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아버지의 '그녀'…가정폭력 신고하며 父 쫓아내려 [서초동 MSG]

입력 2024-02-05 06:00 수정 2024-02-0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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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들어왔다가 퇴거불응', 법적조치 어려운 이유들

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집주인의 의사와 달리 그의 거주지에 들어가는 경우 형법 319조 1항 ‘주거침입’에 해당한다. 주거침입은 강도나 특수절도 등 다른 범죄로 이어지는 사고가 많아 법원에서도 심각히 보는 죄목이다.

형법 319조 2항 ‘퇴거불응’은 주거침입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원치 않는 이들이 나의 집에 들어오는 것이 주거침입이라면, 퇴거불응은 통상 집주인의 허락 하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나가라’는 말에도 나가지 않아 참다못한 주인이 경찰을 부르면 웬만해서는 집에서 나가고 상황은 마무리된다. 그러다보니 퇴거불응으로 기소되는 사례도 찾기 어렵고 처벌 수위도 약식명령 벌금형 혹은 기소유예로 낮은 편이다.

때문에 변호사들 사이에서 퇴거불응 사례는 골치 아픈 사건으로 분류된다. 처벌 결과가 세지 않기 때문에 의뢰인들은 선뜻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고소에 나서지도 않는다고 한다. 법이나 재판으로 해결하지 못하다보니 변호사들이 각종 묘수를 동원해 의뢰인을 돕는다는 것이다.

#1. 한 여성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왔다. 전 남편의 사촌형을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에서 내보낼 방법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남편과 이혼한 이 여성은 수년이 지난 이제야 그 아파트를 처분하려는데 그곳에서 거주하던 전 남편의 사촌형 때문에 매매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의뢰인은 “비록 법률상담이지만 퇴거 단행이나 주거침입 고소와 같은 차가운 법률 수단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뢰인은 시사촌형은커녕 전 남편에게도 연락하거나 편하게 대화할 관계도 못되는데 변호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변호사는 의뢰인을 돌려보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 함께 믿고 살던 관계에서도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 한 할아버지는 사망한 아내의 49재를 넘기자마자 다른 아주머니를 집으로 데려왔다. 자식들은 떨떠름했지만 아버지의 슬픔을 다독여줄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집에 있던 물건이 조금씩 없어졌고, 가족들은 아주머니에게 이를 추궁했다. 당황한 아주머니는 도자기를 깨뜨려 파편을 팔뚝에 그었고 경찰에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다”며 신고했다. 급기야 아주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접근금지를 신청했고 집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다.

더 놀라운 일은 이 아주머니에게 남편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얼마 뒤 아주머니의 남편이 집을 찾아와 “남의 부인을 데려갔냐”며 금전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이 아주머니에게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할 수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이혼도 하지 않은 혼인 관계였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들이 설득에 나서 이 아주머니를 집에서 내보내는 것은 성공했지만 남은 것은 불신과 불안, 그리고 집안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였다.

#3. 이혼 절차가 끝났지만 어쩌다보니 동거하는 부부 이야기는 비교적 흔한 사례다. 이혼 협의 과정에서 미래에 관한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피하다보니 이혼 이후 누가 퇴거할 것인지 협의하지 못하는 경우들이다.

이혼 소송이 끝난 한 부부는 이혼 신고 접수를 잊고 지냈다. 누군가는 살 집을 찾아서 나가야 했지만 어쩌다보니 집을 구할 수 없게 됐고 그냥 함께 살게 된 사례도 있다. 두 사람 이혼 신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혼인 중인 상태로 살게 됐다.

#4. 한 쌍 젊은 남녀가 짧은 연애를 끝냈다. 동거 생활을 하던 두 사람 중 얹혀살던 A 씨가 집에서 나가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집주인인 B 씨는 경찰에 수차례 신고하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꿨다. 그러자 A 씨는 ‘비밀번호를 바꾸어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 자신의 재택근무를 방해했다’며 경찰에 B 씨를 업무방해로 신고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그렇게 옛 연인은 서로를 열 차례 이상 신고했고, 꽉 찬 사건사고사실확인원만큼 이들의 갈등은 깊어져 갔다.

그렇게 A 씨는 안방을 점유하고 B 씨는 작은 방에서 생활하며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게 됐다. B 씨는 A 씨를 내보내기 위해 집에 손님도 초대하고 부모님을 불러 설득하고 집을 매물로 내놓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B 씨는 상대방을 퇴거불응이라는 혐의로 고소했다.

B 씨는 이후 집을 옮겼는데, A 씨는 B 씨의 일방적인 변심에 앙심을 품었다. A 씨는 그간 B 씨와 타인 사이의 전화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왔는데, 그 녹취록을 꺼내 B 씨의 주변에 보내어 복수의 칼날을 휘둘렀다. 사적인 내용은 물론 회사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들어올 때는 쉽지만 나갈 때, 또는 내보낼 때는 무겁고 어려운 것이 사람”이라며 “이미 들여보낸 이상 주거침입을 주장할 수도 없고 내보내기 위한 퇴거나 인도의 절차는 어렵고 오래 걸리면서도 비용까지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집은 그저 공간이라는 물리적인 가분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치관과 생활이 녹아 있는 곳이기에 이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며 “퇴거불응 사건은 막상 법이나 재판과 같은 제도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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