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수학]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만

입력 2015-09-0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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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세계 곳곳에서 종전 70주년 행사가 열리는 중이다. 독일은 조용히 대처하는 반면에 일본은 헌법을 바꾸겠다는 둥 조금 시끄럽다. 대다수의 우리 세대가 겪은 적이 없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생채기를 우리는 아직도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역사에 기록된 숱한 전쟁 중에, 제2차 세계대전은 되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쟁의 종식이 핵무기의 출현으로 이루어진 탓에 다음의 제3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종말을 의미할 거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1945년 7월 16일에 미국은 뉴멕시코 사막에서 인류의 첫 핵무기 실험인 트리니티 테스트를 실시했다.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젊은 시절부터 고전에 심취했고 힌두교 경전을 산스크리트어 원어로 직접 읽고 암송하는 수준이었다. 인류의 첫 핵실험을 보고 난 오펜하이머는 ‘나는 세계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라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대량 살상 무기가 현실이 되자, 전쟁의 종식이라는 대의와의 충돌에 당혹해한 오펜하이머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깊은 번민에 사로잡혔다. 바가바드기타에서 강조하는 신성한 책임, 즉 다르마(dharma)도 그에게 작은 평안을 허락했던 것 같진 않다.

원자폭탄은 핵분열이라고 하는 물리 현상을 인간이 파괴적으로 이용한 예이다. 이론적으로는 아인슈타인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아인슈타인도 핵무기 시대의 도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거운 원자핵에 큰 충격을 주면 가벼운 원자핵들로 갈라지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질량이 사라진다. 그러니까 무게 100인 원자핵이 무게 49짜리 두 개로 갈라지면서 무게 2가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서 질량이 그냥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은 이 사라진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된다고 설명했다. 그 유명한 ‘E=MC2’는 바로 이걸 설명하는 방정식이다. 여기서 C는 빛의 속도인데, 사라진 작은 질량 M이 엄청난 에너지 E로 변환될 수 있음을 뜻한다.

수소폭탄은 핵융합을 이용하는데, 이건 반대로 가벼운 원자핵들이 무지막지하게 높은 온도에서 합쳐져서 무거운 원자핵을 만드는 것이다. 무게 50짜리 두 개가 합쳐져 99가 되는 바람에, 사라진 1의 무게가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다.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무기를 만들어낸 과학자들은 그 파괴성에 놀라서 핵무기 통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평화운동을 조직했다. 오펜하이머, 아인슈타인, 러셀 같은 지성인들이 나섰지만, 냉전시대를 극복하진 못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비난하는 건 쉽지만, 그들이 아니었어도 누군가 이를 구현해내는 것이 시간 문제였음은 분명하다. 통제가 안 되는 집단이 먼저 개발한다면 그 부정적 여파는 상상을 넘는다.

과학은 양날의 칼이다.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이 사용되는 방식은 결국 정책과 법제도를 통해 결정된다. 핵분열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면 원자폭탄이 되지만, 이 속도를 조절하면 원자력 발전이 된다. 과학자들은 핵융합으로 발전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우리나라도 이 국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핵융합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무지막지하게 온도를 올려서 플라즈마 상태가 되면 주위가 다 녹아버리니 담을 용기가 없다. 이게 해결되면 핵융합 발전으로 핵오염 문제에서 자유로운 에너지원을 갖게 된다.

과학의 양면성 문제는 지금도 여러 모양으로 일어나는 중이다. 줄기세포와 관련한 윤리 논쟁도 있고, 독자적 판단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도 난무한다. 아직 요원해 보이는 ‘강한 인공지능’ 문제는 아니더라도, 상용화가 임박한 무인자동차 시대가 오면 택시운전사 등의 직업이 사라질 가능성은 당장 닥친 문제이다. 이미 이런 실험을 시작한 우버 같은 회사도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세상의 여러 문제를 수학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산업수학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여기서도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문제들이 등장할 수 있다. 결국 과학은 사회적 합의의 과정과 정책 및 법제도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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