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휴가, 비워서 채워 오라

입력 2018-07-2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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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휴가 인사를 어떻게 하는가. “어디로 가십니까?”라면 구세대다. 신세대는 “어떻게 보내십니까?”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휴가’ 하면 떠나는 게 대세였는데 이젠 호캉스(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 북캉스(책 읽으며 보내는 휴가) 등 휴가 모습도 다양하다. 조직 내 풍속도 역시 달라졌다. 상사 눈치 보느라 휴가 가는 게 가시 방석이란 것은 옛말이다. 이젠 휴가 시기 선택도 신입사원이 서열 1순위인 곳이 많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풍속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본질이다. 휴가 배케이션(vacation)의 어원이 ‘비어 있다’라는 뜻에서 나온 것처럼 잘 비워야 일을 잘하고, 삶을 채울 수 있다. 휴가야말로 최고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인 셈이다. 쓸모가 없는 것 같지만, 가장 유용한 삶의 실용재라는 점에서다. 길에서 밀리고, 사람에 치여 방전하는 것도, 휴가에도 회사 메일을 챙기며 공간 이동만 해 묶여 있는 누전도 진정한 의미의 휴가는 아니다. 휴가의 진정한 의미는 일의 쉼표, 삶의 지표를 위한 충전에 있다.

한자 휴(休)를 살펴보자. 쉴 휴(休)는 사람 인(人)과 나무 목(木), 글자 그대로 사람이 나무 그늘 밑에 가서 쉬는 모습이다. “휴~”라는 발음 자체가 육체와 마음을 이완하고 날숨을 내뱉는 여유로움을 담고 있다. 겨를 가(暇)는 날 일(日)과 빌릴 가()가 합쳐진 글자이다. 날, 즉 시간을 빌리는 것이다. 겨를을 얻어 지낸다는 뜻이다. 휴가의 참의미는 스스로에게 겨를을 주어 여유를 가지는 계기로 삼는 데 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대표적인 여가 예찬론자다. 여가는 삶의 궁극적 목표이고 인간은 여가를 지닐 때 가장 참되게 사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일은 여가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여가를 제대로 사용하는 능력은 모든 생활의 기초다. 시민들에게 여가 사용법을 훈련시키지 않는 정치가는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로마시대 시인 오비디우스는 “여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공부를 하는 장소인 학교(school)는 라틴어 스콜라(schola)에서 유래했다. 스콜라는 틈, 여가, 자유시간이라는 뜻이다. 여가를 통해 ‘인생이란 무엇인가, 신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같은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여가와 놀이가 나태와 게으름의 ‘우려 대상’으로 여겨진 것은 종교개혁 이후다. 노동은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라는 청교도적 직업관이 널리 전파됐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여가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우려와 회의를 표하게 된 것도 그 영향이다.

적절한 휴가는 효과성 면에서 창조력과 몰입도를 증가시킨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론 프리드만(Ron Friedman) 박사는 ‘휴가의 구체적인 효과’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휴가 기간의 재충전 경험은 우리에게 집중력, 정신의 명료성을 갖다 주고 통찰력을 높여준다. 휴가 때 교외나 외국으로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은 참신한 관점과 창조적 해결책을 찾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획기적 아이디어는 사무실 안의 좁은 칸막이 안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변을 유유히 산책할 때 오히려 창조적 발상은 가능하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만족스런 휴가를 다녀온 이들 중 70% 이상이 일에 만족한 반면 휴가를 갔다 오지 못한 사람은 46%만이 만족도를 보여 현격한 차이가 났다. 미국의 일부 회사는 자율 휴가는 물론 휴가 기간에 회사 이메일 체크나 전화 연락을 하면 휴가비를 전액 반환하는 내규까지 만들어 공간 이동만 한 채 일을 하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을 강제 금지한 곳도 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방전도 누전도 하지 말고 충전의 기회로 활용하라. 떠나지만 말고 비워라,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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