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금 지급 지연'에 또 ISDS...'꼬리물기 중재' 제동

입력 2026-09-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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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는 패소·2차는 승소…다야니 ISDS 판정 엇갈린 이유

판정부 “대이란 제재 따른 지급 지연·공탁, 협정 위반 아냐”
피터앤김·아놀드앤포터 정부 대리 맡아 2차 ISDS 대응

▲강준하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30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ISDS 사건 선고 관련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준하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30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ISDS 사건 선고 관련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란 국적 다야니 일가의 2차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우리 정부가 승소한 것은 이미 내려진 중재판정의 이행 문제를 빌미로 새로운 ISDS를 제기하는 이른바 ‘꼬리물기 중재’를 차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중재판정금 지급이 늦어졌더라도 집행 절차를 밟아야 할 사안이지, 이를 투자협정 위반으로 포장해 거액의 추가 배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30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다야니 일가와 정부의 분쟁은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과정에서 시작됐다. 다야니 측은 당시 워크아웃 절차에 있던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추진하며 계약보증금 약 578억원을 채권단에게 지급했다. 그러나 이후 채권단이 투자확약서 미제출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면서 다야니 측은 보증금을 몰취 당했다.

다야니 측은 계약보증금 몰취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 위반이라며 2015년 1차 ISDS를 제기했다. 중재판정부는 2018년 한국 정부가 약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후 정부는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소송을 냈지만 2019년 패소하면서 1차 판정은 확정됐다.

2차 분쟁의 쟁점은 계약보증금 몰취의 정당성이 아니라 확정된 배상금을 정부가 지급하는 과정에서 투자협정을 새롭게 위반했는지였다. 다야니 측은 우리 정부가 배상금을 지급하기도 전인 2021년 10월, 2차 ISDS를 제기했다. 배상금을 즉시 받았다면 다른 곳에 투자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을 지급 지연으로 잃었다는 취지다. 다야니 측의 청구액은 절차 진행 과정에서 약 1조2600억원까지 늘었다가 이후 약 7700억원으로 줄었다.

정부는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로 배상금 지급을 위해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승인을 받은 뒤 2022년 4월 약 622억원을 우선 다야니 측에 지급했다. 나머지 약 236억원은 국내 법원의 가압류 등 명령에 따라 같은 해 12월 공탁했다.

2차 판정부는 우선 사건을 심리할 관할권은 인정했다. 정부는 1차 ISDS 배상금이 투자협정상 ‘투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판정부는 해당 배상금이 앞서 몰취 된 계약보증금의 등가물로서 투자의 연장선에 있다고 봤다.

▲강준하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30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ISDS 사건 선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준하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30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ISDS 사건 선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본안 판단에서는 한국 정부 측 주장 대부분이 받아들여졌다. 다야니 측은 이란 국적을 이유로 OFAC 승인을 거치도록 한 것이 부당한 차별이고, 정부의 1차 판정 취소소송과 국내 법원의 압류·추심명령에 따른 공탁 역시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정부는 정부가 OFAC 승인을 받은 것은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를 고려한 정당한 결정으로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과 국내 법원의 적법한 명령에 따라 일부 배상금을 공탁한 것 역시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야니 측의 ‘자유로운 송금 보장 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정부는 해당 의무가 투자자가 자신의 투자자산을 국외로 반출하는 것을 정부가 부당하게 막지 말라는 취지로, 정부가 직접 외화를 송금하는 이번 배상금 지급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배상금 지급 지연 역시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를 준수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조치라고 짚었다.

이번 판정의 핵심은 중재판정 불이행 또는 지연을 이유로 또 다른 ISDS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데 있다. 다야니 측은 배상금 지급 지연 자체가 투자협정상 ‘중재판정 준수 의무’ 위반이기 때문에 이를 독립된 원인으로 별도의 ISDS를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정부는 이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정부는 판정금을 받지 못한 투자자는 집행지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해 구제받아야 하며, 판정 불이행을 이유로 또 다른 ISDS를 허용한다면 투자협정의 목적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1차에서는 보증금 몰취와 관련한 정부 측의 배상책임이 인정됐지만, 2차에서는 이후 배상금을 지급·공탁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투자협정을 추가로 위반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나온 셈이다. 이에 따라 다야니 측의 약 7700억원 배상 청구는 전부 기각됐고, 다야니 일가는 정부의 소송비용 중 약 40억원과 중재행정비용 약 8억원도 부담하게 됐다.

이번 사건에서 정부 측 대리는 법무법인 피터앤김과 미국 로펌 아놀드앤포터가 맡았다. 강준하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사건 대응을 위해 함께 노력해주신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 부처와 정부 대리 로펌인 법무법인 피터앤김, 아놀드앤포터에도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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