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전용 38년 만에 양성화…신고·허가 빠뜨린 시설에 합법화 기회
임대차 특별정비 11월 15일까지 연장…투기·중대 불법전용은 제재

정부가 농지전수조사에서 드러나는 관행적 임대차와 고령농·상속인이 보유한 농지의 휴경 등에 대해 농지은행에 임대나 관리를 맡기면 처분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신고·허가 절차를 빠뜨린 농지 내 시설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합법화할 수 있도록 38년 만에 불법 전용 양성화에 나선다. 연내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근거를 마련하되, 투기와 중대한 불법 전용은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1일 당정협의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농지 전수조사 추진상황 및 향후 조치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전수조사 초기부터 투기와 일반적·경미한 위반을 구분해 처리한다는 원칙을 밝혀왔지만, 취지와 목적에 대한 설명·홍보가 부족해 현장에서 불안과 우려가 제기됐다고 인정했다. 이번 대책은 농사를 직접 짓기 어려운 고령농이나 관행적으로 농지를 빌려 경작해온 임차농 등을 위해 구체적인 정상화 경로를 제시한 것이다.

당정은 투기 목적이 아닌 농지의 휴경·임대차 위반이 확인되면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거나 법에서 허용하는 방식으로 임대해 위반을 해소할 수 있도록 자진 정비기간을 먼저 부여할 계획이다. 기간 안에 정비하기 어려우면 농지은행에 임대나 관리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처분의무 부과를 유예한다.
농업인끼리 편의를 위해 농지를 바꿔 경작하거나 부모가 자녀에게 증여한 뒤에도 계속 농사짓는 경우, 마을 농지를 한 사람이 모아 경작하는 경우 등이 정상화 대상이다. 농지은행이 위탁받은 농지를 기존 실경작자에게 우선 임대해 영농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
윤원습 농식품부 농업정책관은 “기존 임대차 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농지은행을 통해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임대차 관계로 전환해 주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특별법 시행 이후 일정 기간 실경작자의 임차권을 보장하고 소유자의 농지은행 임대 위탁을 유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 방안을 검토한다.
상속·이농 농지의 소유 한도 위반도 농지은행 위탁을 통해 해소하도록 유도한다. 윤 정책관은 상속농지 1.5㏊ 전부를 개인 간 임대한 경우를 예로 들어 “1㏊를 초과하는 부분을 농지은행에 위탁하도록 안내하고 계도하겠다”고 설명했다.
조사 과정에서 임차인이 쫓겨나는 등의 혼란을 막기 위해 임대차 특별정비기간은 11월 15일까지 연장한다. 소유 기간이 3년 이상인 농지에 대해 이 기간 농지은행에 임대 위탁을 신청하면 보완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농지법상 임대차 위반으로 보지 않을 방침이다. 전수조사가 시작된 5월 18일 이후에는 농지은행에 임대를 위탁할 때 임차인을 지정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고령농이나 상속·이농자가 농사를 쉬고 있는 농지, 직접 경작하기 어렵지만 매수자가 없어 방치된 농지 등에서 휴경 관련 위반이 확인되면 자진 복구 기회를 준다. 복구가 어려운 소유자는 농지은행에 관리권을 맡겨 처분 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윤 정책관은 “농지은행이 풀베기나 경지 정비 등을 통해 농지로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이후 다른 사람에게 임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위탁 계약에 따라 임대 수익이 발생하면 관련 비용을 뺀 금액을 농지 소유자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불법 전용 시설에 대해서는 1988년 이후 38년 만에 양성화를 추진한다. 원래 신고·허가 절차를 거쳤다면 설치할 수 있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불법 상태로 남은 농업용·공공·기타 시설이 대상이다. 사후 전용을 신청하면 요건을 검토하고 시설 유형에 따라 농지보전부담금을 부과하거나 면제·감면한 뒤 추인하는 방식이다.
계획안은 올해 5월 18일 이전에 완공된 시설을 양성화 대상으로 제시했다. 농지법과 다른 법령상 설치 제한 등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
다만 비닐하우스나 버섯재배사로 위장해 내부에서 식당을 운영하거나 태양광발전에만 사용하는 시설은 본래 용도로 되돌리도록 자진 정비기간을 부여한다.

실제 농사지을 의사 없이 시세차익이나 개발이익 등을 노리고 농지를 취득·소유한 경우에는 법에 따라 처분명령 등을 부과한다.
농식품부가 제시한 대표적인 유형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거짓 영농계획서 등으로 농지를 취득한 뒤 무단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하는 경우, 농업법인이 농지를 취득한 뒤 부동산업을 하는 경우, 경매 등으로 농지 지분을 공동 취득한 뒤 무단 휴경하거나 불법 임대하는 경우다.
농업진흥지역 내 불법 야적장·야영장 등 중대한 불법 전용에는 원상회복명령을 내리고 필요하면 처분명령을 함께 부과한다. 다른 법률에서 금지한 시설로 농지를 전용한 경우도 같은 조치를 적용할 방침이다.
다만 현재 조사는 위반이나 투기 여부를 확정한 단계가 아니다. 농식품부는 5~7월 기본조사를 마치고 8월부터 현장 확인 중심의 심층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정황증거와 소유자 소명 등을 확인하며, 조사 결과에 따른 처분 등 조치는 내년에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에 담긴 농지은행 위탁을 통한 처분 유예와 불법 전용의 사후 추인에는 별도의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윤 정책관은 “특별조치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정은 올해 12월까지 특별조치법 제정안 마련과 국회 의결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내년 1분기 시행 및 위반 유형별 세부 지침 배포를 추진한다. 내년 2분기에는 농지법 개정안을 발의해 고령화·인구감소에 맞춰 임대차·휴경 허용 사유를 확대하고 임차농의 권리 보호를 강화할 계획이다.
자진 정비기간과 처분 유예기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윤 정책관은 “처분을 무한정 유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 제정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해 적정한 유예기간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지 전수조사는 우리 농지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농지제도를 현실에 맞게 바꾸어 농업·농촌을 활성화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오늘 발표 이후에도 현장 의견 수렴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