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GDP 걱정해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

입력 2023-12-13 05:00 수정 2023-12-1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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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정치경제부 차장

 “너 어디 (대학)과 갈 건지 정했어?” “나 심리학과 가고 싶었는데, 다 통합돼서 ‘심리생활체육미디어국어영문학과’ 가려고.”

 ‘심리생활체육미디어국어영문학과’에 가고 싶은 고3 학생은 입시 설명회에 간다. 학생은 1명, 수십 명의 대학교 총장들이 참석해 직접 학교 홍보에 나선다. 개그맨 출신들이 만든 유튜브 채널 ‘킥서비스’에서 그려본 2033년의 모습이다. 초저출산시대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이처럼 맛깔나게 표현한 콘텐츠가 또 있을까.

 ‘한국’과 ‘초저출산’ 단어 사이에 등호(=)가 붙었다. 해외에서도 걱정이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얼마 전 “(한국) 인구감소는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은행도 관련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금 추세(3분기 합계출산율 0.7명)에서 획기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마이너스(-) 경제성장률(GDP 증가율)을 기록할 것이란 경고를 담았다.

 한 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엄중한 메시지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출산’에 대한 접근 논리, 잘못됐다. ‘저출산국가’란 5음절에는 개인의 선택에 해당하는 ‘출산’과 국민·영토·주권을 갖춘 대집단 ‘국가’란 단어가 나란히 붙어있다. 개인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이 뒤섞여 있는 복잡한 단어다.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다 국가가 망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관점에서 본 초저출산시대 접근 논리는 ‘초저출산 → 생산가능인구 급감 → 국가 위기론’이다. 국가의 미래가 어두우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은 출산율, GDP라는 국가통계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관점에서 출산은 곧 양육자(한부모, 두부모, 입양, 조손가정 모두)들의 심리적·경제적 책임의 시작이다. 아이의 마음과 신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양육자의 바람, 사랑, 관심, 걱정 등 새로운 감정을 마주해야 하고, ‘의·식·주’ 기본 생활을 뒷받침할 수 있는 돈도 준비해야 한다. 양육자의 심리적-경제적 여건에 따라 육아 환경은 달라진다.

 한국은행은 저출산 보고서에서 ‘일관되고 지속적인 저출산 정책’이 필요하다며 호주의 한 정책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사례로 제시했다. 호주는 2004년부터 결혼 여부 및 가구 소득에 관계없이 출산하거나 2세 미만 아이를 입양한 여성에게 아동수당으로 3000호주달러를 지급했다. 정책 효과 여부를 판단할 수 없으나 호주는 이 정책 이후 출산율이 2.02명까지 올랐다. 이 정책은 재정지출 논란으로 2013년에 폐지됐다.

 출산율은 단어 그대로 그 해에 아이가 몇 명 태어났는지를 합계한 숫자다. 그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사회의 구성원이 됐는지를 말하는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저출산 정책은 재정지출 대비 출산율이 얼마나 높아졌는지가 아니다.

 해당 정책을 수혜한 아이와 가정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활의 기본 요소에 걱정없이 지낼 수 있는 제도다. 출산, 양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해는 두말할 것도 없다.

 평균 기대수명 82.7세(2022년 기준)다. 정부는 숫자(출산율, GDP) 걱정 이전에 개인의 한 생애가 평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인지 반문하고, 또 반문해야 한다. 아이의 한 생애가 평탄하길 바라는 부모는 경제성장률을 걱정해 아이를 낳지 않는다. jhs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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