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입력 2010-10-12 11:18 수정 2010-10-1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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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남편과 갑작스런 사별…“슬퍼할 시간에 슬픔에 도전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나는 ‘장영신’이라는 이름 석자 외에 ‘애경’을 남길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나는 없어져도 애경은 영원히 남아 세상사람들과 벗하며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애경은 길다.”

장영신 회장은 여성이라는 사회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불굴의 노력으로 탁월한 경영수완을 발휘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경영자다.

미국 체스넛힐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장 회장은 1972년 경영일선에 들어선 이래 종합생활용품, 석유화학 기초원료 사업으로 세계 속의 기초화학 기술을 선도해왔으며, 유통업과 레저산업 등에 진출하며 오늘날 생활·항공부문, 화학부문, 유통·부동산부문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애경을 건실한 중견그룹으로 성장시켜 왔다.

장 회장은 경영일선에 있는 동안 하루 일과는 매일 새벽 5시 기상과 함께 조간신문을 읽고 그날 하루의 주요업무를 듣고 기업경영에 반영하는 섬세한 경영을 해왔다.

“남보다 앞서서 나가는 진취적인 정신과 열심히 일하는 근면한 자세, 그리고 마음을 합치는 화합의 정신”을 강조함으로써 장 회장의 기업경영 철학이 먼 곳이 아닌 가까운 생활 속에서 나온 경영관임을 보여주고 있다.

장 회장은 경영일선에서는 과감하게 ‘솔직’과 ‘상식’, ‘정직’에 입각한 정도경영(正道經營)으로 일관했다. 애경그룹은 타사에 비해 장기근속자가 상대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노사분쟁이 없는 회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재계에서는 △장 회장이 경영자로서 활동하는 동안 오로지 한 우물 파기에만 주력, 화학공업 중심의 업종 전문화에 성공한 점 △처음부터 ‘솔직’과 ‘상식’, ‘정직’에 입각한 ‘정도경영(正道經營)’으로 일관한 점 △생활용품 제조업에서 기초화학공업으로 확대해 오늘날의 애경그룹을 형성할 수 있는 혜안 등을 들어 여성도 잠재력을 지닌 훌륭한 인적자원이라는 사실과 여성 기업인의 성공가능성을 몸소 확인해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애경을 20여개 계열사, 매출액 3조7000억원대(2009년) 규모의 그룹으로 키워낸 장영신 회장은 여성성을 특화해 남성을 뛰어넘는 탁월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 기념비적 기업가라고도 평하고 있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경리학원 등록부터= 애경은 장영신 회장의 남편인 고 채몽인 선대사장이 비누사업을 시작으로 1954년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라는 상호로 탄생했다.

첫 해에 세탁비누 23만개를 생산했는데 당시만 해도 겨비누나 양잿물로 세탁을 하던 시절이라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이듬해 서울 영등포에 공장을 짓고 1956년 국내 최초 화장비누인 ‘미향비누’를 생산했다.

▲장영신 회장이 지난 1985년 모교인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체스넛 힐 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업이 확장일로에 있던 1970년 갑작스런 창업주의 죽음을 맞았다. 1970년 7월12일 막내아들을 낳고 병원에 누워있던 장 회장은 한창 활동할 나이에 사업도 번창일로에 있던 남편이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타계한 소식을 들었다.

"나는 슬퍼할 시간 대신 슬픔에 도전하고 운명을 탓하는 대신 운명에 도전하고 불행과 절망을 극복해내기로 마음을 다져먹었습니다. 그때 그 힘은 인간 장영신보다 여자 장영신보다 네아이의 엄마 장영신에게서 나온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였죠."

이렇게 3남1녀의 네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장 회장의 갑작스런 여성 CEO로써의 인생이 시작됐다. 장 회장은 남편의 1주기를 마치고 회사경영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경리학원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경영을 하려면 부기와 경리를 알아야 하는데 장 회장은 돈 액수를 읽으려면 동그라미 수를 세어가면서 일, 십, 백, 천… 하는 식으로 숫자에 까막눈이었던 것.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경영에 필요한 재무제표니 손익 계산서니 하는 것들을 배워 나갔다.

◇임직원과 함께 만들어가는 애경 “솔직과 상식으로”= 78년 7월 저녁 뉴스를 보다 영등포 공장에 불이 난 사실을 알게 된 장 회장은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현장에 달려갔지만 이미 창고와 제품이 다 타버린 뒤였다. 직원들은 창고 안 물건을 공장 마당으로 꺼내느라 온몸이 재 범벅이 됐다.

