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가족 이사회’와 벤처 특례의 그늘

입력 2026-10-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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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의 투명성과 거버넌스 선진화를 둘러싼 정책적 논의가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 일각의 이사회 풍경은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지 20년 안팎에 이르는 한 중소 상장사 A사의 등기임원 명부에는 창업주와 배우자, 직계 자녀 등 오너 일가만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의 독단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사외(독립)이사는 단 한 명도 선임되지 않았다. 회사 정관에 ‘사외이사를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으로 둔다’는 구체적 조항을 두고 있음에도, 실제 이사회 테이블은 오너 일가 중심의 폐쇄적인 가족 경영 구조로 상장 후 줄곧 운영되는 실정이다.

상법상 원칙과 자체 정관을 비껴간 이러한 지배구조가 법적 제재를 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도의 예외 규정이 자리 잡고 있다. 현행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상법 시행령은 벤처기업 인증을 보유한 자산총액 1000억원 미만의 코스닥·코넥스 상장사에 대해 사외이사 선임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이 규정은 자금력과 전문 인력 풀이 취약한 초기 스타트업이 불필요한 고정비 부담 없이 연구개발(R&D)과 사업 확장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정책적 배려였다.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신생 혁신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려는 규제 유예 장치였던 셈이다.

물론 코스닥 전체를 둘러볼 때 A사와 같은 상장사가 다수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다수 기업은 지배구조 개선 흐름에 발맞추거나 시장의 눈높이를 고려해 최소한의 이사회 독립성을 갖추려 노력한다. 하지만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이러한 사각지대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A사처럼 상장 연한이 20년을 훌쩍 넘긴 성숙기 기업이 자산 규모 기준과 정량 요건의 틈새를 활용해 벤처 인증을 갱신하며 감시망을 피하는 행태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실적 부진 속에서도 현금배당을 유지하고 경영권 안정화를 위한 자본 정책을 실행할 여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1% 안팎에 그친 채 사외이사 선임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호소하는 것은 시장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견제 장치가 부재한 가족 중심 이사회는 필연적으로 내부 감시의 사각지대를 낳는다. 특수관계인 회사와의 내부거래나 경영권 승계, 셀프 연봉 인상 등 이해상충 소지가 있을 사안들이 외부의 독립된 시선 없이 결정될 위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사외이사가 종종 ‘거수기’라는 한계에 직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외부 견제망이 존재하는 것과 아예 가족끼리 결정을 내리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정부와 시장이 거버넌스 밸류업의 핵심 과제로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개편하고 경영 투명성과 내부통제 책임을 한층 무겁게 묻는 배경 역시 이러한 최소한의 안전판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비상장 가족기업이라면 친족 중심의 경영 체제를 유지하더라도 시장이 간섭할 명분은 크지 않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일반주주로부터 자본을 조달하고 상장사로서의 공적 프리미엄을 누리는 기업이라면 경영 투명성은 선택이 아닌 기본 책무다.

체가 가늘어야 걸러지는 돌들이 많아지듯, 시장의 신뢰를 훼손하는 미세한 구멍까지 촘촘히 솎아내는 족집게 정책과 정교한 법안이 절실한 이유다. 제도의 본래 취지가 아무리 좋았더라도, 이러한 부작용이 지속하도록 기존 법안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진지하게 되돌아볼 일이다. 금융당국은 상장 연한과 업력, R&D, 배당 여력 등 종합적으로 반영해 벤처기업 사외이사 면제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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