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라크 수주 뒷얘기]"기회의 땅 선점" 김승연 뚝심·실무진 도전정신 '개가'

입력 2012-06-25 15:56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80억 달러' 신도시 공사 '사상 최대 규모'…"위험한 전쟁지역" 모두가 망설일 때 결단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10만호 건설공사 CBD(중심업무지구) 조감도.
지난 5월30일 오전 11시30분(현지 시간), 바그다드에 위치한 이라크 총리 공관에서 우리나라 해외건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 수주가 성사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누리 카밀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한화건설과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 간 80억 달러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 본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한화그룹이 사업성을 검토하기 시작한 지 2년이 넘었고, 합의각서(MOA) 체결로부터는 1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성사된 집념의 성과였다. 해외건설협회는 이날 본계약 체결로 우리나라 해외건설 누적수주액이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화건설이 47년 우리나라 해외건설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동남쪽으로 10Km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에 1830ha(550만평) 분당급 규모의 신도시를 7년 간 개발하는 공사다. 국내 건설사가 수주한 단일 프로젝트로는 사상 최대 규모이자, 단일 건설사가 10만 세대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를 ‘디자인 & 빌드(Design & Build, 설계·조달·시공 일괄수행) 방식으로 총괄 개발하는 세계 건설역사 상 첫 번째 사례다.

총 사업비가 약 9조4000억원에 달하는 이번 프로젝트의 수주는 김승연 회장의 선견지명에서 시작됐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기 2년 전인 2009년, 김 회장은 “미국이 승리해 종전이 이뤄지면 대규모 전후 복구사업이 잇따를 것”이라며 한화건설 김현중 부회장에게 해외부문을 전담케 하고, 이와 관련한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김 회장의 판단은 중동 건설붐을 직접 경험했기에 가능했다. 김 회장 역시 1970년대 태평양 건설에서 해외담당 임원과 사장을 지낸 건설맨이다.

◇마음을 움직인 30분 브리핑=김현중 부회장이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 1km의 방공터널을 통해 안전지대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랜 전쟁으로 주택과 전기 등 기본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을 확인하고 대규모 신도시 건설사업의 가능성은 엿볼 수 있었다.

2010년 3월,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는 전후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바그다드 외 15개 지역에 100만호의 국민주택을 건설하는 ‘National Housing Program’을 발표했고, 그 첫 번째 사업이 바로 바그다드 인근 비스마야 지역에 국민주택 10만호를 건설하는 비스마야 뉴시티 프로젝트다.

그러나 이라크는 지정학적 위험요인이 상존해 있는 데다 두바이, 카자흐스탄 등에서의 실패 전력이 있는 세계 130여개 건설업체들은 포기하고 말았다. 한화그룹 만이 “모두가 망설일 때 나서지 않으면 기회의 땅을 선점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참여를 결정했다.

2011년 2월, 한화그룹은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에 당사의 사업 제안서를 제출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단순히 주택을 지어 인도하는 방식을 탈피해 도로와 상·하수도, 발전소, 조경 등 도시 인프라 구축을 포함하는 안을 제시해 발주처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2011년 4월 정부 민관경협사절단의 초청으로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방한했고, 김현중 부회장은 단 10분 동안만 브리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발표는 30분을 넘었다. 한화그룹의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협상 전략이 알-말리키 총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김 부회장의 브리핑 직후 총리는 수행원들에게 ‘한화건설에 사업을 맡기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후일 발주처는 전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와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공사에 관한 MOA 체결을 전화로 보고한 김현중 부회장의 귀에 김승연 회장의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은 영웅이요.”

▲바그다드에 위치한 이라크 총리공관에서 김승연 회장과 말리키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비스야마 신도시 10만호 건설 사업 본 계약 체결식이 진행되고 있다.(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승연 회장의 3남 김동선씨,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누리카밀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 사미 알 아라지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 위원장,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
◇“버리면 온다”는 전략으로=MOA 체결 이후 본계약까지 1년여 동안 구속력이 없는 MOA의 특성을 간파한 제 3국 건설업체들은 본계약 체결을 끊임없이 훼방놓았다고 현대건설 측은 전했다.

이때 김승연 회장은 그룹 TFT 사상 최대 규모인 100여명이 넘는 이라크 TFT를 구성해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본 계약이 지연되자 “사업이 좌초됐다”는 루머까지 돌았지만 김 회장은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라”며 김현중 부회장을 비롯한 관련 임직원들을 끝까지 독려했다.

