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복 벗은 대법관 ‘전관예우’] 대법관 출신 변호사, 어떤 사건 맡나 봤더니

입력 2016-06-23 11:17 수정 2016-06-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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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출신은 개업 막아야” 주장에

“실력 갖춘 전문인력 활용해야” 반론도

2013년 임기만료로 퇴임한 김능환(65·사법연수원 7기) 전 대법관은 로펌으로 가지 않고 편의점과 채소가게를 운영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6개월여 만에 '무항산이면 무항심(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라는 말과 함께 법무법인 율촌에 적을 두면서 결국 대법관 출신 전관 변호사가 됐다.

김 전 대법관의 사례는 공직에서 물러난 전관 법조인이 놓인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위 공직자 출신 법조인이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특정인을 대변하는 게 옳으냐는 지적이 있지만, 반대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라는 반론도 있다.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법원과 검찰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시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대법원은 지난 16일 법조비리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맡은 사건은 하루라도 같이 근무한 대법관에게 배당하지 않고, 배당이 끝난 뒤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붙으면 사건을 다른 대법관에게 넘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러한 방지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법관 출신의 사건배당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개업 자체를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변호사 협회는 퇴임 대법관들의 담당 사건을 전수조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상고심 사건에 몰려있는 현황을 파악하겠다는 취지다.

전직 대법관들은 어떤 사건을 맡고 있을까.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대법관 출신이 로펌에 들어오면 대기업 사건에 이름을 올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펌의 주요 고객인 대기업이 상고심 단계에서 '후광효과'를 고려해 전직 대법관 선임을 요구하면 거절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수의 로펌은 각 기업별로 사건수임과 관계없이 고객관리를 담당하는 변호사를 두기도 한다. 실제 사건에 관여하지 않던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대기업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간 이후에 이름을 올리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2013년 7월 횡령과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후 김앤장에 변호를 맡겼다.1심과 항소심 변론은 법원행정처 사법등기국장 출신의 안정호(48·21기) 변호사가 주도했지만,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가자 2014년 대법관 출신의 손지열(69·사법시험 9회) 변호사가 합류했다. 이후 배임 혐의에 대한 판단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파기환송 판결이 내려졌고, 손 변호사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변호인단에서 빠졌다가 재상고심에서 다시 이름을 올렸다. 이 회장은 22일 현재 손 변호사와 법무법인 화우의 이홍훈(70·7기) 변호사 등 2명의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대법관 재직시절 소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이 변호사는 특히 법조윤리협의회 회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협의회는 법조윤리를 확립하기 위한 단체로, 변호사 징계개시 신청권을 가지고 필요한 실태조사 권한도 갖고 있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법조윤리협의회장이 대기업 사건을 맡는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지만 자제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서울지역의 한 중견 변호사도 "법조윤리협의회 회장과 변호사 활동이 별개라고 생각하신 듯 한데, 아마 본인이 어떤 사건을 맡았는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경개개혁 연대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김재철 전 MBC사장 사건 △특경가법상 조세포탈·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임대업자 김모 씨에 대한 상고심 사건도 맡고 있다.

다른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액의 수임료가 들어가는 전직 대법관을 선임할 수 있는 수요층이 그만큼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손지열 변호사 역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외국계 방위사업체 관계자의 형사사건과 미국 기업 애플이 위치정보를 유출당한 고객들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사건 상고심에 이름을 올렸다. 손 변호사는 농심이 최근 1000억원대 과징금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도 대법관 출신 유지담(70·사법시험 9회) 변호사와 함께 기업 측 변호를 맡았다가 사실상 승소판결을 받은 뒤 파기환송심에서 대리인단에서 빠졌다. 6300억원대 추가 임금 지급이 걸린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상고심 단계에서 대리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국민검사'로 불리다 대법관에 임용됐던 안대희(61·7기) 변호사도 특경가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업체 임원 강모 씨의 상고심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렸고, '편의점 아저씨'로 불렸던 김능환 변호사는 업무상 배임과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사업가 김모 씨의 대법원 사건을 맡고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상고심 위주로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변호사 업계 반발이 심하다. 의뢰인들이 전관 변호사에 가지는 부당한 기대를 활용해 돈을 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상고심 단계에서 전직 대법관의 이름을 올리면 본안판단 없이 종결되는 '심리불속행' 판결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하는 법조인도 적지 않다.

반면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전직 대법관의 경우 아무래도 대법원 재판 구조를 잘 알기 때문에 유리한 면이 있기 때문에 상고심 사건을 맡는 것이지, 실제 영향력이 미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관예우 문제는 현직의 문제라기보다 변호사들이 전관을 악용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장판사는 또 "전직 대법관이 공익활동에 전념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막상 석좌교수나 공익법인 등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극히 제한적"이라며 "재판 연구업무나 단독 재판을 맡기는 '시니어 저지'제도 운용을 검토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실제 현직인 김용덕 대법관은 퇴임 이후 일선 재판부에 복귀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2011년 11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이 "전관예우 등 병폐를 없애기 위해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난 뒤 고등법원 판사나 단독판사를 맡을 수 있느냐"고 묻자, "법원에서 필요로 한다면 충분히 응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1957년생인 김 대법관은 임기 만료 시점인 내년 60세가 된다. 판사 정년인 65세까지 5년간 더 활동할 수 있는 셈이다. 현재 51세인 김소영 대법관도 내년 11월 임기만료로 퇴임하면 10년 이상 정년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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