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 기회주는 기업회생]“빠르면 다이어트, 늦으면 내복약, 최후엔 수술로 치료”

입력 2015-10-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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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치용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절차 전부터 부실부분 과감하게 정리해야”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 토마토 케첩을 처음으로 만든 존 하인츠, 허시 초콜릿 창업자 밀턴 허시. 소설가 마크 트웨인, ‘만화왕’ 월트 디즈니, 가수 MC 해머….

우리나라 도산법 분야 1인자로 꼽히는 임치용(55·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가 파산부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쓴 ‘위대한 파산자들’이라는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성공가도만 달렸을 것 같은 이들은 의외로 실패의 쓴맛을 보고 파산절차를 밟은 뒤 재기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 16일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만난 임 변호사는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간다고 해서 반드시 경영권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위기가 느껴지면 최대한 빨리 절차를 밟으라고 조언했다. 또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도 신규자금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회생절차는 패자부활전…법원 절차 아닌 국가적 합의 문제=임 변호사는 기업 회생절차를 ‘안전망’이라고 표현했다. “서커스 묘기팀이 둘 있어요. 한쪽은 관객들은 볼 수 없지만, 아래에 그물망이 있어요. 다른 팀은 실수하면 그대로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고요. 두 팀 중 어느 쪽이 더 멋있는 쇼를 보여줄까요. 돈을 떼먹는다거나 사기를 친 게 아니라 열심히 사업을 한 사람은 일어서게 해 줘야죠. 패자부활전을 인정하는 겁니다.”

임 변호사는 이 패자부활전이 어떤 방향을 갖는지는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합의에 따라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젊은 사람들이 투자를 하고, 도전하고 이런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좋다고 국민이 박수를 쳐서 패자부활전을 인정해요. 이렇게 만들어진 게 미국 시스템이고요.”

우리나라 파산제도는 원래 실패한 기업에 관대한 제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2006년 법 개정으로 미국식 제도를 상당부분 반영해 파산 이후에도 기업인의 경영권을 일정 부분 인정하게 됐다는 게 임 변호사의 설명이다. “기업이 회생절차를 신청하면 얼마나 출자전환을 덜해서 주식 유지를 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경영권이 달라져요. 빚이 많아서 주식을 많이 넘겨주면 경영권을 넘겨주는 거죠. 이렇게 안 되려면 부채 상태가 나쁘지 않을 때 미리 관리절차에 들어가야 해요.” 1997년 금융위기 전 회사정리법 사건은 52건에 불과했다. 한 해 100건을 넘긴 적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법인과 개인을 합해 사건이 1676건에 달했다.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 주자고 관리절차 이용이 활성화한 것이다. “왜 전에는 취직하러 가면 신원증명을 뗐잖아요. 파산자가 전과자 같았던 거예요. 그러다가 IMF 구제금융 이후에 ‘우리도 미국처럼 프레시 스타트(fresh start)를 할 수 있게 해 주자’ 이런 걸 받아들인 거라고 봐야죠.”

◇도산절차는 병원치료…‘수술 전’ 병원에 가야=막상 기업들은 경영상 위기에 처해도 워크아웃이나 회생절차를 신청할 적절한 시기를 판단하기 어렵다. 임 변호사는 “위기가 느껴지면 빠를수록 좋다”고 조언했다.

임 변호사는 자신을 외과의사로 비유했다.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에서 기업을 수술하고, 재활을 시켜 퇴원시키는 일을 맡는다는 것이다. 일찍 관리절차에 들어가면 다이어트(구조조정) 정도로 그치고, 좀 더 늦으면 내복약(워크아웃)을 먹게 되고, 그보다 더 늦으면 수술(회생절차)을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임 변호사는 우리나라 기업 특성상 최고경영자가 위기에 대한 판단이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망하는 회사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회사 내부 정보가 오너에게 정확하게 전달이 안 된다는 거예요. 나쁜 정보는 숨기는 거죠. 회사가 좀 어떠냐, 물어보면 좋은 정보만 올리다가 갑자기 뭐가 터지면 쩔쩔매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외부 컨설팅을 받는 거고요.”

임 변호사는 기업에 내부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회생절차에 들어가기 전 채권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회사 상태가 좋은 상태에서 절차에 들어가고, 채권자의 양해를 구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채권자 입장에서는 놀라는 거예요. 갑자기 회생신청하고 그러면 협상을 하는 데 걸림돌이 돼요. 회생 결정을 받는다고 해서 법원하고만 일을 하는 게 아니 거든요. 채권자들하고 의논해서 계획안도 만들어야 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산 넘어 산인데, 너무 안이하게 회생신청을 하지 말고 미리 의논을 하는 게 좋습니다.”

◇회생절차 기업도 ‘뉴머니’ 쓸 수 있어야=현재 신용위험평가시스템에서 부실징후 기업에 대해 금융기관들은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있느냐를 기준으로 C등급과 D등급을 부여한다. C등급은 워크아웃절차를 밟으면서 뉴머니로 불리는 신규자금지원을 받지만, D등급을 받은 기업은 회생절차나 파산절차에 들어가고 신규자금 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이라도 재건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금융기관을 구성원으로 한 금융채권위원회가 공동으로 신규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운영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뉴머니 시장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성격의 틈새시장이에요. 조사해서 돈을 꿔줄지 말지 결정하게 하자는 거죠.” 지금도 D등급을 받은 기업에 신규자금을 지원해줄 수 있다. 그러나 C등급은 은행들이 공동으로 지원하는 반면, D등급 기업은 자금을 지원했다가는 배임 혐의가 문제될 소지가 있서 투자를 꺼린다. 은행들이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신규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게 임 변호사의 생각이다.

임 변호사는 도산제도를 더 개선해 우리나라가 ‘리걸 인더스트리’를 조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영국 파견 시절, 유럽 각국의 채무자들이 선진화된 파산 시스템을 갖춘 런던으로 몰려드는 것을 봤어요. 한 러시아 사업가는 러시아 은행을 상대로 재판을 하는데, 1년 수입이 우리 돈으로 68억원짜리인 변호사를 두 명씩 선임해서 사건을 맡겼어요. 영국사람들이 만드는 게 없어도 금융과 법률서비스로 먹고 사는 거잖아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공정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사건이 진행된다’는 믿음을 줘서 브랜드 가치를 올렸으면 하는 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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