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한국사회, 망한 사람 찍어누르는 시스템 너무 견고하더라”

입력 2017-01-13 10:54 수정 2017-02-0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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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회장…현재의 기업회생 제도는 채무조정만 하고 방치하는 것

▲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회장·코막중공업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회장·코막중공업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서울 여의도에 있는 코막중공업 대표실에 들어서자 커다란 책상 맞은편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적힌 월별 출하·선적 현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조붕구 회장이 활짝 웃으며 나왔다. 인터뷰는 재기에 성공한 중공업 장비 수출기업의 대표가 아니라, 기업들의 재기를 내 일처럼 돕는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이하 협회)’의 회장으로서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이제 기업의 안전망은 기업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조 회장은 한국에서 중소기업인으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분노와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같이 말했다. 조붕구 회장은 “정부가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을 위한 회생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협회를 직접 만들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2008년 키코 사태로 그 자신이 법정관리까지 갔던 중소기업의 대표이기도 하다.

2000년대 코막중공업은 자사 기술력으로만 전 세계 11개국에 사업장을 운영하던 ‘잘나가는’ 건설용 중장비 업체였다. 그러나 2008년 키코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10개의 사업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고위험 파생금융상품인 키코에 대해 은행이 안내하는 대로 환헤지되는 좋은 상품으로 알고 가입했다고 한다.

“은행에서 그런 상품을 팔면 안 된다”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가 말했다. “기업을 위한 좋은 상품이고 환율도 쳐 준다고 안내해 기업들이 줄줄이 가입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환율이 급등하자 건실한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경영진은 구속됐다. 코막중공업도 2012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조 회장은 당시를 ‘필사의 탈출’이었다고 회상했다. “날마다 칠판에 오늘의 목표를 쓰고 자산을 처분해 밀린 세금을 내고 결제 대금을 청산했다”는 그는 “결국 어떤 도움도 못 받았지만 필사의 노력으로 회생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당시 은행연합회에서 보도자료를 돌려 ‘기업이 환투기를 했다’고 몰아갔다. 이를 본 국민은 ‘저런 기업들은 망해도 싸다’며 싸늘해졌다”며, “그렇게 엄청난 피해가 일어났는데 금감원 등 감독기관은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업들은 그 와중에도 계속 망해갔다”고 회상했다.

2010년 금감원 발표에 의하면 키코 사태로 인한 기업들의 피해 규모는 738개사, 금액 3조2247억 원인 반면, 조 회장이 부위원장으로 활동한 키코피해대책위에서 파악한 것으로는 1000여 개 기업, 10조 원 규모다.

“그때 다짐했다. 키코 문제가 해결되든 안 되든 나는 이 비정상적인 사회 흐름을 바꾸는 데 헌신하겠다고 말이다”고 조 회장은 힘주어 말했다.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사회를 위해 = 조 회장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2013년 4월 법정관리에서 졸업하자마자 12월, 회생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소기업들을 돕고자 ‘사단법인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를 개소한 것. 2014년 10월에는 법무부 인가도 받았다. 코막중공업이 법정관리하에 있을 때 알게 된 변호사, 회생 관련 법무사, 회계사 등의 전문가들과 비슷한 경험과 의지를 가진 기업인들을 조 회장이 직접 발로 뛰며 규합했다.

그는 “한 번 망해 보니까 망한 사람 찍어 누르는 시스템이 너무 견고하더라”며 “집 안에서도, 사회에서도 부도를 겪은 기업인들은 실의에 빠져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기 어렵다. 눈에 잘 안 보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IMF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 시기 수많은 사업체가 ‘타살됐다’고 표현했다. 지난해 개성공단 사태를 언급할 때는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다. “키코 사태 이후 8년이 지났지만 개성공단을 보면 바뀐 게 없다. 국가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아마 그쪽 기업인들은 거의 졸도 상태에 있을 것이다.”

현 회생 제도에 대해 그는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채무 조정만 하고 방치하기 일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회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기에 처한 기업이 근본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을 낙오자로 낙인찍고 제쳐 버리는 대신, 부족한 부분을 분석해 다시 뛸 수 있도록 일으켜 세워주는 시스템인 것이다.

◇‘회생 선배들’의 컨설팅 = 협회의 시도는 전방위적이었다. 공청회나 포럼 개최를 비롯해 제도 개선을 위한 대정부 활동을 벌이고, 회생 기업에 파견돼 멘토링을 제공하는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다. 국책연구소나 대학의 기술을 회생 기업에 중개하는 역할도 한다. 회생 절차에 있는 기업이 가장 먼저 희생시키는 부문이 R&D이기 때문이다.

