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효진의 이슈通]범 삼성가, 깊어지는 갈등의 골

입력 2014-01-20 11:12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전란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1953년 11월 5일 부산 전포동의 한 제당공장. 검은 뿔테 안경 사이로 한 젊은 사업가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이 사업가는 삼성물산을 통해 들여온 원당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설탕을 만들어냈고 이날을 제일제당의 창립기념일로 선포했다. 이듬해 9월 15일 제일모직공업을 설립한 그는 영국과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모직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주위의 시선은 냉담했다. 그러나 그는 1956년 3월 대구 침산동에 모방적 공장을 완공했고, 1958년 수입 양복지를 국내 시장에서 몰아냈다. 이들 3개 기업은 바로 고(故) 이병철 회장이 한국경제에 심은 삼성그룹의 뿌리였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1993년 제일제당은 삼성에서 독립했다. 이후 1996년 종합생활 문화기업인 제일제당그룹으로 새 출발했고, 2002년 CJ그룹으로 새로운 진용을 갖췄다. 이후 삼남인 이건희 현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을 이끌고, CJ그룹은 장남인 이맹희(전 제일비료 회장)씨 집안이 맡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삼성과 CJ의 불편한 관계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씨가 2012년 2월 이 회장을 상대로 유산 상속 소송을 낸 후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양가의 대립은 2건의 송사를 통해 격화되는 양상이다.

1심에서 패소한 이씨는 작년 2월 당초 4조원대의 유산 반환 청구 금액을 96억원으로 낮춰 항소했다. 항소심은 이달 14일 7차에 걸친 변론기일이 종결됐고, 다음 달 6일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항소심 과정에서 이씨는 화해를 하자며 조정을 신청했지만 이 회장 측은 진정성을 의심하며 이를 거절했다. 이씨는 투병 중인 자신과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처지를 국민감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열린 5차 변론기일에서 처음 화해 조정 의사를 밝힌 후 7차 변론기일에서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소회를 적은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더불어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는 등 거듭 화해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청구 취지를 9400억원으로 확정하며 공세를 늦추지는 않는 모습이다.

이 회장 측은 이씨의 이러한 행동을 석연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선 이씨의 화해 조정은 일종의 합의금을 산정하는 민사소송법상 또 다른 소송 행위인 만큼 순수한 형제간의 화해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라는 것이다. 또 “마음의 응어리를 풀자”는 이씨가 편지를 통해 과거 이 회장과의 치부를 드러내며 이를 원망하는 모습에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소송 금액을 늘린 것에 대해서도 “앞 뒤가 맞지 않는다”며 불쾌감을 보이고 있다.

양측의 대립각은 이재현 회장 결심공판에서 더욱 첨예해졌다. CJ제일제당 고위 인사의 증언 과정에서 ‘삼성 매수설’이 터지자 삼성 측은 즉각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위한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CJ 측도 “해당 발언은 검찰 신문 과정에서 나온 만큼 전혀 의도되거나 기획된 것이 아니다”며 “증인이 직접 들은 것을 그대로 얘기했기 때문에 만약 삼성에서 법적 조치를 한다면 당당하게 응할 것”이라고 맞섰다.

얼마 전 한 사교 모임에서 “삼성과 CJ가 왜 다투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양측의 입장을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돌아온 말은 “대기업들 집안싸움이네” 였다. 바로 삼성과 CJ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지난해 가장 잘 팔린 아이스크림은?…매출액 1위 공개 [그래픽 스토리]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 유출 카카오에 과징금 151억 부과
  • 강형욱, 입장 발표 없었다…PC 다 뺀 보듬컴퍼니, 폐업 수순?
  • 큰 손 美 투자 엿보니, "국민연금 엔비디아 사고 vs KIC 팔았다”[韓美 큰손 보고서]②
  • 항암제·치매약도 아닌데 시총 600兆…‘GLP-1’ 뭐길래
  • 금사과도, 무더위도, 항공기 비상착륙도…모두 '이상기후' 영향이라고? [이슈크래커]
  • "딱 기다려" 블리자드, 연내 '디아4·WoW 확장팩' 출시 앞두고 폭풍 업데이트 행보 [게임톡톡]
  • '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영장심사…'강행' 외친 공연 계획 무너지나
  • 오늘의 상승종목

  • 05.2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5,751,000
    • -0.37%
    • 이더리움
    • 5,296,000
    • +4.17%
    • 비트코인 캐시
    • 691,000
    • +0.36%
    • 리플
    • 726
    • -0.55%
    • 솔라나
    • 238,300
    • -2.81%
    • 에이다
    • 659
    • +0.15%
    • 이오스
    • 1,165
    • +0.52%
    • 트론
    • 162
    • -2.99%
    • 스텔라루멘
    • 152
    • +0.66%
    • 비트코인에스브이
    • 90,850
    • -0.87%
    • 체인링크
    • 22,640
    • +0.76%
    • 샌드박스
    • 629
    • +0.64%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