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중기부 자료제출 명령권 도입 여부도 관심

공정과 상생의 시장질서 구축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새 정부가 한 해 300건에 가까운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근절할 수 있을지 중소기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일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년 기술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의 연간 기술침해 건수는 약 299건으로 집계됐다. 거래나 협상 과정에서 대기업 등이 중소기업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무단 요구하거나 탈취하는 사례가 빈번하며, 피해 기업당 평균 손실액은 18억2000만 원으로 추정돼 중소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피해 규모에 비해 법적 구제 수단의 실효성이 낮다는 점이다. 기술 침해 민사소송은 1심 판결까지 평균 1년 이상이 소요되며, 승소율은 32.9%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령 어렵게 승소하더라도 청구한 손해액 대비 실제 인정되는 금액은 평균 17.5%에 불과해, 중소기업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도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받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 결과도 이 같은 현실을 뒷받침한다. 2023년 중기중앙회의 ‘기술탈취 근절 위한 정책 수요조사’에 따르면 기술 탈취 피해를 경험한 업체 중 43.8%는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기술탈취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핵심 증거를 기술을 탈취한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어 중소기업 혼자 대응하는 것이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공정한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새 정부는 기술 탈취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에 팔을 걷어붙일 걸로 보여 업계의 기대가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 ‘기술을 탈취한 기업은 망한다’라는 대원칙 아래 입법과 정책 집행,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담았다. 구체적인 핵심 방안으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손해배상 소송 시 법원의 공정위, 중기부에 대한 자료제출명령권 신설 등을 제시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송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의 요구에 따라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기술 탈취 입증과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직접 조사·수집해 증거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의 기술 탈취 피해 입증 부담을 획기적으로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자료제출명령권 신설의 경우 중기중앙회 설문에서 피해 입증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의 88.0%가 ‘필요하다’ 응답할 정도로 신속한 도입이 요구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은 이외에도 불공정거래행위 등으로 손해를 입은 피해자와 피해 기업의 법률 자문, 소송 지원, 경영안정자금 등으로 활용 가능한 불공정거래 피해구제기금 조성,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실효성 강화, 기술보호 선도기업 육성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우위에 따라 기술 탈취 등 불공정행위가 있었고 이것을 시정하는 방향으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나온 공약들이라 기대가 된다”면서 “다만 실천 가능할 지에 대한 부분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선언적 의미라는 측면에서도 대기업들이 앞으로 좀 더 조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