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모순(矛盾)에 빠진 금융규제 완화 -김덕헌 금융부장

입력 2014-03-20 11:07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전국시대 초나라의 무기 상인이 시장으로 창과 방패를 팔러 나갔다. 상인은 가지고 온 방패를 들고 “이 방패는 아주 견고해 어떤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이어 창을 들어 보이며 “여기 이 창은 아주 예리해 어떤 방패라도 단번에 뚫어 버립니다”라고 치켜세우자, 구경하고 있던 한 사람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되는 거요”라고 묻자 상인이 말문이 막혀 달아났다고 한다.

중국 고전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모순(矛盾)의 유래다.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 개혁 의지를 보면서 아쉽게도 모순(矛盾)이란 생각이 든다.

집권 2년차에 들어선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암 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 등 원색적인 단어를 써 가며 정부 부처에 규제 개혁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은 서민,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 사회적 약자 지원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연초 4·7·4(성장 4%, 고용 70%, 국민소득 4만 달러) 비전을 제시하며 향후 3년간의 경제혁신 계획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4·7·4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기업의 투자와 주택시장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옳은 판단이다. 사실 규제 완화는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정부에서도 고민거리였다.

문제는 규제를 개혁하려 해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역대 정부에서도 시늉만 내다 중단했다.

작금의 상황을 보자.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하는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이미 1000조원을 넘어섰고, 매달 수천억원씩 증가하고 있다.

가계는 부채상환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 저신용자·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은 개인파산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지만 정부는 모든 부동산 규제를 풀고 저리의 주택대출로 서민들의 주택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치솟는 전세금에 빚이라도 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정부도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만, 주택시장 회복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모순(矛盾)적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금융권에 중소기업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중소기업 지원에 소극적이지나 않나 수시로 대출 상황을 점검하며 압박을 한다.

그러나 은행들은 부실 위험이 큰 중소기업에 마구 대출을 해줄 수 없다 보니 고민이 많다. 결국 은행들은 우량 중소기업을 확보하기 위해 영업 경쟁을 벌이지만 그 수가 한정될 뿐 아니라, 우량 중소기업은 굳이 자금을 빌릴 필요도 없어 은행들의 고민이 깊다.

창업·벤처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요구하는 창조금융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창업이 늘고, 벤처기업들이 성공해야 고용이 늘고 산업구조의 쏠림현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자산 건전성과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 은행 입장에선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 방향은 맞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창업·벤처기업에 자금을 주기가 고민스러운 것이다.

부실 대기업 지원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STX, 쌍용건설, 한진해운, 성동조선 등 부실화된 대기업 지원에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이들 회사가 회생하려면 추가적인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데 채권단 입장에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은행들은 정부의 압박에 결국 자금을 지원했다. 시장 논리대로 라면 창조금융도, 중소기업과 부실 대기업 지원도 해서는 안 되지만 정부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지원한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1억건이 넘는 카드정보 유출과 1조8000억원 사기대출 등 잇따른 금융 사고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사고 재발을 막겠다며 TM 영업을 한동안 중단시키고, 계열사 간 정보 공유를 제한하는 등 강력한 규제를 했다. 그동안 허술한 관리감독이 금융사고를 발생하게 했다는 비난을 조금이라도 피하고 싶은 모양이다.

정부 규제는 최소화 해야 한다. 문제는 현실이 규제 개혁의 한계가 있는 모순(矛盾)적 상황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큰 손 美 투자 엿보니 "국민연금 엔비디아 사고vs KIC 팔았다"[韓美 큰손 보고서]②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 유출 카카오에 과징금 151억 부과
  • 강형욱, 입장 발표 없었다…PC 다 뺀 보듬컴퍼니, 폐업 수순?
  • 지난해 가장 잘 팔린 아이스크림은?…매출액 1위 공개 [그래픽 스토리]
  • 항암제·치매약도 아닌데 시총 600兆…‘GLP-1’ 뭐길래
  • 금사과도, 무더위도, 항공기 비상착륙도…모두 '이상기후' 영향이라고? [이슈크래커]
  • "딱 기다려" 블리자드, 연내 '디아4·WoW 확장팩' 출시 앞두고 폭풍 업데이트 행보 [게임톡톡]
  • '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영장심사…'강행' 외친 공연 계획 무너지나
  • 오늘의 상승종목

  • 05.2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5,995,000
    • -0.11%
    • 이더리움
    • 5,252,000
    • +1.49%
    • 비트코인 캐시
    • 700,000
    • +0.5%
    • 리플
    • 729
    • -0.68%
    • 솔라나
    • 244,600
    • -1.17%
    • 에이다
    • 667
    • -0.6%
    • 이오스
    • 1,173
    • -0.34%
    • 트론
    • 164
    • -3.53%
    • 스텔라루멘
    • 153
    • +0%
    • 비트코인에스브이
    • 91,200
    • -2.56%
    • 체인링크
    • 22,930
    • -0.48%
    • 샌드박스
    • 633
    • -0.78%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