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국민연금]제 역할 못하는 국민 연금, 어떻게 시작됐나

입력 2013-03-2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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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종잣돈 노리고 도입 논의… 애초에 복지는 뒷전

▲지난해 7월 국민연금공단이 베이비붐 세대들의 노후 준비를 지원하기 위해 6개 기관과 공동으로 개최한 ‘제2회 베이비부머 은퇴설계 콘서트’에서 참석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국민연금이 그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제도 도입 당시 표면적으로는 복지의 일환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경제적 이점이었다.

국민연금 제도 도입이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됐던 때는 1973년 1월 1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사회보장연금제도를 도입할 준비에 착수했다고 발표한다. 당시 투자재원으로 큰 규모의 기금이 필요했고 공적연금 도입은 자금을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재원 마련 문제가 해결되자 연금제도 도입은 지지부진해진다. 다시 국민연금이 도입되기까지 14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 기간 동안 사회보험에 대한 진지한 고려나 사회적 합의는 전혀 없었다.

◇ 국민연금은 산업화 종잣돈?= 국민연금 도입을 위한 연구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당시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를 경험하며 핵가족화와 노령화 현상을 맞고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노후소득보장 문제를 의제화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적연금보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공적연금 도입을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 설득이 필수였지만 쉽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초기에 국민연금을 ‘소비성 복지제도’로 인식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KDI는 먼저 미국을 방문해 관련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결과 보고서를 작성한다. 김만제 KDI 초대 원장과 박종기 공동명의로 발간된 ‘사회보장연금제도방안(잠정)’에서 특히 강조된 부분은 연금제도의 도입이 국내 저축의 제고와 투자재원의 조달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울대학교 김상균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중화학 육성을 위한 외자도입 방안을 고민할 때 김만제를 중심으로 공적연금을 통한 재원 마련이 있다고 보고했고, 박 전 대통령은 국민연금의 경제적 이점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72년 말 제도 도입에 대한 연구 및 개발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결국 국민복지연금기금을 통한 재원 조달 방안 대신 국채를 발행해 경제개발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 이처럼 국민연금은 국민의 복지적 고려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산업화 종잣돈 마련을 위한 선택지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1972년께 한국은 해외 차관의 원금 상환에 직면했고, 미국은 독재정권이라며 압박수위를 높여와 ‘자주국방’이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던 시기였다.

연세대학교 김진수 사회학과 교수는 “공적연금 체계 도입과 관련해 이야기가 나왔던 것은 시대적 배경상 정부가 큰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국민연금은 초기에 큰 돈을 만들 수 있고 적어도 15~20년 뒤에 지출이 되기 때문에 산업화 종잣돈 마련 측면에서 제도 도입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복지냐? 경제발전이냐?= 정부와 KDI는 국민연금의 경제적 이점에 큰 의미를 두고 국민연금 제도 도입에 앞장섰으나 복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을 경제발전의 한 수단으로 보는 기획원 관료 및 KDI 학자들과 달리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산하 사회보장심의위원회연구실(사보심)은 소득보장 내지 복지 향상을 염두하고 국민연금을 연구하고 있었다.

1973년 3월 2일 제출된 두 개의 기본 요강안을 시작으로 양 기관의 정책 대결이 시작된다.

노령연금 수급권을 위한 최소 가입기간을 두고 KDI는 10년을 제시했지만 사보심은 20년을 주장했다.

김상균 교수는 “KDI는 10년 정도 가입시킨 기금 액수이면 내자동원에 충분할 것으로 판단한 반면 사보심은 국미니연금이 장기성 보험이라는 특징을 더 강하게 적용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또 사보심은 초기에 국민연금의 기본연금 산정방법을 두고 소득재분배 효과를 조절하기 위한 장치로써 도입된 ‘균등부분’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KDI는 이에 반대했고 결국 연동하는 방법을 택한다. 국민연금 설계에 있어 사회보험으로써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국민연금의 복지적 기능을 두고 벌어진 정책 대결은 오래가지 못한다. 1973년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도입은 무려 14년이나 미뤄지고 1988년에야 시작된다.

그러나 서상목 KDI 부원장이 연금 도입을 연구하며 1986년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국민복지연금’에서 ‘복지’란 단어가 삭제된 ‘국민연금’이란 단어로 바뀐다.

김 교수는 “당시 군부세력은 복지보다 성장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팽배했고 국민연금을 전격 도입하면서 국가 재정은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며 “학계에서는 공적연금의 사회보험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국민연금 도입 자체가 무산될 것을 우려해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연구원 유호선 박사는 “국민연금이 도입될 당시 복지 개념 없어서 연금제도를 도입할 때 많은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정부가 가장 주력했던 부분은 경제발전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요구나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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