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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시각] 겨울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 아버지

시인·인문학 저술가

종일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려 대지에 뒹구는 낙엽을 적신다. 비가 내리고 사방이 음산한 회색빛으로 감싸일 때 내 기분은 울적하다. 한 해가 덧없이 끝난다는 회한과 허탈함도 그 울적함에 무게를 더했으리라. 너무 옳은 말들과 너무 많은 주장들 속에서 내 작은 소망들은 마치 눅눅한 성냥개비처럼 발화되지 않았다. 급류인 듯 흘러간 세월 속에서 나는 작은 보람과 성취를 바랐으나 그 가망은 난망해졌다. 나는 이룬 것보다 실패가 더 많고, 생활비를 버느라 한 해 동안 허덕였을 뿐이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면 실내 공기도 차가워져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온다. 비로소 눈과 추위의 계절이 닥쳤음을 실감한다. 한해살이풀은 씨앗을 떨어뜨려 다음 생을 기약하고, 잎과 줄기는 칙칙한 빛깔로 시들고 바스라진다. 너구리와 오소리 같은 야생동물의 활동성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겨울에는 천지간에 음의 기운이 퍼져나가는 가운데 조류와 파충류, 네 발 달린 동물들은 먹잇감 구하기가 어려워져 큰 시련을 맞는다. 곰이나 뱀은 아예 먹이 활동을 그치고 동면에 든다. 겨울잠을 자면서 체내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며 시련의 계절을 버텨내는 동물의 지혜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새삼스럽게 감탄한다.

겨울은 밤이 긴 계절이다.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수많은 별과 행성들이 저마다 반짝인다. 이 별과 행성들은 규칙적으로 정해진 궤도를 돈다. 칸트라는 철학자는 별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궤도를 돈다는 사실에서 우주가 얼마나 숭고한가를 가슴에 새겼다. 별들이 영롱하게 반짝이는 것은 우주 공간이 암흑물질로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어둠은 우주가 생긴 태초부터 있었다. 거대한 어둠이 은하와 별들을 배태하고 그것을 출산했다. 어둠은 생명의 시작이자 기원이다. 인류의 선조는 어둠이 내리면 동굴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잤다. 낮을 지배하던 맹수들이 더 이상 어슬렁거리지 않고 잠들기에 밤은 낮보다 안전했다. 뜻밖에도 밤은 생명의 피난처였던 셈이다.

긴 겨울밤이 곤혹스러운 것은 불면 때문이다. 젊은 날엔 베개에 머리를 얹자마자 혼곤한 잠에 빠졌는데, 점점 깊은 잠에 드는 게 어려워졌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수록 잠은 멀리 달아난다. 잠을 못 잔 이튿날 비몽사몽하는 가운데 흐리멍텅한 의식으로 겨우 움직인다. 컬럼비아대학교 예술사-고고학부 교수인 조너선 크래리(Jonathan Crary)에 따르면 불면은 우리를 고통의 메마름에 빠뜨리고, 의식을 산만하게 흩트리며, 기억력과 창의력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왜 불면에 허우적이는가? 잠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불면은 “경계(警戒)의 필요에, 즉 세계에 만연한 공포와 불의를 간과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상응”하며, “타인의 고통에 대한 부주의를 피하려는 노력의 불안”이고, “우리를 압도해오는 책임의 무한성에 대한 거의 견뎌낼 수 없는 주의(注意)가 동반되는 것”이다.

겨울밤은 지나간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동이 틀 무렵 가장 먼저 일어나 어린 자식들을 보살피고, 집안일을 도맡는다. 이 세상이 온전하도록 지탱하는 것은 말만 많은 정치가들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다. 새벽에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쌓인 낙엽이나 눈을 치우며, 가축들을 돌보는 이들, 아침밥을 먹고 나가서 은행과 관공서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이들, 우편물을 배달하고, 이삿짐을 나르며, 화재 현장에 달려가 불을 끄고,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이들. 이들이 하루를 열고 일과를 시작해야만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간다.

미국 시인 로버트 헤이든(1913~1980)은 가족 관계 안에서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직무를 다하는 사람을 ‘아버지’라고 명명한다.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검푸른 추위 속에서 옷을 입고/한 주 내내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 쑤시고/갈라진 손으로 불을 피웠다./아무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데도.//잠이 깬 나는 몸속까지 스몄던 추위가/타닥타닥 쪼개지며 녹는 소리를 듣곤 했다./방들이 따뜻해지면 아버지가 나를 불렀고/나는 그 집에 잠복한 분노를 경계하며/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입고/아버지에게 냉담한 말을 던지곤 했다./추위를 몰아내고/내 외출용 구두까지 윤나게 닦아 놓은 아버지한테.//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직무에 대해.”(로버트 헤이든, ‘그 겨울의 일요일들’)

겨울 새벽의 모진 추위 속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이 시를 읽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 이도 있을 테다. 황태가 강추위 속에서 얼다 녹기를 되풀이하는 강원도 덕장에서 일하는 이도, 아궁이에 불을 넣어 식은 구들장을 달구고 아랫목에 온기가 돌도록 하는 이도 아버지다. 새벽마다 아버지는 소에게 먹일 여물을 마련하고, 찬 재만 남은 아궁이에 불길을 지폈다. 이렇듯 아버지는 삶이 부과하는 수고를 묵묵하게 감당한다.

몇 해 전 겨울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떠올린다.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나와 아버지는 오랫동안 불화했다. 나는 사춘기 때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으나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없이 무력해 보였다. 직장에서 밀려난 뒤 하는 일 없이 집 안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실망했다. 아버지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는 존재다. 소년들이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아버지가 되지는 않는다. 세상을 두루 품는 넉넉한 인격과 통찰력, 그리고 자식을 낳고 기르는 데 드는 수고를 떠안으며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질 만한 능력과 부지런함을 갖춰야만 아버지로 거듭날 수 있다.

“바쁜 사람들도/굳센 사람들도/바람과 같던 사람들도/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어린 것들을 위하여/난로에 불을 피우고/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세상이 시끄러우면/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폭탄을 만드는 사람도/감옥을 지키던 사람도/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는 남성 중심의 부계친족제사회에서 집안을 이끄는 우두머리이고, 더할 수 없이 숭고한 존재였다. 식구들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해야만 했다. 많은 신화나 종교에서 최고신은 항상 아버지로 의인화된다. 아버지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무한 능력자인 까닭에 태양, 불, 번개, 화살, 창, 칼, 쟁기, 삽 같은 것들에 견줘진다. 절대 권력과 권위의 표상이던 아버지는 요즘 현실에서는 한없이 작아져서 그 권위는 말할 것도 없고 존재감마저 미미해졌다. 김현승 시인은 현실에 있음직한 아버지 모습을 그렸다. 시인은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자식의 앞날과 안위를 가장 먼저 걱정한다. 크고 작은 자식 걱정에 늘 심장을 졸이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는 일에는 서툰 존재가 아버지다. 나는 젊은 시절에는 아버지의 외로움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 영웅이 아니었다. 그랬으니 아버지의 슬픔과 외로움은 물론이거니와 그 절망과 두려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불효하고 엇나가기만 했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왜 아니겠는가!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버지만큼 나이가 들었다. 뒤늦게나마 아버지의 처지를 짐작하고 젊은 날의 막심한 불효에 후회하며 가느다란 연민을 품게 되었다.

장석주 시인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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