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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도의 세상이야기] 차이나 리스크, 신흥국가와의 협력으로 극복해야

서울대 객원교수,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에서 중국, 동남아, 인도, 중남미 등 신흥국의 비중이 57% 수준으로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을 앞선다. 2000년에 38.7%로 선진국에 크게 못 미쳤으나 이제는 신흥국이 우리의 주력 수출 시장이 되었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 비중이 주춤하면서 다른 신흥 시장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을 제외한 151개 신흥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10년간 18.9%에서 23.7%로 크게 상승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의 사드 보복과 미중 간 무역마찰의 영향 등 차이나 리스크가 커짐에 따라 여타 신흥국으로 우리 수출 시장을 다변화할 시급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순조롭게 타결되더라도 우리 주력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조립 가공 기지로 하여 선진국이나 다른 수출 시장으로 향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우리 기업의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마케팅과 금융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부족하다. 신흥국과 함께하는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상 방문 등 경제 외교를 강화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신흥국이 중국과 일본이 아닌 우리를 찾는 이유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원조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를 가 보면 주요 관공서들이 중국의 원조로 지어져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인프라 설비 투자를 통해 그 나라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원조를 받는 국가 입장에서 당초 기대한 기술이전이나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지 않고 중국 노동력의 급속한 유입과 자본 종속으로 경제적 예속을 우려한다. 한편, 일본은 이들 입장에서 산업기술력이 너무 선진화되어 이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국 발전의 롤모델로 삼기 어렵다. 반면 우리는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며, 기술 수준도 그들이 넘겨받기에 적절한 정도로 평가한다. 게다가 한국은 중간 규모의 국가로 협력하더라도 국제 정치적 영향력을 우려할 필요가 없고 역사적 동질성이 있어 편하게 느끼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강점을 활용하여 우리는 신흥국과 호혜적 산업 협력을 추진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필자가 느낀 몇 가지 경험을 소개해 본다.

첫째, 우리 기업은 자동차, 전자 등 범용화된 제품의 조립기술력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그러나 화장품 등 소비재의 경우 그 나라의 문화적·지리적 여건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중남미의 경우 아마존 지역을 중심으로 생물의 다양성이 풍부한 데 이를 제품화하는 기술력이 약하다. 우리 기업의 생산 기술 역량과 그들의 다양성을 결합하여 상품을 개발한다면 그 지역 시장을 뚫을 수 있고, 우리의 배후에 있는 중국 등 아시아 시장 개척에도 돌파구가 보일 것이다.

둘째,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들어 농촌 인력의 도시 유입이 가속화되는데 이런 인력을 활용한 섬유 등 제조업 육성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은 이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에 특혜 관세를 부여하여 경제발전을 지원한다.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시아는 이들과는 경쟁 관계여서 협력이 어렵지만 우리나라는 노동집약적 산업이 해외로 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협력의 잠재력이 크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퇴역한 생산인력의 기술이 그들에게는 바로 사용 가능한 실용 기술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의 기술과 이들의 산업화 전략을 결합한다면 우리 기업에 또 다른 활로를 열어 줄 수 있다.

셋째,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중견 소득 국가로 발돋움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롤모델을 찾고 파트너 국가로 협력을 강화한다. 이들은 경제성장률이 매우 높고 석유화학이나 정유, 발전 등 인프라 개발 사업도 적극적으로 이뤄져 우리 기업들의 참여 요구가 많다. 그러나 아직 국제사회에서 신인도가 낮아 자금 조달에 애로가 크며, 민간 기업들이 단독으로 참여하기에는 정책의 변화 등 정치적 위험도 크다. 따라서 정부가 주도해 공기업, 민간기업 그리고 정책금융기관의 지원이 함께하면 성공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특히 이들은 관세 인하 등 자국 시장의 개방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보다는 포괄적 협력 파트너십을 선호하는 만큼 우리나라만의 독자적 협력 프로그램을 구체화한다면 민간기업의 시장 개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협력은 물론 단기간 내에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일관성과 진정성을 갖고 꾸준히 추진한다면 해외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우리 기업들의 시장 다변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신흥국 지도층을 친한파로 만들고 해외 진출이 가능한 인력을 대상으로 직업훈련 등 협력을 지원할 정책도 보다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문재도 서울대 객원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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