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우선배정·의무공개매수에
합병 공정가액·검사인제 도입
기존 주주 이익 고려해야 할 상황
"해외 대규모 펀드 악용 가능성"

여당 주도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국내 기업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대주주의 사익편취를 막고 기존 주주를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기업 계열사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쪼개기 상장’이나 ‘대주주에 유리한 합병’ 논란이 근본적으로 사그라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조항이 핵심이다. 개정안이 기존 주주를 보호하자는 취지인 만큼 기업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 △합병 시 주식 가격뿐 아니라 자산·수익가치 등을 고려한 공정가액 적용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일반 주주에게 신주 의무 배정 △경영권 프리미엄 공유를 위한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합병 시 일반 주주의 합병검사인 청구권 보장 등을 제시했다.
이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기업이 분할하거나 합병하는 과정에서 기존 주주가 소외되던 구조적 문제를 정조준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물적분할 후 상장, 즉 ‘쪼개기 상장’이다. 기업이 특정 사업 부문을 떼어내 100% 자회사로 만든 뒤, 그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시키는 방식은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를 훼손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물적분할 특성상 모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게 되지만, 기존 회사 주주는 새로 상장한 자회사 지분을 아무런 대가 없이 잃게 되기 때문이다.
2021년 LG화학이 배터리 사업 부문을 떼어내 LG에너지솔루션으로 상장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알짜 사업부문이 빠져나가며 LG화학 주가가 급락하자, 주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같은 해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 사업부문을 SK온으로 물적분할하며 모회사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이 대통령의 공약처럼 물적분할 후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우선 배정하게 하면, 이러한 논란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모회사 주주도 자회사 지분을 일부 확보하게 되면 자회사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다.
기업 합병 과정에서 공정가액 적용을 의무화하는 제도도 기존 주주 보호에 방점이 찍혔다. 지금까지 합병가액은 시가 또는 자율적 평가 기준에 따라 결정돼, 지배주주에게 유리하게 조작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기업가치가 책정됐다는 주장이 기존 주주 사이에서 확산하며 소송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도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간 합병 추진 과정에서 적자인 로보틱스의 기업가치가 오히려 두산밥캣보다 높게 산정되자 기존 주주들이 반발했고, 결국 두산그룹은 기존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M&A 과정에서도 대주주가 기존 주주의 이익을 더 고려해야 할 상황이 됐다. 이 대통령이 약속한 공정가액은 합병 시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시가는 물론 자산·수익가치 등 복수 기준을 반영해 계산하는 방식으로, 실질적 기업 가치를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 중점을 둔다. 다양한 가치 기준이 적용되면 합병비율 역시 일반 주주에게 더 공정하게 계산될 수 있다는 취지다. 합병검사인 제도는 합병 과정에서 기존 주주에게 불공정하게 기업가치가 산정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액주주가 합병 절차나 조건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법원이 독립적인 전문가를 선임해 그 과정을 조사하고 검토할 수 있게 된다.
의무공개매수제는 회사의 경영권이 다른 곳으로 넘어갈 때, 일반 주주들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경영권이 매각될 경우 지배주주만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지분을 팔 수 있었고, 소액주주는 이러한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의무공개매수제가 도입되면 일반 주주도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으로 지분을 매각할 수 있게 된다. 상법 권위자로 꼽히는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상사법학회장)는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충돌 문제는 이미 상법 제398조를 통해 통제하고 있어 추가 입법이 필요하지 않다”며 “지금도 주주대표소송 등 소액주주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지만 그 사례가 많지 않다. 결국 개정된 법은 한국 상법을 잘 연구한 해외 대규모 펀드들이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