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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버클리에는 의자가 많다

대학 교수들과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독서 모임이 있다. 전공이 서로 다르다 보니 선정되는 책도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경제학에서 자연과학까지 여러 분야의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발제자는 조금 더 공부하여 다른 참석자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참석자들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경청한다. 1년 넘게 계속되는 이 모임이 점점 더 기다려진다. 학창 시절의 공부에 대한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마음의 즐거움을 느끼는 공부가 된다. 그래서인지 읽고 토론한 책의 내용이 오랫동안 기억된다. 시험이나 성적을 위해 읽었던 책들에 대한 기억이 아련히 멀어지는 증상과는 상반되는 이런 상태가 참 좋다. “배우고 또 공부하면 기쁘지 아니할 수 없다”는 선현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착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국가를 운영하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스탠퍼드 대학의 존 코간(John F. Cogan) 교수는 그의 저서 ‘좋은 의도의 높은 비용(The High Cost of Good Intentions)’에서 미국의 다양한 복지정책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확대되어왔는지를 분석한다. 이 책의 주제는 모든 복지 프로그램은 좋은 의도로 만들어지지만 탄생하면서부터 바로 확대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불가피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가피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하여야 한다. 레이건 대통령의 말대로 “과도한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책은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의도라기보다는 그 일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론의 성격이 더 강하다.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정책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적·정치적 의미를 탐구하고, 정책을 추진했던 역사적 경험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공부해야 한다. 아울러 정책의 실패에 따르는 부담,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효과에 대한 보완까지 검토되어야 한다. 공부의 방법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문헌과 자료 조사부터 경험자를 통한 도제식 수업까지 전 과정을 공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말한다. 공부에는 일반 국민의 반응을 수렴하고 그것을 피드백하여 더 나은 정책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포함된다.

최근 여행 중 버클리 대학에 들른 적이 있었다. 대학 교정을 거닐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교 곳곳에 있는 다양한 모양의 의자들이었다. 도서관은 물론이고 건물 안과 밖 곳곳에 작은 빈 공간만 있어도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의자는 모양도 재질도 제각각이었지만 그 의자들을 보면서 공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특히 이 학교와 연고가 있는 노벨상 수상자가 70명이 넘는다는 사실도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공부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의도였으나, 이제는 언제라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의자에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었다.

생각과 생각이 부딪히고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편견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다양한 생각을 포용하기 위해서도 공부를 해야만 되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좋은 의도만으로 좋은 해법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의 기적을 만들었던 한국경제가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 절벽으로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점점 더 심각해지는 양극화의 해법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마음은 계속해서 커 나가고, 공동체의 가치는 말로만 뇌는 구두 선에 머무르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과도한 사회는 멍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경청이다. 그러한 포용은 선의에 기초한 것보다는 공부에 기초한 것일 때 더욱 오래갈 수 있다.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의자 위에서 공부하는 사회를 그려 본다.

조석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 지식경제부 차관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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