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정우 칼럼] 보수의 반격, 닭의 복수

입력 2016-12-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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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연구원 초청 연구위원

보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 반격은 아니다. 더 이상 밀리면 죽는다는 절박감의 산물이다. 그나마 진보 야당들이 주어진 기회를 살리지 못한 덕에 보수에는 기댈 구석이 남아 있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이제 영특한 국민들은 잘 안다. 어떤 정치인이 진정 참회하고 있는지, 또 어떤 정치 집단이 겉만 그럴듯한 기만을 되풀이하고 있는지.

원조 보수, 정통 보수 타령에 집착하는 이들은 대부분 사이비라고 보면 된다. 말이 아닌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상처받은 국민들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은 모른다.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지를 안다면 내용 없는 논쟁, 그것도 같은 당에 몸담았던 이들끼리 허망한 투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를 대변한다고 서로 주장하지만 외침과 행동이 다르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를 주장하려면 애초부터 보수 운운하지 말았어야 한다. 사실 우리 처지에 보수, 진보 논쟁 그 자체가 의미 있게 자리 잡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런 논쟁은 기득권 싸움으로 비칠 뿐이다.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고 지키려는 처절한 싸움이 보수의 본질이다. 그리고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달라진 것처럼 처신할 때 쓰는 구호가 개혁이다.

문제는 그런 정당 아닌 붕당(朋黨)이 자신들의 속죄와 환골탈태 대신 구세주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데 있다. 구세주에 도전장을 낸 기성 정치인들은 탄핵 결정을 기다리는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은 지 오래건만 이제 와서 자신이 현 상황의 희생양인 양 처신하고 있다. 하지만 큰 선거에서 동정표로 이기는 법은 없다. 현명한 국민들은 이제 나쁜 놈이나 이상한 놈은 선택하지 않는다.

보수의 반격은 구호만으론 통하지 않는다. 말보다 행동이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의 단호한 행동이 바로 그런 것이다.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던 이들은 줄줄이 뒤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이어지는 살풀이는 뛰쳐나간 새누리 분당이 노리던 국민들의 관심을 앗아갈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인 위원장의 사퇴는 시간 문제다. 그의 등장에 야당이 긴장하고 우려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야당의 흥행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막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보수의 반격은 새누리 신당이 아니라 인 위원장의 언행에서 시작되고 끝이 날 것이다.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2000만 마리 이상의 닭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철저하게 사람 잘못이고 시스템 탓이다. 마침 내년이 정유년, 닭의 해인데 이래도 되는 건지 걱정스럽다. 국민들은 이제 지도자 하나 잘 뽑으면 나와 나라 살림이 편안해질 것이란 기대는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결국 시스템이다. 황천길의 닭들도 바로 이런 한국 사회의 엉성한 시스템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달걀 부족으로 빵집 영업이 어렵고 치맥으로 반짝 떴던 치킨 가게들도 파산 직전이다. 이게 우리의 어설픈 현실이다.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해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회다. 닭의 복수극, 시스템 부재의 폐해는 어디에서 멈출까. 새로운 정당 만들고 구세주 기다리는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닭들의 복수는 우리 사회의 구멍 뚫린 시스템을 겨냥한다. 보수의 반격이 가져올 정치판의 새로운 그림보다 중요한 것은 무너진 시스템의 복구 작업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입에 발린 궤변에 휘둘려 엄중한 현실 속에서 마약에 취한 이들처럼 손 놓고 하루를 보내선 안 된다.

나라 안팎에 불확실성이 엄습하고 있다. 근거 없는 낙관론이나 막연한 기대감부터 버려야 이겨낼 수 있다. 이 순간 각자 서 있는 현장에서 긴장감을 갖고 열심히 뛰자. 우리가 언제 나라와 지도자 덕에 다리 뻗고 잠을 이루었던가.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닭의 처지가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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