그 해 10월 장 회장은 직원들의 용기 있는 행동과 협동정신에 감사하는 표시로 계획에 없던 임금 인상을 했다. 직원 사기가 높아지면서 매출액은 전년보다 32.1% 증가한 292억9200만원을 기록했다. ‘임직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애경’이라는 공감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산이 됐다.

80년대 들어서는 고객의 눈높이가 높아지자 외국 선진기업의 기술을 제품에 접목해 품질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82년 1월 식료품, 합성세제 분야에서 세계 최대 브랜드를 보유한 영국의 글로벌 회사와 기술제휴를 맺었다.

이후 생산한 비누와 샴푸가 인기를 끌면서 합작사 설립을 검토했다. 당시만 해도 합작이 보편화되지 않은 때라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남편이 세운 회사 팔아먹는 것 아니냐’는 주변 시선도 부담이었다.

‘기술과 생산 모든 것을 들여오되 기술료는 내지 않는다’ ‘합작은 50대 50으로 하되 애경 중심으로 경영한다’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디만 며칠 뒤 뜻밖에도 합작을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두 회사는 84년 11월 애경산업주식회사 설립등기를 완료했다.

이때부터 장 회장은 애경과 거래하는 외국 업체 사이에서 ‘터프우먼’으로 통하게 됐다. 원리원칙대로 협상하고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뽑아내는 등 협상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이후 1993년 유통업에 진출했다. 9월 영등포 공장 부지에 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 구로점을 오픈했다. 이후 수원, 분당, 평택 등 4개 백화점과 AK몰 등 유통사업을 확장했고, 2005년에는 항공사인 ‘제주항공’까지 설립하며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사가 됐다.

이러한 근간에는 장영신회장의 솔직과 상식을 바탕으로 한 정도경영을 통해 가능했으며, 애경이란 사명에서 알 수 있듯 ‘애인경천(愛人敬天)’ 즉 사랑과 존경의 이념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1872년 애경유지 대표이사 취임 당시의 장영신 회장.
◇합작사엔 ‘터프 우먼·어글리 마담 장’

기념식에 태극기 달지말란 말에 ‘발끈’

“여자란 것은 처음부터 여자로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여자니까’라는 선입견과 편견 속에 여자가 되도록 키워지고 그 결과 ‘약한 여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여성경영인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불과 30여년전만해도 여자가 사장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보이던 때였다. 여자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여자라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성공의 발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장 회장은 오늘날 男보란 듯 성공한 기업경영인으로 꼽히고 있다.

장 회장은 합작이나 기술제휴를 했던 외국업체들 사이에서 터프우먼이나 어글리 마담장으로 통한다. 재밌는 일화가 있다. 합작초기에 기념식을 치르는데 그들은 준비과정에서 식장에 태극기를 달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그들은 한국회사가 아니라 합작회사임을 강조하며 이를 거부했던 것.

이에 발끈한 장 회장은 더 큰 태극기를 식장 한가운데에 단 것은 물론 애국가 제창,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 순서대로 전부 다 해버렸다.

"그들은 나에게 마담장 터프우먼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죠." 업무관계로 외국출장이 잦았는데 그 과정에서 여자회장 만이 겪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계열사 사장 중에 성(姓)이 같은 분과 갈 때면 특히 곤욕을 치러야 했던 것.

남편의 성을 따르는 서양방식 때문에 부부로 취급되곤 했던 것이다. 호텔에 예약을 해놓고 찾아가보면 분명히 방을 두개 부탁했음에도 그들의 과잉친절(?)로 말미암아 한개만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나를 더 요구하면 프런트 직원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 됐다.

장 회장은 처음부터 비즈니스로 왔다고 밝히며 방을 따로 달라고 하면서 "나는 비서예요" 라며 말을 하곤 했다.

경영일선에 나선 이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텨온 장 회장은 눈물샘이 말라버렸는지 울어본 기억조차 없다고 말을 하곤 한다.

오직 애경이라는 기업경영에만 매달려온 장 회장은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여성경영인의 대표격이 되고 있다. 경영을 하면서 일관되게 가져온 철학, 업종 최고라는 명예를 갖고 싶은 장 회장만의 경영철학이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 여성경영기업인이란 명예를 먼저 거머쥐게 해준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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