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17년간 커피를 만들고 사람을 키워온 정지영 대표가 신풍동에 새 공간을 연다.
해외에서 오래 기억에 남은 공간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바닥과 가구, 조명부터 작은 소품까지 다시 고르며 수원에서 쌓아온 정지영커피로스터즈의 기준을 신풍점에 담았다.
4일 이투데이 취재와 정지영커피로스터즈 공식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종합하면 신풍점은 5일부터 운영을 시작한다. 정 대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장을 준비한 과정과 내부 모습을 공개했다.

신풍점을 준비하며 정 대표가 떠올린 곳 가운데 하나는 10여 년 전 방문한 미국 포틀랜드의 에이스호텔이다. 거친 우드 바닥과 넓은 공용 소파가 인상 깊었고 그때 받은 느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브루클린 로스팅 컴퍼니에서 경험한 공간도 참고했다. 다만 기억 속 공간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정 대표는 “그 공간들을 그대로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다”며 “그때 좋았던 것들에 정지영커피만의 느낌을 섞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풍점에는 목재 바닥과 넓은 테이블, 형태가 다른 의자와 소파가 놓였다. 창가에는 여러 형태의 좌석을 배치했고 천장 구조 일부는 드러낸 채 남겼다. 가구와 조명도 한 가지 형식으로 맞추지 않았다.
정 대표는 바닥부터 가구와 조명, 작은 소품까지 직접 살펴 골랐다. 그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만들었다”며 “그만큼 오래 머물고 싶은 가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 대표가 수원에서 커피 일을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대학생이던 그는 정자동의 한 카페에서 일하다 운영을 맡았다.
시설도 메뉴도 그대로였지만 운영자가 바뀌자 매출은 이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정 대표는 학교를 휴학하고 원두와 로스팅, 분쇄도, 물의 온도, 추출 시간과 압력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매출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약 6개월이 걸렸다.
현재의 정지영커피로스터즈가 행궁동에 자리 잡은 것은 2017년이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한 정 대표는 지도를 펼쳐 도로와 골목의 흐름을 살피고 사람의 동선과 접근성, 주변 환경을 함께 봤다. 그렇게 찾은 곳이 행궁동의 옛 자동차 부품 창고였다.
1년가량 준비하면서 오래된 건물이 품고 있던 흔적을 모두 지우지 않았다. 거친 콘크리트와 낡은 계단을 남겼고 창과 옥상에서는 수원화성이 보이도록 했다.
정 대표는 8월 본보 인터뷰에서 “저에게 수원은 배경보다 브랜드를 만든 원재료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정지영커피의 공간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카페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고 밝혔다.

정지영커피로스터즈는 모든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한다. 원두 로스팅과 공급부터 추출 기준, 직원 교육, 품질관리까지 직접 맡는다.
정 대표는 본보 인터뷰에서 “매장 수보다 어느 곳에서 마셔도 ‘정지영커피답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카페에서 매출이 반 토막 났던 경험은 이후 브랜드 운영의 기준이 됐다. 점포를 빠르게 늘리는 것보다 어느 매장에서든 같은 품질을 낼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을 만드는 데 힘을 줬다.
추출 과정은 매뉴얼로 정리했다. 새 직원은 숙련된 직원과 함께 일하며 기준을 익힌다. 순서만 외우기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바리스타와 매장 운영자를 키우는 데 무게를 뒀다.
정 대표는 “개인의 감각이 아니라 조직의 실력으로 운영되는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지영커피가 내건 ‘위 아 수워너(WE ARE SUWONER)’에는 수원에서 사람을 고용하고 관계를 만들며 지역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정 대표는 수원청년상인회 회장으로 청년 상인과 지역을 잇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수원청년상인회는 4월 수원시, 수원여자대학교와 수원시 대표 캐릭터 ‘수원이’를 활용한 지역상생 협약을 맺었다. 대학생이 상품을 기획하고 청년 상인 매장이 전시·판매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정 대표의 지역 환원도 이어졌다. 6월 ‘수원 독립운동의 길’ 조성 시민모금에 100만원을 기탁했고 수원여대와 함께하는 원두마대 업사이클링 사업에도 200만원을 후원했다.
커피 교육은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커피학원과 대학 평생교육 과정에서 바리스타와 예비 창업자에게 커피와 현장 경험을 가르쳐왔다.
정 대표가 꼽는 성장의 기준도 점포 숫자가 아니다.
그는 본보 인터뷰에서 “3년 뒤에는 ‘매장이 몇 개가 됐다’보다 정지영커피를 거쳐 성장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졌는가도 브랜드의 중요한 성과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확장에 대해서도 행궁동의 모습을 다른 지역에 그대로 옮기는 방식에는 선을 그었다.
정 대표는 “수원에서 배운 태도와 기준을 다른 도시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정지영커피의 확장 방식”이라고 했다.
신풍점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포틀랜드와 브루클린에서 받은 인상을 참고했지만 그대로 옮기지 않았고, 수원에서 17년간 쌓은 경험도 새 공간에 맞춰 다시 다듬었다.
정 대표는 공식 인스타그램에 “오랫동안 정지영커피를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적었다.
17년 전 한 잔을 다시 배우는 데서 시작한 정지영커피는 5일 신풍동에서 또 하나의 문을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