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8 수천만원짜리 겨울 외투 : 슈퍼리치들의 아우터 [THE RARE]

입력 2026-10-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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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ARE ] VOL. 18

수천만원짜리 겨울 외투:
슈퍼리치들의 아우터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이 있다."

부자 중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명품관의 오픈런 줄에는 그들이 없습니다. 세상의 0.0001%로 살아가는 그들, '천외천'의 삶은 우리의 상식 밖 궤도에서 움직입니다.

로고가 없는 3000만원짜리 코트,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1억원의 침대, 그리고 지도에서 지워진 리조트. 남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과시'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단절'을 사는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투데이 [THE RARE]는 일반인들은 접하기도 힘든,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훔쳐보고 싶은 견고한 성벽 안쪽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고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소비와 취향, 그 속에 숨겨진 부의 트렌드를 들여다 봅니다.

상위 0.0001%가 사는 세상의 문을 열다

VOL. 18 아우터

(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차에서 내려 건물 입구까지 걷는 몇 분, 호텔 로비의 회전문을 지나는 몇 분. 슈퍼리치의 외투가 실제로 찬 공기와 맞닿는 시간은 하루를 통틀어도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외투의 값은 수천만원, 소재에 따라서는 억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루에 입는 시간은 가장 짧은데, 옷장에서 머무는 시간은 가장 긴 옷입니다. 하지만 계산의 단위를 '하루'에서 '십 년'으로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옷의 가격에는 입는 시간 뿐 아니라 '만드는 데 걸린 시간'과 '앞으로 남을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외투는 계절을 건너는 옷입니다. 한 해에 몇 달만 꺼내 입고 나머지는 옷장에서 기다리지만, 한번 사면 가장 오래 곁에 남는 옷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는 이 '짧게 입고 길게 남는 옷'에서 출발해, 네 개의 브랜드가 '시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값에 녹여 내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진짜 부자는 코트를 입지 않는다?

2023년 막을 내린 HBO 드라마 '석세션(Succession)'은 방영 내내 '부자들의 숨은 사회적 코드'로 화제가 됐습니다. 극 중 막내아들 로만 역을 맡은 배우 키어넌 컬킨은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를 통해 "진짜 부자는 코트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들에게는 추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일이 없습니다. 자택의 차고에서 전용 차량으로, 차량에서 사무실과 호텔 로비로, 하루 종일 온도가 조절된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니 날씨가 옷차림을 정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은 아우터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외투는 원래 추위를 막는 '필요'의 옷인데, 그 필요가 가장 적은 사람들이 가장 비싼 외투를 고릅니다. 그러니 슈퍼리치의 아우터는 기능이 아니라 '선택'의 사치입니다.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고르는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극 중 오랜 부를 상징하는 피어스 가문과 신흥 부호 로이 가문의 옷차림을 가른 것은 가격이 아니라 '증명의 필요'였습니다. 20년 된 스웨터를 입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과, 새 로고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로고 없는 코트라도 무엇이 값을 가르는 걸까요. 영국 남성 패션 매체 '에이프 투 젠틀맨(Ape to Gentleman)'은 럭셔리 아우터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는 소재입니다. 캐시미어나 울 같은 천연 섬유, 혹은 고어텍스 같은 첨단 기술 소재를 얼마나 신중하게 고르는가의 문제입니다. 고급 다운 재킷이라면 필파워가 높은 구스다운을 써서 부피를 늘리지 않고 보온성을 높이고, 저가형은 값싼 깃털로 대신합니다. 둘째는 장인정신입니다. 정교한 스티칭과 보강된 솔기, 소량 생산이라는 조건이 가격에 반영됩니다.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같은 고급 의류 생산지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브랜드 헤리티지입니다.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나 벨스타프의 왁스드 코튼 모터사이클 재킷처럼, 특정 카테고리의 '정답'을 만들어 낸 이력은 값에 곧바로 붙습니다.

이 세 기준을 시간의 언어로 바꾸면 하나로 모입니다. 소재는 원료를 기르는 데 걸린 시간, 장인정신은 만드는 데 걸린 시간, 헤리티지는 쌓아 온 시간입니다. 이번 호는 이 시간의 값을 네 갈래로 따라갑니다.

