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는 왜 '독기 룩'을 금지했나 [솔드아웃]

입력 2025-05-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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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며칠 전, 전 세계 스타일리스트들에게 '비상'이 떨어졌을 겁니다. 제78회 칸 국제 영화제가 개막을 앞두고 중대한(?) 소식을 전한 건데요. 한층 엄격해진 규칙으로, 레드카펫을 밟을 배우와 인플루언서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죠.

새롭게 발표된 규칙의 골자는 복장입니다. 과도한 노출을 금지하고, 부피가 큰 의상도 허용하지 않았는데요. 통상 적지 않은 스타들이 레드카펫 위에서 과감하고 파격적인 룩으로 화제를 빚어왔고, 이번 행사에서도 파격적인 의상을 계획했을 겁니다. 실제로 유명 스타들이 칸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새로운 드레스를 급하게 구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죠.

사실 칸 영화제의 엄격한 의상 규율이 새로운 건 아닙니다. 칸 영화제는 당초 깐깐한 복장 규율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요. 이번 복장 규정에 대해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주최 측이 이해 간다는 반응도 상존해 눈길을 끌죠. 그렇다면 칸 영화제가 복장 규제를 명문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해 5월 20일 벨라 하디드가 제77회 칸 국제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지난해 5월 20일 벨라 하디드가 제77회 칸 국제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독기 룩' 이어지는 레드카펫인데…"누드·트레인 금지!"

칸 영화제는 13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도시 칸 일대에서 개막했습니다. 황금종려상 등 주요 상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경쟁 부문엔 22편의 작품이 초청됐지만, 한국 장편영화는 올해 한 편도 초청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한국 장편영화의 칸 영화제 초청 불발은 2013년 이후 12년 만의 일입니다. 대신 홍상수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됐고, 배우 김고은과 한소희가 브랜드 엠버서더로서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영화제를 향한 관심은 뜨겁디뜨겁습니다. 할리우드 원로 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는 개막식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시상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속물'이라고 직격하는 등 전 세계 영화인들이 정치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고 있는데요.

복장으로도 화제를 빚었습니다. 세계적인 영화제인 만큼 레드카펫 행사에도 적잖은 관심이 쏠렸는데요. 칸 영화제는 축제 개막 하루 전인 1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돌연 '노출 금지'를 공지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영화제 측은 "레드카펫은 물론 영화제의 다른 모든 구역에서 노출은 금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유는 '품위 유지' 때문이었는데요. 프랑스 예법을 반영한 기존 규정을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라고도 영화제 측은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더 있습니다. 영화제 측은 "특히 긴 트레인이 달리는 등 부피가 큰 의상은 다른 참석자들의 동선에 방해가 되거나 극장 내 좌석 배치에 불편을 줄 수 있으니 허용되지 않는다"며 "영화제 안내팀은 이 같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의 레드카펫 출입을 제한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죠. 트레인은 드레스 뒤로 늘어지는 치맛자락을 의미하는데요. 너무 크거나 긴 드레스는 다른 이들에게 방해될 수 있으니 입지 말라는 뜻입니다.

칸 영화제는 오랜 전통의 영화제 중에서도 엄격하고 까다로운 복장 규정으로 유명합니다.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들에게만 이 복장 규율을 적용하는 것도 아닌데요. 영화제 행사에 참석하는 영화인들뿐 아니라 취재진, 그리고 관객까지도 영화제가 제시하는 복장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남자는 턱시도에 보타이 혹은 넥타이를 매야 하고, 구두도 꼭 챙겨 신어야 하고요. 여자는 드레스, 테일러드 팬츠 수트, 하이힐 등을 착용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규칙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도 팽배합니다.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어버리고 맨발로 걷는 퍼포먼스로 반대 의사를 드러낸 바 있죠.

다만 최근에는 이 같은 규정이 덜 빡빡해졌다는 의견도 나오는데요. 상영관을 찾은 일부 관객, 취재진이 운동화나 백팩 등 캐주얼한 차림인 사례도 수년 전 포착된 바 있습니다.

▲카니예 웨스트와 비앙카 센소리가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즈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했다. (UPI/연합뉴스)
▲카니예 웨스트와 비앙카 센소리가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즈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했다. (UPI/연합뉴스)

최근 시상식 달군 '네이키드 드레스'…비앙카 착장이 '한 방'이었나

주목할 지점은 주최 측이 '이해가 간다'는 공감도 상당하다는 겁니다. 최근 이어진 '네이키드 드레스' 트렌드에 지칠 대로 지쳤다는 반응이죠.

네이키드 드레스(naked dress), 말 그대로 '알몸'을 표방(?)하는 스타일입니다. 주요 부위를 간신히 가린 채 몸의 라인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담한 패션인데요. 트렌드의 핵심은 '적게 가릴수록 화제를 빚는다'는 겁니다. 국내 네티즌들은 이를 '독기 룩'으로 일컫는데요. 화제성을 장악하겠다는, 취재진의 관심을 독차지하겠다는 독기가 가득한 룩이라는 거죠.

