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감성정치’ 볼 만큼 본 2017년

입력 2017-12-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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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숨 가쁜 1년이었다. 2017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5·9 대선을 통한 문재인 대통령의 등장으로 숨 가쁘게 흘러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국내외의 중대한 도전에 대응해왔다. 전임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대통령이 도처에, 우리 주변에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어디든 나타나고 어떤 일에든 관여한다. 충북 제천 화재참사와 같은 민간의 불행에 대해서도 정부의 책임을 먼저 언급한다. 세월호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큰 사고에도 끄떡하지 않던 박 전 대통령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하지만 인사문제에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달라질 것 같았는데도 전 정부와 다르지 않은 게 바로 인사다. 그런데 ‘캠코더’(캠프 출신, 코드가 맞는 사람,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는 앞으로도 달라지기는커녕 더 심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문 대통령이 새해부터 주력해야 할 일은 지지층의 속박과 울타리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국가에 필요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입안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자신을 뽑아주지 않은 국민들에게도 명실상부한 대통령일 수 있어야 한다. 촛불에 의해 대통령이 됐다고 촛불의 무분별한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노조의 발언에만 부응하려 하지 말고 기업과 재계의 고충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여권 내부에서도 제대로 발언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같은 당의 대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조차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닥치고 따라오라는 구조로 가겠다는 것은 잘못된 지지운동”이라고 말했다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공격을 받고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면 집에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하겠다”고 물러서야 했다. 이러니 반대는커녕 충언(衷言)인들 고언(苦言)인들 할 수 있겠나.

국정의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국무회의를 요식행위로 만들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많은 것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것도 고쳐야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장관들은 허수아비가 되고 전 정권이나 전 전 정권에서처럼 ‘문고리’가 득세한다. 이미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의 감성은 뛰어나다. 이 시점에 어떤 메시지를 발신해야 하는가, 행사를 어떻게 기획하면 인상적일까 등에 대한 감각이 잘 계발돼 있다. 2017년이 “이게 나라냐?” 하는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한 해였다면 2018년은 “이게 삶이냐?” 하는 질문에 응답하는 해가 되도록 하겠다는 게 국정기조라고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어느 신문의 표현)의 이 발언도 그런 감각의 소산으로 보인다.

하지만 감성으로 빚어내고 감각으로 포장한 메시지는 일시적일 수 있다. 메시지가 실제와 부합하지 않거나 약속 실현과 거리가 멀면 부작용을 낳는다. ‘이게 삶’이라고 생각하는 기준과 지표도 그 사람이 소속된 진영에 따라, 세대와 직업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책 운용의 결과에 따라서는 자칫 ‘그들만의 삶’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청와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 등을 통해 자꾸 앞에 나서는 것도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 청와대의 시도는 굴절되지 않은 대통령의 면모와 국정운영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취지이겠지만, 거듭될수록 사실이 미화된 ‘우리끼리 소통’으로 흐를 수 있고 언론 불신을 조장하게 된다. 청와대는 경기에 대해 언급하는 평론가나 해설가가 아니라 무한책임을 지고 직접 뛰어들어 기량과 승부를 겨루고 다투는 선수다.

문재인 정부는 좀 더 진지하고 엄숙해져야 한다. 이제 국민들 앞에서 덜 웃고, 국민들 곁에 덜 나타나도 좋으니 대통령은 그 시간에 혼자 더 고뇌하고, 혼자 더 숙고하고, 여럿이 함께 더 회의와 토론을 하기 바란다. 민간과 감성경쟁을 벌여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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