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뿌리 깊은 나무도 바람에 쓰러진다

입력 2019-11-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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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영하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요즘, 식물원에서는 겨울 채비를 하느라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겨울을 맞는 식물원에서는 차고 건조한 겨울바람으로부터 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들이 우선입니다. 겨울을 견딜 힘이 부족한 나무와 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아이들은 실내로 들여놓고, 들여놓을 수 없는 아이들은 볏짚이나 녹화마대 등의 피복 재료를 이용해 줄기나 토양 표면을 덮어주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또 다른 겨울 준비로 식물원이 무척 번잡합니다. 겨울 동안에도 식물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차원에서 ‘꽃빛축제’라는 이름으로 식물원을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꽃 모양, 동물 모양 등으로 조명을 설치해 겨울 식물원의 삭막함을 걷어내고 마치 봄에 꽃이 핀 것 같은 모습으로 식물원을 비춰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식물을 보호하는 일과 관람객들이 즐거워할 장식 일을 하다 보면 어떨 때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식물원에서 식물을 보호하는 일이 우선일까, 관람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 우선일까. 제한된 시간과 비용, 인력으로 어떤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는 날들입니다.

이렇게 식물원을 장식하다 보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매어 꽤나 무게가 나가는 조명 전선을 길게 늘어뜨리기도 하는데, 그 무게에 나무가 쓰러질 것 같은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나무에 걸치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벼운 현수막부터 무거운 철로 만든 줄까지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나무를 지지대 삼아 설치합니다. 이런 설치물들, 특히 나무줄기나 가지를 꼭 조여 매는 줄은 나무에 심각한 피해를 줍니다.

우리는 보통 나무의 덩치만 보고 나무들이 무척 튼튼하고 굳세어 어떤 충격이나 상처에도 모두 견딜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무는 매우 섬세한 반응을 보이는 생명체입니다. 나무의 생장을 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줄기가 두꺼워지는 부피생장을 할 때 나무는 새살을 줄기 중심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껍질 바로 밑에 만듭니다. 다시 말해서 오래되고 굳어진 살이 줄기 안쪽에 있고 연약한 새살이 가장 밖에 있는 것입니다. 줄기나 가지에 매어진 줄이 제거되지 않고 오래 남아 있게 되면 그 부분은 부피생장을 못하고 잘록하게 약해집니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잘록해진 부분은 결국 죽게 되고 약한 바람과 같은 가벼운 충격에도 부러지게 됩니다. 이런 일은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미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무가 뚝 부러지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실 같은 줄조차도 이런 과정을 통해 나무를 부러뜨릴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상황을 보면, 나무껍질이 다치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나무껍질은 앞서 말한 새살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조직입니다. 껍질의 두께가 나무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껍질이 쉽게 상처를 입습니다. 껍질에 상처가 생겨 보호기능을 잃게 되면, 바로 그 밑의 새살도 영향을 받아 썩기 시작하고 점점 더 안쪽으로 썩어 들어갑니다. 겉에서 볼 때는 작은 상처지만, 줄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썩은 부위가 커지고 큰 구멍이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나무들도 어느 날 비바람과 눈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용비어천가 첫 머리에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뮐세’라고 해서 기초가 튼튼함을 나무에 비유하였지만, 이렇게 뿌리 깊은 나무도 부러지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 우리 직장,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뿌리가 튼튼하지만 혹시라도 가지와 줄기를 옥죄거나 껍질에 상처를 주고 있는 장애물은 없을까요. 혹시라도 내가 우리의 가정, 직장 그리고 사회에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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