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희의 통상브리핑] 미·중 대결 구도에 갇힌 도시바 M&A

입력 2018-05-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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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한·중 산업장관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통상국장을 맡아 회담 준비를 했던 필자는 홍석우 장관을 모시고 갔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회의장으로 출발하려는데, 주중 한국대사관 상무관이 급히 달려와서 회담 안건을 하나 추가해 달라고 사정했다.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합병(M&A)하면서 한 달 전 중국 상무부에 승인을 신청했지만 중국 측 답변이 모호하고, 2월 말 주주총회 전까지 승인이 안 나면 전체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므로 중국 측에 조속한 승인을 부탁해 달라는 것이었다. 새벽에 SK 베이징 법인장이 본사 지시를 받아 급하게 상무관에게 SOS를 쳤고, 상무관은 확인하자마자 아침에 호텔로 달려온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2006년부터 자국 진출 외국 기업이 M&A할 경우 상무부의 사전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과도한 시장 집중 초래, 공정경쟁 저해, 소비자 이익 훼손 여부 등이 있는지를 심사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는 글로벌 매출액 100억 위안(1조7000억원), M&A 총수익 20억 위안(3400억 원) 이상인 모든 기업의 M&A에 대해 사전승인을 의무화했다. SK와 하이닉스가 국내 기업 간 M&A이지만 중국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이어서 중국 상무부 승인 없이는 M&A를 마무리할 수 없다. 당시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기업이 어려울 때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차 안에서 회담 안건 추가를 장관께 건의했고, 홍 장관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양국 산업장관회담 말미에 홍 장관이 천더밍((陳德銘) 상무부장에게 SK-하이닉스 M&A 승인을 늦어도 1월 말까지 끝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천 부장은 실무자를 불러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우리 측에 유감스럽게도 어렵다고 답변했다. 중국 내부 규정상 외투 기업 M&A 승인심사는 6개월 이내에 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평균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는 설명이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전체 회담을 실무적으로 책임지는 국장으로서 중국 내규는 한 번쯤 검토한 뒤 안건에 넣었어야 했는데 급하다 보니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홍 장관은 굽히지 않고 이번 M&A의 중요성에 대해 중국 측에 재차 설명했고, 중국 측으로부터 어렵지만 검토는 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그해 2월 초 중국은 SK와 하이닉스의 M&A를 승인해 주었다. 물론 홍 장관의 설득 이외에도 회사 측에서 다각적인 노력을 해서 좋은 결과를 낸 것으로 생각한다. 몇 년 지난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것은 최근 도시바 M&A가 중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한·미·일(SK하이닉스-배인캐피털,애플-INCJ) 컨소시엄의 도시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 관련 미국, EU 등 7개국 반독점 심사는 이미 끝났으나 중국의 승인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이번 M&A로 자국에 불리한 사업 결정을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중국 측의 설명이다. 도시바 M&A로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커지겠지만, 이로 인해 비시장적 행위를 할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과도한 걱정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도시바 내부에서는 저평가된 매각 계획을 취소하고 재협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국 때문에 이번 딜이 깨진다면 중국의 일관성 없고 자의적 규제에 대한 국제적 불신과 후폭풍을 더 걱정해야 할 것이다. 중국 정부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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