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OBBB, IRA 생산 혜택 현행 유지
중국 공급망 규제는 한층 정교해져
단기적 관세 절감 전략 속 공급망 재편 속도내야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강화와 탈중국 공급망 구축 기조에 따라 국내 배터리 업계도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북미 시장에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온 배터리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관세 절감 전략을 통해 위기를 관리하고, 장기적으로는 공급망 재편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와 삼일PwC는 25일 서울 용산구 삼일PwC 본사에서 ‘최신 미국·EU(유럽연합) 통상 정책 및 대응 전략 세미나: K-Battery, 위기에서 찾는 기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최근 미국 상원이 발표한 정부예산 조정 법안(OBBB, One Big Beautiful Bill) 초안의 주요 내용과 전망, 업계 대응 방안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소주현 삼일PwC Tax 파트너는 “OBBB 상원안은 하원안에 비해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액공제 규정이 사실상 유지됐고, 해외우려기업(FEOC) 규정을 정교하게 나눠 중국 견제 기조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IRA 폐지를 공언했던 만큼 국내 배터리 업계도 법안 존속 여부에 주목해왔다. IRA 시행 이후 지난 2년간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발표한 투자 프로젝트는 총 37건, 198억4320만 달러 규모로, 특히 반도체와 전기차·배터리를 중심으로 투자가 활발히 이뤄졌다.
OBBB 하원안은 생산세액공제(AMPC·45X) 종료 시점을 기존 2032년에서 2031년으로 1년 앞당기고, 제3자 양도도 2027년까지만 허용하는 등 IRA 혜택이 크게 축소되는 방향이었으나 상원안은 세액공제 종료 시점을 기존 IRA와 동일하게 유지하고 제3자 양도도 허용하는 등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됐다.
중국 공급망 규제는 한층 강화됐다. 상원안은 금지외국기관(PFE)에 대한 실질적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정량적 기준인 ‘실질 지원 비용 비율(MACR)’을 새로 도입했다. MACR은 배터리 생산에 사용되는 직접 재료비 중 비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율로, 법안 발효 첫해인 2026년에는 60% 이상, 이후 매년 5%p(포인트)씩 높이도록 규정한다. MACR 규정이 확정되면 중국 기업의 미국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다만 상원안은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최대 7500달러의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와 상업용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유지했다. 소 파트너는 “배터리 기업들은 전방 산업인 전기차와 후방의 재생에너지 산업이 영향을 받아 수요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소 파트너는 또 미국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절감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 파트너는 “관세는 기본적으로 수입가격에 일정 비율을 곱하는 구조로, 가격을 낮추는 것이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관세 대응 전략”이라며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하거나 중계무역 시 최초 수출가격을 인정받는 ‘퍼스트 세일(First Sale)’ 제도 활용 등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장기적으로는 OBBB 나 중국 견제책을 분석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EU가 추진 중인 배터리 규정(EUBR),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 핵심원자재법(CRMA) 등 환경과 안보를 연계한 통상 규제에 대해 국내 기업들이 선제적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추적성 관리 체계 등의 대응 방안이 제시됐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배터리업계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K-이니셔티브의 중심축으로 K-배터리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새정부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며 “초격차 기술 확보 연구개발(R&D) 강화,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 배터리 삼각벨트 조성, 에너지 고속도로와 연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 사용후 배터리 산업 육성 등 K-배터리 관련 대선 공약이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내실 있게 반영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