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K방역’ 희망고문 이제 그만

입력 2021-05-11 05:00

이효영 부국장 겸 유통바이오부장

2주마다 돌아오는 요양병원 면회일을 어버이날에 맞췄다. 병원환자복 가슴 위에 병원에서 달아준 카네이션 꽃을 꽂은 엄마는 무엇 때문인지 다른 날보다 기운도 없었고 기분도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병원 면회실의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엄마 얼굴, 인터폰으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우리가 가족임을 간신히 확인하는 실낱 같은 도구다. 지난해 하반기 코로나19가 극심할 때는 아예 면회 자체가 금지됐으니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는 걸 감사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가, 손 한번 마주잡을 수 없는 현실에 화가 치밀기도 하는 감정이 반복된 게 벌써 1년이 넘었다.

이번 추석엔 엄마 손을 잡아볼 수 있으려나. 그때까지 엄마는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려나.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예방접종을 마쳤으면 요양병원에서 가족을 대면으로 면회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엄마는 3월 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1차 접종한 상태다. 하지만 80대인 아버지는 화이자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데 아직 접종 일정이 나오지 않아 속만 태우고 있다. 4월 초부터 연락 준다던 구청은 아직도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다고 답한다. 코로나로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고,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시간이 많지 않은 듯하다.

정부는 올 상반기까지 1300만 명 접종을 완료하고 11월에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9일 기준 367만여 명, 전 국민의 7.2%가 1차 접종을 마쳤다. 올 상반기는 이제 한 달 20여일 남았는데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수 국가들이 코로나 백신을 무기화하거나 패권주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미국이 ‘코로나19 백신 특허를 해제하자’는 입장을 공식화했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정상들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U가 지금까지 백신을 상당량 수출한 반면 미국은 백신을 거의 수출하지 않았다며 백신 지적재산권 면제에 앞서 미국이 백신 수출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독일의 경우 화이자와 백신을 공동 개발한 바이오앤테크가 독일 기업이고, 또 다른 독일 제약사 큐어백이 전 세계에서 세 번째 mRNA 백신 개발 성공이 임박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면서 당장 코로나 백신 지재권을 둘러싸고도 백신 강국의 입장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 내에서 지재권 유예가 통과되려면 164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하는데 이미 EU가 부정적 입장인 만큼 실제 현실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도 이미 백신 집단면역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히 접은 상태다. 우리 국민들은 정부의 백신 도입 정책 점수를 100점 만점에 55.3점으로 평가했다(전경련 국민인식조사). 우리나라의 집단면역 시기를 정부가 주장하는 올해 11월로 보는 사람은 10명 중 1명뿐이며, 대다수는 내년 하반기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지금처럼 피로감만 높아진 방역 정책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루 확진자가 한 자리나 두 자릿수로 통제된다면 일정 기간 국민의 일상생활을 틀어막는 방식으로 계속 방역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한 달이 넘도록 하루 확진자 수가 수백 명대인 마당에 기존 방역 방식은 재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차피 코로나는 영원한 퇴치가 어렵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바이러스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이제는 좀더 적극적인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일부 움직임도 시작됐다. 서울대는 지난달 말부터 자연대 교직원과 학생 2700명을 대상으로 캠퍼스에서 신속분자 진단검사를 시범 시행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2학기부터는 대다수 수업을 대면 방식으로 할 방침이다. 서울 초·중·고교도 송파구 10개 학교를 시작으로 PCR 검사를 시작했으며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백신 개발국이 아니고 대규모 선투자를 할 수도 없었던 우리 형편에 계획대로 차질 없이 접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온 국민이 우리 형편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이 차질 없이 이뤄져서 ‘희망 고문’이 아님을 증명해야만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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