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아닌 육체가 대세…작가들이 ‘몸’에 주목하는 이유

입력 2022-06-17 15:32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몸을 향한 공포와 혐오가 더 커졌다"

예부터 영혼과 정신, 마음은 육체보다 중요한 취급을 받았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고,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인간은 단지 자기 마음의 포로일 뿐”이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명언도 빼놓을 수 없다. 데카르트 역시 인간의 본질을 정신과 몸으로 나눈 뒤 정신을 신성시했다. 이에 반해 몸은 하찮고, 짐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신의 중요함에 가려져 있던 육체가 주목받고 있다. 몸은 현재의 작가들이 가장 천착하는 주제 중 하나다. 2년 전 공지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 당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경남 하동에 내려가 흙을 만지며 사는 인생을 거론하며 “결론을 육체로 냈다”고 말한 바 있다. 은희경 역시 최근 ‘새의 선물’ 100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몸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은희경은 “몸은 인간이 가진 조건일 수도 있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또 세상이 나를 평가하고 왜곡하는 오해의 출발점이기도 하다”며 “몸은 인간의 유한함을 성찰하게 하는데, 그런 몸에 대한 생각을 소설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28일부터 열리는 대산문화재단 주관 ‘2022 젊은 작가 포럼’의 다섯 가지 키워드(코로나, 여성, 책, 노동, 몸)에도 몸이 포함돼 있다.

몸이 뜨고 있는 이유는 최근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김건형 문학평론가는 “지난 몇 년 동안 팬데믹 속에서 아픈 몸, 병든 몸, 감염된 몸 등 몸을 향한 공포와 혐오가 더욱 커졌다”며 “이는 페미니즘 리부트나 여성, 장애인, 퀴어 혐오와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몸을 인간의 수동적인 환경이 아니라 인간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말하는 방법이나 원리로 바꾸어 말함으로써 그런 혐오에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 문학에서 몸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몸을 주어진 조건으로 국한하지 않고, 움직이고 말하는 능동적인 몸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김 평론가의 말처럼 최근 다양한 몸의 가능성을 말하는 책들이 다수 출간되고 있다. 4월에는 “우리는 아무 몸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김소민의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가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이 책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 등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러 종류의 차별이 몸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혐오의 대상을 구별하는 핵심은 몸이다. 몸이 차별의 근거가 된다. 혐오는 이분법을 타고 흐른다”며 “몸의 차이를 근거로 차별하면 쉽게, 오래 착취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5월에는 인류학자 사이먼 로버츠의 ‘뇌가 아니라 몸이다’가 출간됐다. 로버츠는 이 책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은 뇌가 아닌 몸에서 발현된다고 말한다. 그는 “수 세기 동안 서구에서는 세상을 이해하고 우리를 지능적으로 만드는 것에서 몸의 역할과 잠재력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 최악일 때는 몸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원천이라고, 또는 단순히 주관적인 정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며 “모든 것을 가장 근본적인 패턴, 구조 또는 본질로 귀결시키려는 환원주의적 관점의 해독제는 바로 몸에 주목하는 것”이라며 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몸은 에세이나 비평서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6월 초에는 김상원, 가양, 녹희재, 이건해, 우재윤 등 4명의 문인이 참여한 ‘내 몸을 임대합니다’가 출간돼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타인의 신체를 빼앗는 신체강탈자를 소재로 한 문학 공모전인 ‘제2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이다. 특히 당선작인 ‘맑시스트’는 자본주의의 허상을 겨냥하며 집이 아닌 사람의 몸을 임대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운 소설이다.

‘보행 연습’에서 몸을 둘러싼 규범과 경계를 교란하는 문체로 주목받은 돌기민은 이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몸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삶을 온전히 설명해내기 어렵다고 믿는 작가들이 많은 것 같다. 몸은 사회적 억압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라며 “한국 사회가 여성과 퀴어의 몸, 장애 혹은 질병이 있는 몸, 아름답지 않은 몸을 멸시하는 한, 몸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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