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안을 두고 "경술국치 버금가는 계묘국치"라고 비판했습니다.
11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 촉구! 2차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이 대표는 "이번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에는 최대의 승리고 대한민국에는 최대의 굴욕...
이 전 대표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 지역에서 진행된 합병 투표 결과를 보도하는 뉴스 화면 사진을 게시하며 “경술국치를 배운 우리가 전쟁통에 사실상의 공개투표를 통해 영토의 할양을 목적으로 하는 세력에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통상국가다?(라고 하는데), 때가 되면 우크라이나에 대해 할 말을 하는 독일은...
A씨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범행 동기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횡설수설하는 등 범행 경위와 동기를 제대로 진술하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추가 조사를 거쳐 구속영장 신청 여부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한편 A씨가 범행을 저지른 8월 29일은 공교롭게도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한 ‘경술국치일’이다.
아키라 역시 일제 강점기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살아온 인물이다. ‘경술국치’가 시작되고, 조선과 자신의 이름을 상실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이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동길의 정체성이 비로소 확인되는 순간이다.
‘여명의 눈동자’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미스트’는 3월 29일까지 대학로 TOM 1관에서 공연한다.
“경술국치가 뭐여?”, “그것도 몰라? 한일합방 된 날 아녀?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를 꼴까닥 삼켜 버린 날이랑게.” 엊그제 전주 막걸리집에서 듣고 본 풍경이다. 대답을 한 사람의 표정이나 어투로 보아 애국애족정신이 충만한 줄은 충분히 짐작하겠으나 그가 사용한 ‘한일합방’이라는 말은 문제가 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날을 어떤 사람은...
'경술국치일', 아픈 역사 되새겨
'경술국치일' 당시 어떤 일 있었나
'경술국치일'을 맞아 많은 이들이 우리의 쓰라린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오늘(29일)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로 남아있는 경술국치일이다. '경술국치'란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치욕 및 수치라는 의미다. 즉,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으며 한반도가 일제에...
29일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한 '경술국치일' 109번째를 맞아 사회 곳곳에서 "치욕스러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술국치일은 1910년 8월 29일은 대한제국이 통치권을 일본에 넘겨줌을 규정한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날이다. 경술국치(庚戌國恥)는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경술년에 당한 일이므로 ‘경술국치(庚戌國恥)’라는 말도 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는 창덕궁의 흥복헌(興福軒:왕의 침실인 대조전에 붙은 대청건물)에서 1910년 8월 22일 13시에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한·일 합병을 결정하였고, 그날 16시에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은 남산의 통감관저에서 한·일 강제합병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그달 29일, 순종황제는...
경기도교육청은 경술국치일인 8월 29일에 각 학교와 산하 기관에 조기 게양 참여를 독려했다고 27일 밝혔다.
도 교육청은 학생과 교직원 모두가 주권을 빼앗겼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현재와 미래 역사를 만드는 주인공임을 인식하는데 조기 게양의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도 교육청은 본청에서 29일 조기 게양 외에 △찬 죽 먹기 △내가 생각하는 ‘한 줄...
임진왜란에 대한 설욕전을 철저하게 준비하여 1910년의 경술국치가 없도록 했어야 했고, 경술국치에 대한 설욕전을 이를 악물고 준비하여 지금쯤은 우리의 국력이 일본보다 훨씬 우위에 있어서 언제라도 일본을 제압할 수 있도록 준비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조금 잘살게 되자, 긴장이 확 풀어져서 설욕전을 치를 준비를 잊은 채 ‘소강(小康)’에...
2009년 우리 선현 서예가들이 남긴 서예유산의 소중함과 우수함을 인식하여 기획한 ‘한국서예문화유산의 서예미 탐색’展, 2010년 경술국치 100주년에 그날을 잊지 말자는 다짐 아래 ‘경술국치100주년-말씀에서 길을 찾다’展을 열었다. 또 광개토태왕 서거 1600년, 임진왜란 발발 7주갑인 2012년에는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왕도를 묻다’展을 개최한 바...
황현은 경술국치 뒤 비통한 감정을 견디지 못해 '절명시'를 남기고 순절한 독립운동가다. 전남 광양 출신으로, 젊은 시절 상경해 강위·이건창·김택영과 함께 한말 4대 시인으로 꼽혔다. 구례로 돌아간 뒤에는 평생 국운을 걱정하며 책을 읽고 저술 활동을 했다.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은 황현의 대표 저서다. 매천야록은 흥선대원군이 집정한 1864년부터 1910년 일제가...
2010년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16개 시·도 교총, 우리역사교육연구회, 한국청소년연맹, 독도학회와 함께 경술국치 100돌을 맞아 10월 25일을 전국 단위 독도의 날로 선포했다.
이에 해마다 10월 25일이면 많은 공공기관과 민간단체가 '독도의 날' 기념행사를 치른다. 또한 유통업계에서는 독도의 날을 기념한 제품을 출시, 수익금 일부를 울릉도에 기부하기도...
하하와 스컬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 맞춰 '대한민국 역사, 실검 프로젝트'를 펼친다.
29일 성신여대 교양학부 서경덕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경술국치'일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하하, 스컬과 함께 대국민 역사교육 캠페인에 나선다.
'대한민국 역사, 실검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날에 맞춰 그 날의 정확한 한국사...
박근혜 탄핵이 결정되던 날 정미홍 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3월 10일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가장 수치스러운 오점을 남긴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글을 남겨 논란이 일었다.
이보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선고에서 탄핵이 인용될 경우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했지만 몇 시간 뒤 말을 바꾸기도 했다.
정미홍 전 사무총장은 세월호...
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 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
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 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
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 오늘 우리는 그...
정미홍은 11일 자신의 SNS를 통해 “3월10일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가장 수치스러운 오점을 남긴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미홍은 “헌재가 잘못한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큰 것은 스스로 헌법을 어겼고, 법리적 해석이 아닌 감정적 판결을 했다는 것”이라며 “이정미 판사는 과거 자신의...
이규완은 이듬해 명성황후 폐위 음모사건에 휘말려 주동자 박영효를 따라 다시 2차 망명을 했다. 박영효의 경호원 격으로 활동한 이규완은 국내에 잠입해 고종 폐위 쿠데타 공작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규완은 1910년 이전부터 조선인 참정권 운동, 자치권 운동을 구상하고 있었고, 경술국치로 나라가 일본에 병합된 이후 조선인에게도 동등한 참정권, 자치권을 요구했다.
1910년 경술국치 소식에 또다시 음독을 시도했다가 대종교 종사 나철(羅喆)에게 구명되고 그 이듬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리고 쑨원(孫文) 등 중국 혁명가들과 친교를 맺고 중국 동맹회에 가입한 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신해혁명에 참여했다.
그는 또한 동제사(同濟社)를 조직, 1917년 독립운동단체의 단결과 통일을 주장한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경술국치 후에는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서 감사관으로 활동했다. 진주군수를 시작으로 동래군수, 충남 및 경북 참여관을 지냈으며 충북도지사와 황해도지사를 거쳐 중추원 참의를 수차례 중임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기업인으로 관변단체에서 계속 활동했다. 특히 태평양전쟁 중에는 조선임전보국단, 국민동원총진회 등 전쟁 지원 단체에 적극 가담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