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제언] 임신중지약 ‘미프진’, 허가보다 중요한 균형

입력 2026-10-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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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 조항을 헌법불합치 결정 내렸고, 2021년부터 낙태죄가 효력을 잃었다. 그리고 5년이 넘게 흘렀지만 정부와 국회는 그 자리를 채울 법을 만들지 않았다. 의료기관의 임신중지 시술은 계속됐고, 그 틈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약이 온라인으로 거래됐다. 처벌 조항은 사라졌는데 이를 대신할 제도적 공백이 생긴 것이다.

이번 정부가 들어서며 국회의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정부의 강한 추진력과 사회적 공감대의 확산으로 이제 질문은 ‘허용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쓸 것인가’로 넘어왔다.

현재 임신중지약을 ‘미프진’이라는 제품명으로 통용해 부르지만, 논의되는 약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두 약을 함께 쓰는 ‘미프지미소정’이다. 올해 8월 법제처는 이러한 임신중지약의 허가가 안전성과 유효성 등 허가 요건을 갖춘 경우 모자보건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남는 것은 실질적인 안전성으로 해외에서는 이미 수십년간 써왔더라도 한국인에도 안전한지 심사를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

미국은 이 약을 임신 10주 이내에 쓰되, 인증받은 처방자와 약국을 통해서만 공급한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초기 임신에 한해서는 원격 상담과 자택 복용까지도 허용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2027년 1분기 도입을 목표로, 초기 2년간은 임신 9주 이내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처방하고 조제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어느 방법이 정답이라기보다 각자의 의료체계 안에서 안전과 접근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균형점은 어디일까? 우리는 의료기관이 가깝고 의사를 자주 만나는 나라다. 2023년 국민 1인당 대면 진료는 연 18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5회의 약 2.8배였다. 병원 방문이 익숙한 사회라면 초기에는 진단과 처방을 중심으로 안전장치를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의료계는 임신 주수와 자궁외임신 여부를 확인하고, 복용 뒤 7~14일 안에 결과와 부작용 점검은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 만큼 병원이 익숙하다는 사실이 모든 과정을 그 안에 묶어 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초기에 핵심적인 절차는 지키되, 불필요한 비용이나 대기는 줄이도록 이후 운영 방식을 순차적으로 조정하며 합의해 나가면 된다.

또한, 허가가 곧 접근성 확보를 뜻하지도 않는다. 약만 허가하고 검사, 상담, 사후 진료에 건강보험과 제도적 기틀이 충분히 적용되지 않으면 비용이 장벽이 된다. 비싼 비용에 다시 불법 약으로 눈을 돌리고, 그 약으로 부작용이 생기면 부담은 개인과 의료체계 모두에게 두 배로 돌아온다. 국내 현안인 지역 불균형 문제도 얽혀 있다. 산부인과가 부족한 지방에서 처방부터 사후관리까지 끊기지 않는 대안을 어떻게 만들지도 중요하다.

이러한 쟁점을 제도로 설계할 때는 국민의 삶과 가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통계청 조사에서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는 응답은 2012년 45.9%에서 2024년 67.4%로 늘었다. 가족의 모습이 다양해진 만큼 임신을 마주하는 상황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즉, 임신중지를 도덕성의 저하로만 단정한다면 공감을 얻지 못한다. 중요한 건 누구든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이해할 기회를 얻고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에게는 비밀보장과 보호를 함께 고려한 상담이 필요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는 피임교육도 남녀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결국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선택이 옳은지 대신 판정하는 데 있지 않다. 출산을 택한 이에게는 양육의 조건을, 임신중지를 택한 이에게는 안전한 의료와 사후관리를 보장하는 것, 선택의 앞과 뒤를 책임지는 데 있다.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 보호를 어느 한쪽이 이겨야 하는 싸움으로만 보면 답은 나오지 않는다. 제도가 두 가치를 실제 삶에서 얼마나 책임 있게 구현하느냐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힘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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