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백남준發 도시재생을 꿈꾸다

입력 2023-1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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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도시재생이란 말 그대로 상대적으로 낙후된 도시에 새로운 사회경제적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부흥을 꾀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기계산업 위주에서 현대의 IT, 하이테크 등 신산업 구조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도시 영역의 변경 및 확장으로 불가피하게 남겨진 장소가 그 대상이다.

유럽에서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의 성공적 사례로는 프랑스의 라프리쉬라벨드메(La Friche la Belle de Mai, 이하 라프리쉬)가 단연 독보적이다. 무엇보다도 정부 및 관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형이라는 점에서 유럽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사례로 손꼽힌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프랑스의 도시재생 사업 일환이었던 라프리쉬는 황무지(미개간지)를 뜻하는 불어로 프랑스 남부 도시인 마르세유 3구의 생샤를(St. Charles) 기차역 인근 동네 이름인 라벨드메(La Belle de Mai)의 명칭과 합해진 사회적 기업을 부르는 이름이다. 노동자 및 서민들이 주로 거주했던 이 동네는 1866년에 세워진 프랑스담배공사의 공장이 제조업 쇠퇴로 1990년에 문을 닫은 후 폐허가 된 채 버려졌다. 그렇게 동네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옛 담배공장에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보금자리를 형성했고 지금의 마르세유 도시 경제를 활성화시킨 주역이 된 것이다,

이 지역은 12헥타르(약 3만6300평)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로 모든 장소가 옛 예술 창작과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다. 60여 개 이상의 문화예술 관련 기관들이 상주해 있으며 400여 명의 창작자, 제작자, 근로자, 예술가 및 기술자들이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은 창립 이념부터가 명확하다. 예술가와 그들의 도시라는 개념을 장착한 이곳은 ‘예술을 위한, 예술만을 하는’ 전통적·보수적 이념 고수가 아니라 ‘예술을 통한, 예술 장소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함께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를 초기부터 병행했다.

특히 예술가를 지역 사회의 주요 전문 직업군으로 도시 전체가 인지함과 동시에 그들의 경제 활동이 도시의 가장 주요한 수입원임을 밝히고, 그것을 마르세유 도시재생을 위한 가장 우선적 고려 대상으로 두었다. 이는 예술 활동의 목적이, 소위 말하는 이상적 미적 추구와 자아 실현에 머무르는 것과는 달리, 업으로서의 경제활동의 전문 직업군으로 우대한 점이라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라프리쉬는 예술가들과 함께 쇠퇴한 도시의 외관을 개발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단순한 도시 미화작업의 한 부분만을 담당하는 업무로 예술가들의 활동을 국한시키지 않았다, 라프리쉬는 그들이 해당 지역의 문화예술산업에 기업가로서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회사를 일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지역 경제발전의 중심축이 되도록 독려하였다. 단순한 일인 자영업자로 머무르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다른 지역 예술가들의 현실과는 사뭇 다른 부분이다.

이렇게 예술가 활용 매뉴얼을 다각도로 잘 작동시킨 라프리쉬는 문화예술복합단지 구축이라는 초기 개념을 여전히 잘 지켜내면서 전시 수출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2014년 3월부터 상호교류사업에 협의하였고, 2015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프랑스와 한국에서 교류 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의 경우 통상적으로 고려되는 지역특수성 및 한계에 대한 논의와 접근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근간이 되는 예술가들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등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공감이 지역 전반적으로 우선시되어야 함을 라프리쉬의 성공사례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이런 논의들이 지역에서 원활히 이뤄질 때 예술을 통한 지역 재생이 안정적으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서울시립미술관 산하 백남준기념관 운영 종료 방침 철회를 바라보며 소회가 남다르다. 기념관의 정체성 재확립 및 공간 확장과 운영 콘텐츠 혁신안 제시 등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적 예술가인 백남준이란 인물과 예술산업적·경제적 가치로 바라본, 그가 일군 업적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와 공감이 우선시된다면 라프리쉬 사례처럼 창신동 일대는 물론 서울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도시재생의 주요한 거점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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