패션 매거진 인스타일 피처 디렉터인 마들렌 허시는 "네이키드 드레스 트렌드는 런웨이에서 시작됐지만, 셀러브리티들의 레드카펫 패션이 이를 더욱 부추긴다"며 "스타들과 스타일리스트들이 이 스타일에 매료되고 있다"고 설명했죠.

칸 영화제에서도 이 같은 룩이 포착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모델 벨라 하디드가 상반신을 훤히 드러내는 시스루 형태의 드레스를 입어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죠. 그 전에도 밀라 요보비치, 빅토리아 아브릴, 켄달 제너, 일로나 스탈레르, 신디 킴벌리 등 셀 수 없이 많은 배우와 인플루언서들이 '노출'이라는 코드로 다양한 스타일을 칸 영화제에서 선보여왔습니다.

다만 네이키드 드레스에도 '끝판왕'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칸 영화제가 '누드'를 금지한 것도 이 사람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힙합 스타 예(카니예 웨스트·칸예)의 아내 비앙카 센소리가 그 주인공입니다.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 제67회 그래미 어워즈에 칸예와 함께 참석한 비앙카는 레드카펫 행사에 퍼 코트를 입고 등장했는데요. 코트를 벗자 사실상 전라의 몸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비앙카는 외투 안에 짧은 드레스를 입었는데요. 옷감이 얇디얇은 스타킹 소재라 몸이 적나라하게 보였죠. 일부 신체 부위만 피부색과 비슷한 천을 덧대서 가렸을 뿐이었습니다. 칸예는 몇 발자국 떨어진 채 포즈를 취하는 비앙카를 감상하듯 지켜봤는데요. 이때 칸예의 태도와 맞물려 현지에서도 두 사람의 기행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 밖에도 멧 갈라,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등 주요 행사마다 경쟁적으로 파격적인 패션이 등장했는데요.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칸 영화제의 금지령은 일종의 선 긋기와도 같았습니다. 칸 영화제 측은 이번 규칙의 배경을 품위 유지 및 프랑스 법률 준수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최근 글로벌 시상식에서 '노출 경쟁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 분위기를 반영한 조치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죠.

▲13일(현지시간) 벨라 하디드가 제78회 칸 국제 영화제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벨라 하디드 인스타그램 캡처)
▲13일(현지시간) 벨라 하디드가 제78회 칸 국제 영화제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벨라 하디드 인스타그램 캡처)

주요 스폰서 모델도 쫓아낼 수 있을까?

칸 영화제의 복장 규율 강화 조치가 발표된 뒤 실제 현장으로 관심이 쏠렸습니다. 레드카펫을 밟는 이들이 과연 어떤 드레스를 입고 나올지 궁금증이 높아진 건데요.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할리 베리조차 드레스를 바꿔야 했습니다. 그는 "당초 입으려고 했던 가우라브 굽타의 더 멋진 드레스를 포기해야 했다"면서 긴 레이스 문제로 의상을 교체했다고 털어놨죠. 그는 대신 자크뮈스의 블랙&화이트 스트라이프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실제로 레드카펫에서 쫓겨난 사례도 발견됐습니다.

중화권 매체 ET투데이 등에 따르면 자오잉쯔는 13일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했는데, 얼마 뒤 현장 관계자로부터 '자리를 떠나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받았고 이내 퇴장했습니다. 당시 자오잉쯔가 관계자에 의해 쫓겨나는 듯한 영상도 온라인에 공유되면서 갑론을박이 일었죠.

자오잉쯔의 퇴장 이유를 두고 일각에선 그가 칸 영화제 복장 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오는데요. 혹은 레드카펫 포토월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 다음 참가자들의 원활한 입장을 위해 퇴장을 요청받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자오잉쯔는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네티즌과의 댓글을 통해 강제 퇴장당한 게 아니라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무엇이 누드고, 과도한 노출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의문도 상당합니다. 벨라 하디드는 이번 행사에서 생로랑의 블랙 드레스를 입었는데요. 허벅지와 가슴 옆 라인이 드러나는 과감한 커팅이 인상적입니다. 컷 아웃 디테일은 뒤쪽까지 이어지면서 등허리가 시원하게 드러났는데요. '노출 금지'인 이번 드레스코드를 감안하면 리스크가 상당한 옷입니다. 그러나 벨라에 대한 주최 측 제재는 없었습니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사실. 벨라는 전통 스위스 시계와 하이 주얼리 브랜드 쇼파드의 뮤즈이자 앰배서더인데요. 쇼파드는 칸 영화제의 주요 스폰서입니다.

칸 영화제가 밝힌 규정은 모든 참석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전제로 합니다. 영화인뿐만 아니라 브랜드 앰배서더, 광고 모델, 인플루언서도 예외는 아닌데요.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수십억 원 규모의 스폰서십이 걸린 브랜드 행사, 그 브랜드의 글로벌 모델인 셀럽이 칸 영화제의 규정을 어길 경우, 영화제 측은 정말 퇴장 조치를 단행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소녀시대 멤버이자 배우인 윤아를 비롯한 유색 인종 셀럽들을 냉대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칸 영화제의 이면이 또다시 거론되는 것도 괜한 일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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