“회생 절차에 있는 기업은 자금이 필요할 수도 있고, 기술이나 마케팅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한 그는 “협회는 이 부분을 진단하고 해당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다른 기관이나 제도를 발굴해 연결해 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재기와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선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 기초는 기술”이라고 말하며 ‘유한기술’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기초 기술력이 있는 회사인데, 회생을 하면서 기술에 투자를 못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해 협회는 유한기술이 필요로 하는 로봇 관련 기술을 보유한 성균관대학교를 발굴하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과 협업해 대학으로부터 이전받은 기술을 기반으로 상품화까지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 3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준정부기관인데, 정부 기관이 회생 기업에 R&D 자금을 지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란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단순히 기업의 수요와 제도의 공급을 발굴해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협회가 유관 기관을 설득하고 앞장서서 제도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금융 지원도 하고 있다. 협회는 지난해 말 법정관리를 받고 있던 회원사 두 곳에 유암코로부터 82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법정관리 위기에 처한 갑산메탈은 지난해 3월 처음 협회를 통해 3000만 원의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이 과정을 본 엔젤투자자들로부터 1억 원, 1억5000만 원 단위의 투자가 이어졌다. 같은 시기 유암코가 1000억 원 규모 법정관리 기업 지원 펀드를 조성하고 있음을 알게 된 조 회장은 유암코와 접촉을 시도했다. “갑산메탈이 점점 살아나 수익률이 좋아 유암코에 갔는데, 처음엔 규모가 너무 작아 거절됐다”며 “그런데 유암코의 기업 규모가 작아서 운영 비용이 많이 들면 금리를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해서 유치를 성공시켰다”고 설명했다. 지난주 무렵 유암코의 자금을 수혈받은 갑산메탈은 빚을 청산하고 회생에 성공했다.

◇“자산유동성 지원이 기업회생의 열쇠” = 그는 특히 “회생시스템은 금융 관행에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이 고정자산이 있고 유동자산이 있는데 국내 은행은 대부분 고정자산만 담보로 인정하고 대출한다”며 “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해외 사업장을 운영할 때, 현지에서 사업계획서를 짜서 캐시플로(현금유동성)를 담보로 하고 돈을 빌려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이들은 신용과 캐시플로를 기반으로 철두철미하게 위험을 분석한 후 대출을 해줘서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조 회장의 말에 따르면 고정자산만 고집하는 ‘전근대적’ 금융 관행은 기업 회생에 큰 걸림돌이 된다. “보통 기업은 유동자산이 없어졌기 때문에 회생에 들어간다. 그런데 국내 기업들은 은행의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정자산의 비율을 지나치게 크게 유지한다. 묶인 자산을 유동화해야 재기할 수 있는데, 이게 안 되는 것”이라며 “경매로 넘어가면 처분 과정만 2년 넘게 걸린다”고 설명했다. “회생하다가 죽는 것이 국내 중소기업”이라며 씁쓸하게 웃는다. 이와 관련, 협회는 이달 내 출범하는 부동산P2P금융 부문의 회원사 ‘119펀딩’의 도움을 받아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회생 기업들의 자산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300명 정도의 개인과 사업체 회원으로 구성된 협회는 이제 운동화 끈을 묶고 출발하는 단계다. 조 회장은 “회원사의 경험과 인맥을 총동원해 기업들의 회생 방안을 짜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은 사회 공헌에 관심을 둬야 한다”며 “회생을 위한 기업 안전망은 기업 스스로 힘을 모아 짜야 한다”고 당부했다. “내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100개의 회사를 살리는 것이 목표”라는 조 회장은 “우리 협회가 해산하고 재기에 성공한 사장님들과 골프나 치러 다니고 싶다. 그날까지 우리는 음지에서 열심히 움직이겠다”며 싱긋 웃었다.

[조붕구 회장은...]

2013년 12월 개소한 사단법인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는 ‘실패한 기업인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자’는 슬로건하에서 법정관리의 경험이 있는 기업인들과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뜻을 모아 출범한 단체다. 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장은 그 자신이 법정관리까지 갔던 중소기업 코막중공업의 대표이기도 하다.

1997년 설립된 코막중공업은 10년 만에 전 세계에 50개국 이상의 거래처를 둔 강소 수출기업으로 부상했다.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2007년 말 거래은행의 권유로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 200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내며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1년이라는 전례 없이 짧은 기간에 법정관리를 졸업한 조 회장은 다시 전 세계를 누비며 재기를 도모하는 한편, 같은 회생 위기의 기업들을 돕고자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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