기르는 시간, 일하는 시간, 견디는 시간, 물려주는 시간. 같은 코트라도 어느 시간에 값을 매기느냐에 따라 가격표의 이유가 달라집니다.

안데스 고원의 야생 섬유부터,

움브리아의 작은 마을과 뉴욕의 재단대를 지나 나폴리의 손바느질까지.

이번 호에서는 슈퍼리치들만이 공유하는 '천외천(天外天)'의 아우터를 들여다봅니다.

CHAPTER 01 . GROWING TIME

로로피아나, 기르는 시간

▲로로피아나(Loro Piana)의 1375만원 마리아 코트. (출처=Loro Piana 공식 웹사이트 캡처)
▲로로피아나(Loro Piana)의 1375만원 마리아 코트. (출처=Loro Piana 공식 웹사이트 캡처)

첫 번째 시간은 옷이 만들어지기 한참 전, 원료가 자라는 시간입니다. '로로피아나(Loro Piana)'는 1924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 콰로나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브랜드로, 여섯 세대에 걸쳐 고급 직물을 다뤄 온 가문 기업입니다. 2013년에는 LVMH그룹이 지분 80%를 인수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브랜드의 값을 이해하려면 '비쿠냐(Vicuña)'부터 알아야 합니다. 안데스 고원에 사는 낙타과 동물로, 섬유가 머리카락의 몇 분의 일에 불과할 만큼 가늘고 부드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한 마리에게서 얻는 털은 수백 그램 수준이고, 털을 얻는 주기도 수년에 한 번입니다. 코트 한 벌에 여러 마리의 털이 들어가다 보니 비쿠냐 코트는 수천만원대에서 억대까지 가격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돈을 더 낸다고 동물이 더 빨리 자라지는 않습니다. 이 가격표의 첫 줄은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로로피아나는 옷을 짓기 전에 원료 쪽으로 먼저 걸어 들어갑니다. 페루 등 원산지에서 비쿠냐 보호와 원료 확보에 직접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능도 놓치지 않습니다. '스톰 시스템(Storm System)'과 '레인 시스템(Rain System)'은 고급 천연 소재 위에 방풍ㆍ방수 기능을 얹은 가공으로 알려져 있고,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도 비 오는 도시를 걸을 수 있게 합니다. 다만 천연 섬유는 관리가 까다롭고, 값이 곧 내구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로피아나가 말하는 값어치의 기준

이 브랜드의 가격은 디자인이 아니라 '얼마나 드문 섬유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했는가'에서 출발합니다. 안데스의 야생 동물 한 마리가 내어 주는 털은 수백 그램. 이 숫자가 곧 가격표의 첫 줄입니다.

이 브랜드는 '석세션' 이후 '조용한 부(Wealth Whispers)'의 상징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극 중 인물이 쓴 무지 블랙 캐시미어 야구 모자가 460유로(약 70만원대)에 이른다는 점이 화제가 됐고, 미국 매체 'GQ'는 이 브랜드를 두고 '억만장자들의 유니클로'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역설이 생겼습니다. 중산층 상위 소비자들이 이 브랜드를 '부의 위장복'처럼 사 입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오래된 부자들에게는 촌스러운 선택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온라인에서 나옵니다. 기르는 데 걸린 시간은 그대로인데, 유행이 만든 시간은 훨씬 빠르게 흐른다는 뜻입니다.

CHAPTER 02 . WORKING TIME

브루넬로 쿠치넬리, 일하는 시간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의 3565만원 캐시미어 비버 필드 재킷. (출처=BRUNELLO CUCINELLI 공식 웹사이트 캡처)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의 3565만원 캐시미어 비버 필드 재킷. (출처=BRUNELLO CUCINELLI 공식 웹사이트 캡처)

두 번째 시간은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입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는 1978년 이탈리아에서 컬러 캐시미어 니트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본거지는 중부 움브리아의 중세 마을 솔로메오(Solomeo)입니다. 공장이 도시 외곽의 상자가 아니라 복원된 마을 안에 있다는 점이 이 브랜드의 출발점입니다.

창업자가 내세우는 개념은 '인본주의적 자본주의'입니다. 노동의 존엄과 이윤이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원 처우를 시장 평균보다 후하게 하고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을 지키는 문화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일하는 시간이 곧 옷의 품질이 된다는 계산입니다. 대량 생산의 논리가 '더 빨리, 더 많이'라면 이 브랜드의 논리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사람이 만든 만큼만'입니다.

