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미의 고공비행] ‘매도 리포트’ 기근 현상의 속사정

입력 2018-03-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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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부 차장

얼마 전 한 대기업이 개최한 행사에 기업 분석에 호의적인 애널리스트만 초청을 받았다며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얼마 후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며, 단순한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평소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의 눈치를 보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현 상황과 무관치 않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입장에서 좋은 보고서만 작성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매년 1년 동안 쏟아지는 수많은 증권사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을 낸 리포트는 한 손에 꼽힐 정도니 말이다. 비중으로 본다면 전체의 1%도 안 되는 숫자다. 2015년 5월 말 ‘투자의견 비율 공시제’가 시행됐지만, 이 역시 무용지물이다. 제도보다는 기업이 우위에 있는 이상한 구조가 굳어진 형국인 셈이다.

사실 증권사 연구원들이 리포트 작성 시 해당 기업에 검토를 받는 것은 아니다. 자체적으로 내버리면 그만이다. 게다가 설사 ‘매도’ 의견을 제시한다고 해서 해당 기업에서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대놓고’가 아닌 ‘은근한’ 압박이다. 일례로 매도 보고서를 작성한 애널리스트가 기업 분석 자료를 요청했다고 치자. 그 기업은 자료를 주긴 주지만, 중요 자료가 아니라 중요도가 떨어지는 자료를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리포트만이 아니다. 애널리스트는 리포트 작성뿐 아니라 기업 탐방도 가야 하고, 기업으로부터 투자설명회(NDR)를 따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에서 은근히 소외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NDR를 잘 따와야 내부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이 부분에서 제동이 걸리면 치명적이다. 기업 탐방 역시 애널리스트를 대하는 기업 담당자들의 태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평소에 A기업과 잘 지냈던 애널리스트가 ‘매도 리포트’를 발표했다고 치자. 이후 어떻게 될까? 중요한 자료는 손에 넣기 힘들어지고, NDR 기회는 다른 증권사에 넘어갈 것이며, 기업 탐방을 할 때면 임원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기업들은 법적 테두리 밖의 행동을 하지 않을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압박을 가하는 셈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보고서에 매도 의견을 내거나 목표가를 낮추는 일은 부담스럽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물론 금융당국이 이 같은 상황을 방관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목소리를 낸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증권사에서 난감함을 하소연해도 그저 매도 리포트를 더 쓰라는 압박을 가할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애널리스트들은 하소연한다.

“우리가 바꿔야 할 부분도 분명 있지만, 매도 보고서 문제는 우리보다는 눈치 주는 기업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평행선이 악순환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노무라증권이 셀트리온에 대해 투자의견 ‘매도’를 제시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내 증권사 담당 애널리스트들 역시 ‘매수’를 제안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상황이라는 점을 공감했음에도 이들은 침묵을 지켰다.

외국 증권사들처럼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필요하다면 삼성전자나 셀트리온의 매도 의견을 맘껏 낼 수 있는, 그리고 투자자들 역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게 바로 성숙한 증시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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