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의 세계경제] 정부가 할 일, 민간이 할 일

입력 2018-04-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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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대면(對面)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회의 후 기념사진을 찍는 행사는 매우 흔하다. 미국에서는 드문 일인데, 1990년대 초 취임한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이 새로운 중도파 민주당 세대임을 과시하고자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초청해 백악관에서 회의를 했다. 그 즈음 자신이 민주당 지지자임을 스스럼없이 밝혔던 유명한 경제학자가 필자와 연지준(FRB) 동료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그 행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신들의 이익에 관련된 관심사 외에 무슨 얘기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확실한 정경(政經)분리 인식 덕분인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 임기 중 물러나거나 퇴임 후 감옥에 가는 일이 매우 드물다. 그런 불미스런 일이 지난 1년 사이에 G20 국가인 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에서 벌어졌다. 뇌물수수 외에도 불분명한 정경분리 원칙과 관행이 근본 원인일 것이다. 수감된 브라질 전직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는 재임 기간 여러 업적으로 인기가 높았다. 사임 후 재판을 앞두고 있는 제이콥 주마는 남아공의 독점적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총재 출신으로 만델라의 대를 이은 지도자였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과 경제 안정을 위해 일을 한다. 그런데 정부가 어떤 일을, 어떤 절차로 하는가에서 선진국과 문제의 3국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보유 주식 의결권 △최저임금과 추경이라는 쟁점 두 가지를 살펴보자.

지난 정부의 의결권 문제의 배경이다. 정부가 할 일과 민간이 할 일에 대한 구분이 애매한 관행이 중요한 원인이다. 올림픽 유치가 좋은 사례이다. 국내 대기업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활동했던 내막이 보도되고 있다. 아직도 국제적 관심에 목마른 나라의 숙원 사업을 했으니 무엇이 문제일까? 나라의 이익을 위해 민관(民官)이 협력해 해낸 일인데 말이다.

문제는 민관 실무자들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분명 추진 과정에서 기업과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긴밀히 협조했을 것이다. 성사 전후 대통령과 기업인 간 부탁과 당부, 치하와 인사의 교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민관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고민거리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관심사와 배역이 바뀌었지만 이런 관행은 이전 정부에서도 이어졌고, 그 결과 전직 장관이 불법적으로 국민연금 보유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지시한 죄로 형을 살고 있다. 그런데 반전은 현 정부가 이를 기업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을 혼내려고 벼르는 것이다. 미국판 국민연금 기금은 주식 투자를 할 수 없다. 우리 정부의 국민연금 의결권 놀음판을 보며 ‘혹시 얼마 되지 않는 노후 자금으로 손해 보는 일은 없을까?’ 걱정하는 서민들을 생각하면 이런 제약이 그리 우둔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다음은 최저임금과 추경이다. 경제 안정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정부가 무리한 경제학 이론을 실험하며 발생한 부작용에 대처하려고 예산을 투입하는 양상이다. 임금을 대폭 인상해 일자리를 만들어 민생을 돕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대표적 경제 정책이다. 선진국에서 보지 못했던 발상인데, 지지자들은 브라질 룰라 정부가 비슷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경제 지표들의 추세에 비해 생뚱맞게도 올 들어 3개월째 고용 상황이 심각하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여파가 예상되었던 음식점업 일자리 감소로, 두 변수 간의 인과 관계를 의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경제부총리는 인과 관계 가능성에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 추경에 왜 그렇게 목을 매는지 궁금하다. 정부가 올해 예산을 만든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작년 가을 예상치 못했던 악재가 발생했다는 것인가?

이 두 문제는 정부가 자제해야 할 일에 개입해 발생한 문제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아울러 과거의 적폐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문제라 고민이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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