결과물은 대체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베이지, 그레이, 네이비, 카멜 같은 차분한 색 안에서 캐시미어와 울의 질감으로 차이를 만듭니다. 캐시미어 코트와 재킷은 대략 수백만원에서 천만원대 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 매체 '에이프 투 젠틀맨'은 이 브랜드를 두고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유명한 만큼 옷의 정교함으로도 유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눈에 띄는 장식 없이 어깨선과 드레이프, 단추 하나까지 맞춘 옷이라 입어 본 사람만 차이를 압니다. 물론 철학이 곧 품질을 보장하지는 않고, 이야기에 값을 매기는 일은 늘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 옷을 사는 사람이 치르는 값에는 천천히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회장의 '파이낸션 타임스(Financial Times)' 인터뷰 발언 中

"I wanted a company that made healthy profits, but did so with ethics, dignity and morals... During work we support fair profitability and harmony between profit and giving back to the community. Our growth level must be gracious. Everything in this business has to be gracious. I love profit, but I want it to be a fair and gracious profit, not one that damages humanity or the dignity of the person."

"나는 건강한 이윤을 내되, 윤리와 존엄성, 그리고 도덕을 지키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업무 과정에서 정당한 수익성을 지향하며, 이윤 창출과 사회 환원 사이의 조화를 지원합니다 우리의 성장 수준은 우아해야 합니다. 이 사업의 모든 것은 우아함을 갖추어야 합니다. 나는 이윤을 내는 것을 사랑하지만, 그것은 인간성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이익이 아닌, 정당하고 우아한 이윤이어야 합니다."

CHAPTER 03 . ENDURING TIME

더 로우, 견디는 시간

▲더 로우(The Row)의 1535만원 Nils 코트. (출처=The Row 공식 웹사이트 캡처)
▲더 로우(The Row)의 1535만원 Nils 코트. (출처=The Row 공식 웹사이트 캡처)

세 번째 시간은 유행을 견디는 시간입니다. 더 로우(The Row)는 배우 출신 쌍둥이 자매 메리 케이트 올슨과 애슐리 올슨이 200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대중적 스타 출신의 창업자가 자신들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옷의 비율과 소재로 승부했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힙니다. 이 브랜드의 아우터는 한눈에 감탄이 나오는 옷이 아닙니다. 오버사이즈 코트, 직선으로 떨어지는 롱코트, 캐시미어와 울, 부드러운 가죽. 디자인은 단순한데 어깨와 소매, 기장의 균형이 정교해서 입었을 때 몸이 정리되는 느낌을 준다고 평가받습니다. 가격은 코트 기준으로 대략 수백만원에서 천만원대 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싼 이유는 새로움이 아니라, 새롭지 않아도 되는 완성도에 있습니다.

남성 라인도 같은 문법을 따릅니다. 캐시미어와 버진 울을 섞은 오버사이즈 코트, 버진 울 개버딘 코트, 버진 울 트윌 재킷처럼 이름만 보면 평범한 소재와 형태의 옷이 중심입니다. 에이프 투 젠틀맨은 이 브랜드를 두고 '극단적인 절제와 뛰어난 소재,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격표'를 가진 곳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브랜딩은 거의 없고 유행을 따르는 디테일도 드물어서, 옷장 안으로 스며든 뒤 다른 옷들보다 조용히 더 오래 버티는 코트라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오래 버틴다'는 말의 뜻입니다. 소재가 닳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유행이 바뀌어도 어색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같은 코트를 꺼내 입을 수 있다면 그 옷은 시간을 이긴 것입니다. 다만 '로고 없음'이 하나의 유행이 되는 순간 이 문법도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은 이 시장이 안고 있는 숙제입니다.

패션쇼에서 스마트폰을 금지시킨 '더 로우'에 대한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 中

"In an era where fashion shows are largely designed for social media virality, The Row took a radically different approach. Guests were asked to refrain from using their phones to record or take photos, and were instead provided with a Japanese paper notebook and a pencil to jot down their thoughts manually. It was an invitation to slow down, be present, and experience the clothes through direct observation rather than through a phone screen."

