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재인 보유국'이 끝난 뒤

입력 2021-06-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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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환 정치경제부 부장

억울하게 옥살이하던 사람들을 구제하던 인권변호사로서의 의무감이 남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문재인 대통령이 중책을 맡기는 인물들을 보면 유독 피의자 신분인 경우가 많다. 특히 법을 다루는 역할을 맡은 법조계에서 피의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우선 법에 관해 국가의 컨트롤타워 역할이라 할 수 있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보자. 박 장관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과 관련해 폭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다. 2019년 공수처 설치법 등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것을 두고 여야가 물리적 충돌을 빚었을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그가 야당 인사들을 폭행했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지난해 두 차례 공판에 출석했던 그는 폭행 피고인인 상태에서 올해 1월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고, 5월 말에는 재판에도 섰다. 현직 법무부 장관이 형사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박 장관은 공판에 출석하며 “법을 집행하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재판받는 것은 민망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명자인 문 대통령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은 박 장관의 공판이 열린 지 불과 며칠 뒤 야당의 반발과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고 김오수 검찰총장을 임명했다. 김 총장은 이른바 ‘김학의 불법 출국 금지 사건’의 피의자다. 법무차관 때는 정치적 중립 위반, 변호사 땐 전관예우와 이해 충돌 의혹을 받고 있다. 공직에 오를 자격이 없다는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문 대통령은 국회 검증 시한이 끝나자마자 임명했다.

3단 콤보의 피니시 블로우(권투에서 상대를 결정적으로 제압하는 마지막 강타)는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수사외압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서울고검장에 앉히는 승진 인사였다. 서울고검은 중앙지검에서 불기소 처분된 사건의 기소 여부를 다시 판단하는 상급기관이다. 최근에는 주요 사건 수사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 수사외압으로 피고인 신분이 된 이 지검장에 대해 그간 검찰 안팎에서 직무배제 요구가 많았지만, 그는 고검장으로 승진한 데다 수사 업무까지 맡게 됐다.

물론 피의자가 곧 범죄자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큼, 공직을 맡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왜 하필 이들이어야만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능력과 경험을 고려했다지만, 수많은 법조인 중 그들에 버금가는 인물이 없었을지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임명이 오히려 문 대통령이 말해온 검찰개혁의 진의를 의심받게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들을 따로 불러 ‘검찰개혁에 관해 직접 보고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피의자 3인방’이 현 정부의 불법행위 수사를 막는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청와대는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의 의혹 가운데 하나인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을 감사하자 김오수 검찰총장을 감사위원으로 보내려고 수차례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과 연관된 법무부 장관, 금융감독원장 등에도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있는 한 문재인 정부와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는 사건들은 아마 정권이 끝날 때까지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지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검찰개혁의 한 축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까지 더하면 문 대통령이 퇴임 후까지 염두에 둔 안전장치를 걸어 두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간의 의심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결국 문 대통령이 물러난 후에야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진짜인지 아닌지를 떠나 전직 대통령이 수사를 받고 법정에 불려 나오는 볼썽사나운 꼴은 그만 봤으면 한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충분히 하루가 멀다 하게 피곤하고 법석였던 나라가 아닌가 싶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지, ‘문재인 보유국’ 시절의 일들은 제발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 법무부 장관 이름을, 민정수석 별명을, 검찰총장 지지율을 몰랐던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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