또한 사미 알-아리지 NIC 의장 등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이 방한했을 때, 238만㎡ 부지에 1만2000여 세대 규모로 조성 중인 인천 에코메트로를 헬기에 태워 보여준 것도 김승연 회장의 지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민간도시개발사업인 인천 에코메트로 등 신도시 개발분야에서의 당사의 역량을 직접 보여줘야만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본계약 체결까지 몇 번의 협상을 통해 상호 간의 이견을 좁혀 나가던 2011년 12월,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가 찾아왔다. 발주처 측에서 분양계약에 기인한 캐시플로우 구조상 대금지급을 연 단위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연 단위의 대금지급으로는 자금 부담이 커서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버리면 온다”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화그룹은 발주처인 NIC 사미 알-아라지 의장에게 “한화건설은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본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이런 조건에서는 사업을 진행시킬 수 없다”고 통보하고 한국으로 철수해 버렸다.

2~3주의 냉각기 이후 발주처와의 협상은 극적으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발주처인 NIC의 입장에서도 100만 세대 National Housing Program의 첫 번째 사업인 본 프로젝트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으며 청약이 완료된 상황에서 본 사업을 접기에 부담이 컸던 것이다.

현지 채널을 통해 연 단위로 기성을 지급하겠다는 발주처 측의 지급 조건을 앞당기는 노력이 진행되었고 한화그룹도 자체적으로 프로젝트 자금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장 중요한 이슈였던 대금 지급 조건이 완화되어 당사의 자금 흐름에 영향이 없는 수준까지 내려가게 되었으며 이후 계약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탄력을 받은 계약 협상은 2012년 3월 이라크 국가기술위원회의 재방한을 통한 설계 및 기술 관련 최종협상을 통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5월 15일 이라크 국무회의를 통과해 5월 30일 이라크 현지에서 역사적인 본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7전 8기, 끈기와 집념이 이룬 성과였다.

◇포탄도 두려워하지 않은 도전정신=한편 김현중 부회장을 비롯한 실무진들은 이라크 출장 때마다 안전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장갑차가 맨 앞에 서고 무장 경호차량이 그 뒤를 이으며 무장경호원이 탑승한 방탄차에 탑승하여 겹겹의 호위를 받곤 했다. 요즘도 이라크에 입국하면 방탄조끼를 입고 방탄차에 탑승해 전문 경호업체의 보호를 받지만 2년여 전보다 많이 안전해진 상태다.

안전과 관련한 에피소드 가운데 김현중 부회장의 간담을 서슬하게 했던 일화가 있다. 지난해 10월경 김 부회장은 새벽녘까지 늦은 회의를 마치고 현지 캠프에서 잠을 자다 아침 무렵 황급히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간밤 캠프 인근 50미터 지점에 박격포가 떨어져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다. 폭격이 있으면 캠프 안의 모든 인원은 즉시 방공호에 대피해야 했지만 김 부회장은 너무 피곤해 잠에서 깨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김 부회장은 포탄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의 소유자로 소문이 났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가족이라 참았지만"…장윤정→박세리, 부모에 눈물 흘린 자식들 [이슈크래커]
  • 제주 북부에 호우경보…시간당 최고 50㎜ 장맛비에 도로 등 곳곳 침수
  • ‘리스크 관리=생존’ 직결…책임경영 강화 [내부통제 태풍]
  • 맥도날드서 당분간 감자튀김 못 먹는다…“공급망 이슈”
  • 푸틴, 김정은에 아우르스 선물 '둘만의 산책'도…번호판 ‘7 27 1953’의 의미는?
  • 임영웅, 솔로 가수 최초로 멜론 100억 스트리밍 달성…'다이아 클럽' 입성
  • 단독 낸드 차세대 시장 연다… 삼성전자, 하반기 9세대 탑재 SSD 신제품 출시
  • 美 SEC, 현물 ETF 출시 앞두고 이더리움 증권성 조사 중단 外 [글로벌 코인마켓]
  • 오늘의 상승종목

  • 06.20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2,202,000
    • -0.18%
    • 이더리움
    • 5,047,000
    • +0.96%
    • 비트코인 캐시
    • 554,500
    • -0.63%
    • 리플
    • 699
    • +0.72%
    • 솔라나
    • 191,000
    • -3.78%
    • 에이다
    • 552
    • -0.9%
    • 이오스
    • 827
    • +2.35%
    • 트론
    • 163
    • -1.21%
    • 스텔라루멘
    • 132
    • +0.76%
    • 비트코인에스브이
    • 62,850
    • +0.56%
    • 체인링크
    • 20,570
    • +1.63%
    • 샌드박스
    • 470
    • +3.07%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