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한국의 법인세는 높지 않다

입력 2014-11-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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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최근 복지 예산 확보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에 법인세 부담 논란이 벌어졌다. 사실은 논란이 될 게 없다. 한국의 법인세율 부담이 세계적으로 상당히 낮은 축에 속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국은 해외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하는 아이슬란드나 스위스 같은 인구 수백만의 도시형 국가들이나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과거 동구공산권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은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이 매우 많아서 명목세율이 아닌 실효세율로는 다른 나라들보다 더 낮아진다.

그런데 정부 여당은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한 주장을 펼쳐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이 OECD 상위권으로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높으니 오히려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높은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높으니 오히려 낮춰야 한다는 결론은 악의적 왜곡과 심각한 논리적 오류의 산물이다.

기업의 법인세 부담을 따질 때는 법인세율을 따져야지,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을 따지면 안 된다. 왜 그럴까.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은 각 나라의 세목들 가운데 법인세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것이지, 정확히는 기업들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그런데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이 올라갈 가능성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1)과세 대상자가 늘거나 2)과세대상 소득이 늘거나 3)세율이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기업 입장에서 보면 법인세 부담이 커지는 경우는 법인세 세율이 올라가는 것을 말할 뿐이다.

그런데 전경련과 정부 여당은 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국내 기업들의 법인세율이 높다는 주장과 교묘히 등치시킨다. 하지만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이 높은 것은 세율이 높아서라기보다는 1), 2)번의 영향이 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대비 2011년에 가계소득은 86.4% 증가했는데, 근로소득세수 규모는 141.5%로 가계소득 증가율보다 훨씬 더 많이 늘어났다. 반면 법인소득은 같은 기간 무려 532.9%나 늘어났지만 법인세수는 15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소득은 왕창 증가한 데 비해 세금은 늘어난 소득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비율로 걷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소득이 워낙 크게 늘어나다 보니 전체로서 법인세수 비중은 높아졌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한국의 경우 개인사업자들의 경우 종합소득세율을 적용받아 어느 정도 소득이 늘어나면 세율이 30%를 넘어가게 된다. 반면 법인세율은 최고 세율이 22%이고, 2억원 이하는 10%로 상당히 낮다. 이 같은 개인소득세와 법인소득세의 세율 차이가 어느 나라보다 큰 편이고, 특히 몇 억원대의 소규모 사업자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소득이 1억~2억원 이상으로 늘어난 개인사업자의 상당수가 법인으로 전환하게 된다. 원래는 개인소득세로 잡힐 상당한 세수가 법인세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두 세금 간의 세율 격차가 커지면서 그 같은 변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사실 또 하나는 나라별로 법인세와 개인소득세로 분류하는 기준이 각각 다른 데서 오는 착시현상이 있다. 한국의 경우 법인세로 잡히는 상당 부분의 소득이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상당수 국가에서는 개인소득으로 잡힌다. OECD 비교통계에서 GDP 대비 한국의 법인세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 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이 높으니 법인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전경련 등에서 나오던 주장을 이제 정부 여당이 앵무새처럼 읊조리고 있는데도 이를 비판하는 언론이 거의 없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담뱃값 인상 같은 꼼수로 서민들 세금 부담만 늘릴 게 아니라, 기업들이 적절한 세금 부담을 지게 해야 한다. 이런 게 비정상의 정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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