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부호 열전]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다음 타이틀이 더 궁금해지는 승부사

입력 2015-05-0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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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동아리에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첫 한글 SW 개발NC소프트 창업 후 ‘리니지’ 출시… 작년까지 누적매출 2조 넘어2011년 야구단 ‘NC다이노스’ 창단… 여전히 게임개발현장 누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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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의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는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성격이다. 김 대표의 승부사적 기질의 원천도 열정에서 비롯됐다. 김 대표의 넘치는 에너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게임기업인 엔씨소프트를 만든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김 대표의 열정은 유년시절부터 남달랐다. 김 대표의 어린시절은 유복한 환경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했다. 그 시절 김 대표의 유일한 위안 거리는 야구였다. 김 대표는 투수를 하는 게 좋아 팔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초중학교를 다닐 정도였다. 김 대표는 “책방에 가서 어떻게 하면 커브볼을 던질 수 있을까 보고 밤새 커브볼을 던지기 위해 몇 달을 골목길에서 던졌던 기억이 난다”며 “폐타이어를 전봇대에 매달아 놓고 배팅연습도 하고 글러브도 끼고 살았던 게 중학교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사실 김 대표는 어린시절 운동신경이 꽤 좋았다. 체구는 작았지만 어떤 운동경기에서도 지지 않으려는 성향이 짙었다고 한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에 육상선수로 활약한 사실은 게임업계에서도 다 아는 사실이다. 초등학교에서 달리기 대회가 열리면 1등은 김 대표 차지였다. 학교 대표로 지역대회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도 곧잘 잘했다. 수학을 좋아했던 김 대표는 중학교 시절에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끝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면서 컴퓨터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컴퓨터를 접하긴 했지만 대학교 입학 이후 깊게 빠져들었다. 김 대표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애플2를 봤는데 스티브잡스가 떠난 날 그렇게 슬픈 감정을 느끼게 만든 것이 바로 그 애플2였다”며 “그때부터 인생이 조금씩 정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후 김 대표는 컴퓨터를 끼고 살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취업 스트레스가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와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컴퓨터 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했고, 세운상가를 찾아 컴퓨터의 원리를 직접 확인했다. 심지어 김 대표는 컴퓨터 OS(운영체제)가 너무 좋아서 직접 공부했고 한글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1988년에 프로그래밍에 열중했고 1989년에는 타자연습과 게임을 접목한 한메타자교사를 개발했다. 김 대표가 만든 최초의 게임인 셈이다. 최초 한글 소프트웨어인 아래아한글도 처음부터 워드프로세서로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아래아한글은 김 대표가 컴퓨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등과 함께 만든 소프트웨어다.

김 대표는 “아래아한글은 동아리에서 우리끼리 잘 쓰려고 만든 것이었다”며 “당시에 컴퓨터에서 한글이 안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에서 한글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래아한글은 한글과컴퓨터라는 회사 설립의 모태가 된다.

하지만 계속 프로그래밍만 하고 컴퓨터 앞에만 있다보니 심심했다. 그래서 그는 로그라는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그 당시 김 대표가 심심풀이로 했던 로그라는 게임은 향후 리니지를 만든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유닉스에서 로그라는 게임을 하면서 이것을 네트워크에서 같이 플레이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며 “인터넷에서 비주얼을 표현하고 싶었고 게임이라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며 리니지 게임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김 대표는 1991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병역특례 혜택이 있는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김 대표는 세계 최초 인터넷 기반 PC통신인 아미넷을 개발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김 대표를 ‘주목하고 있는 젊은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대전자에서 나온 김 대표는 1997년 3월 ‘미래의 다음 회사(Next Company)’라는 뜻의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초창기 엔씨소프트는 게임회사가 아닌 홈페이지 구축 등 인터넷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출발했다. 사업가로 처음 나선 김 대표의 각오는 다부졌다. 김 대표는 “만약 우리나라에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알고 인정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하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엔씨소프트이고 우리만이 할 수 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느꼈다고 한다. 김 대표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인터넷을 이용한 놀이문화, 즉 게임이었다. 창업 초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공교롭게도 엔씨소프트가 창업한 해에 IMF 외환위기가 불어닥쳤다. 모든 것이 어려운 순간이었지만 김 대표는 끝까지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창업 1년 6개월여 후 한국 최초의 인터넷 기반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를 출시했다. 김 대표가 꿈꾸던 게임 역사의 첫단추를 꿴 순간이었다.

리니지는 온라인 게임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고, 현재까지도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리니지는 2014년까지 누적 매출 2조3000억원을 기록할 만큼 엔씨소프트의 핵심 성장 축이었다. 2000년에는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글로벌 시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본격적인 북미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 게임 개발사인 아레나넷을 인수했다. 같은 해 7월 코스닥에 등록한 엔씨소프트는 2003년 5월 한국증권거래소(KOSPI)로 이전 상장하며 국내 대표 게임기업으로 거듭났다. 2008년 11월 출시한 ‘아이온’으로 엔씨소프트의 재도약을 열어줬다. PC방 160주 연속 1위, 최단 기간 단일 게임 매출 1조원 달성 등 국내 온라인 게임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냈다. 2011년에는 사회적 약자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는 김 대표의 야구철학이 담긴 ‘NC 다이노스’를 창단했다. 김 대표는 여전히 배고프다. 벤처1세대 대부분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김 대표는 게임개발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다. 모든 게임개발에서 의견을 나누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 게임업계가 김 대표를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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