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무신과 차떼기, 그리고 돈봉투

입력 2023-05-04 05:00 수정 2023-08-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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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사회경제부장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연일 관계자에 대한 강제수사와 소환에 나서며 고삐를 죄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의 피의자를 최소 10명으로 보고 있는데, 최대 수혜자이자 수사 종착지 격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도 사건 ‘공범’으로 적시하고 관계자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수사 대상자들의 반격도 거세지고 있다. 의혹의 핵심 관계자로 알려진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은 1일 검찰이 사건의 주요 증거물인 ‘녹음파일’을 외부에 흘렸다며 수사팀 검사 등을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사건이 곁가지를 친 셈이다. 또 송 전 대표는 이튿날 검찰에 자진 출두해 검찰의 수사가 피의사실이 유출된 ‘짜맞추기식 수사’라고 비판하면서 “주위 사람 괴롭히지 말고 저를 구속시켜달라”고 말했다.

송 전 대표가 부르지도 않은 검찰에 ‘셀프 출석’해 기자회견만 하고 돌아간 것은 정치적 ‘쇼’라는 인상이 깊다. 돈봉투 의혹에 연루된 윤관석·이성만 의원이 3일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그간 당 차원에서 자정 노력보다는 방어기제만 발동한 것은 볼썽사납다. 도긴개긴일 터인데 이를 두고 연일 공방을 벌이는 정치권도 꼴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증거에 입각해 혐의를 밝히는 것은 검찰에게 의무에 있는 일이다. 혹여나 야당의 주장처럼 기획수사나 증거조작, 피의사실 유출 등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 차체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검찰의 몫이니 지켜볼 일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현대사에 금권정치(Plutocracy)의 역사는 추억처럼 아련하다. 자유당 시절 이른바 ‘고무신 선거’는 금권선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금도 생생한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은 그 규모와 참신한 발상에 뭇사람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잊을 만하니 튀어나온 민주당의 돈봉투 살포는 아직도 우리 정치권이 구린내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찔하다.

배를 곯던 시절 그 귀하디귀한 고무신을 뿌린 것은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나오게 하려는 것이었으니 애교로 봐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현금을 가득 실은 트럭을 통째 건네받은 대담한 차떼기는 정치선진화 이전의 일이었으니 추억쯤으로 지나가도 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당내 경선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살포된 눈먼 돈봉투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금품 살포가 아니었으니 눈감고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더더욱 아니다. 불법정치자금의 규모와 경중을 떠나 모두 그른 일임에 틀림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불법정치자금을 모으고 전달하고 뿌리는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그야말로 창의적이고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고안해 내는 걸 보면 정치인들에게 ‘참 열심히들 산다’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할 판이다. 상황과 시기와 형식이 모두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런 불법정치자금 모금 및 살포 행위는 후진적 매표 행위에 다름없고 졸렬한 정치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선진국 문턱에 있는데 정치는 마냥 딱 그 수준임을 방증한다. 그러니 정권이 바뀌고, 국회에 입성하는 의원이 달라져도 ‘초록이 동색’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돈과 권력은 하나같이 힘이 강하다.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그 둘이 결합하면 그 힘은 배가된다. 하지만 자칫 돈으로 쌓은 권력은 허망하고 권력으로 모은 돈은 허무하다. 둘 다 끈이 떨어지면 배신한다는 묘한 공통점 때문이다. 금권정치는 말 그대로 돈의 힘으로 지배하는 정치 체제다. 정치가 민의(民意)가 아닌 ‘쩐의(錢意)’를 살필 때 민심은 늘 돌아섰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를 공격하는 국민의힘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 차제에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고무신이라는 나쁜 추억도, 차떼기 악몽도, 돈봉투 망령도 이제 청산해야 할 비루한 과거의 잔재다. 잔재여야 한다.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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