 법원에 제출한 조사보고서에 기반해 MBK의 보통주 포기, 보유 부동산 자산 담보 활용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하면 인수자가 실제로 투입해야 할 자금은 1조 원 이하로 축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마트노조는 특히 인수 과정에 노조 참여 보장을 요구했다. 안 지부장은 "노동자는 홈플러스의 핵심 이해관계자인 만큼 인수자 모집, 심사, 협상 전 과정에서 정보 제공과 의견 개진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며 "노사공동 협의체를 구성해 잠재 인수자와의 면담, 공개 토론회를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개입도 요청했다. 함 부위원장은 "이재명 정부와 국회는 외국투기자본 기업 철수에 국내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지 않도록 '외투기업 먹튀 방지법' 제정과 청문회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위원장은 "이번 기자회견은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싸움이 단지 임금의 문제가 아니라 유통산업 전반의 지속가능성과 소비자 권익, 지역경제의 안정을 위한 사회적 요구임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마트노조는 3월 4일 MBK가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를 시행한 이후 삭발투쟁에 이어 무기한 단식투쟁을 진행했고 현재 90일 가까이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마트노조는 향후 홈플러스 회생을 위해 정부, 정치권을 대상으로 MBK 및 이해당사자들이 포함된 사회적 대화기구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