"패션쇼가 대부분 소셜 미디어상의 바이럴(화제성)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는 시대에, 더 로우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취했습니다. 참석자들에게 영상이나 사진 촬영을 위해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자신의 생각과 감상을 손으로 직접 적을 수 있는 일본식 종이 수첩과 연필을 제공한 것입니다. 이는 속도를 줄이고,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한편, 휴대폰 화면이 아닌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옷을 경험하라는 초대였습니다."

CHAPTER 04 . PASSING TIME

키톤, 물려주는 시간

▲키톤(Kiton)의 브라운 퓨어 캐시미어 코트. (출처=Kiton 공식 웹사이트 캡처)
▲키톤(Kiton)의 브라운 퓨어 캐시미어 코트. (출처=Kiton 공식 웹사이트 캡처)

마지막 시간은 옷이 한 사람의 옷장을 넘어 다음 사람에게 건너가는 시간입니다. 키톤(Kiton)은 1968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브랜드로, 나폴리 특유의 부드러운 어깨선과 수작업 재단·봉제 전통을 앞세웁니다. 슈트와 재킷, 코트 모두 상당 부분을 장인의 손바느질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 벌에 들어가는 작업 시간은 수십 시간에 이른다고 전해집니다.

나폴리 재단의 핵심은 입었을 때 가볍고 몸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어깨 안쪽의 심지와 패드를 최소화하고 손으로 곡선을 잡아 주는 방식이라, 기성복이면서도 몸에 붙는 느낌이 다르다고 평가받습니다. 가격은 재킷이 수백만원대, 코트와 캐시미어 소재 아우터는 천만원 안팎에서 그 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으로 지은 옷의 장점은 고쳐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매 길이와 품을 손보고, 안감을 갈고, 단추를 바꾸면 옷은 몸의 변화를 따라가며 늙습니다. 석세션의 피어스 가문이 20년 전 할아버지의 스웨터를 아무렇지 않게 입는 장면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물려줄 수 있는 옷은 처음부터 '유행'이 아니라 '유산'으로 설계된 옷입니다.

여기서 간단한 계산을 해 봅시다. 가정이지만, 1000만원짜리 코트를 30년 동안 입는다면 한 해 비용은 약 33만원, 한 달에 3만원이 되지 않습니다. 매년 한두 달만 입는 옷이라면 '입는 날 하루'당 값은 더 작아집니다. 같은 1000만원이어도 한 시즌에 버려지는 옷과 30년을 건너는 옷은 전혀 다른 소비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계산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관과 수선에도 비용이 들고, 취향이 바뀌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장이 값을 정당화하는 방식만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비싼 것이 아니라 오래 쓰는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EPILOGUE

따라 할 수 없는 시간

(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이번 호에서 만난 네 브랜드는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가격표에 담았습니다. 원료가 자라는 시간, 사람이 일하는 시간, 유행을 견디는 시간,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시간입니다. 로고 없는 코트의 차이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 뒤에는 소재를 확보하고 옷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만으로 수천만원이라는 가격이 모두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희소성을 소유하는 만족과 브랜드의 명성도 값에 포함됩니다. ‘오래 입을 수 있다’는 기대 역시 실제로 오래 입었을 때 비로소 확인됩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코트라도 옷장에만 걸려 있다면, 좋은 옷이라는 설명은 구매 당시의 약속에 머뭅니다.

옷의 수명을 완성하는 데는 입는 사람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계절이 끝나면 손질하고, 해진 부분을 고치고, 다음 겨울에 다시 꺼내 입는 일입니다.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옷에는 장인의 바느질뿐 아니라 그 옷을 돌본 사람의 수고도 남습니다.

우리의 옷장에도 그런 외투가 있습니다. 몇 해째 출근길에 걸치는 코트, 추운 날이면 먼저 찾는 패딩, 소매가 조금 닳아도 편해서 계속 입는 재킷입니다. 가격과 브랜드를 떠나 해마다 제 역할을 하는 옷이라면, 이미 충분한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외투를 입고 보내는 하루에도 각자의 시간이 쌓입니다.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고, 바쁜 와중에 가족의 안부를 묻습니다. 특별히 드러나지는 않아도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들입니다. 귀한 소재가 자라는 시간만큼, 우리가 매일 들이는 시간에도 그 나름의 무게가 있습니다.

오늘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루의 몫을 다하고 곁의 사람들을 챙긴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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