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에게 자금만 지원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제품을 직접 사업화할 수 있도록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김지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SPARK 프로그램 부디렉터는 최근 본지와 만나 “우수한 연구성과가 실제 제품으로 이어지려면 자금 지원을 넘어 규제와 시장, 사업 전략을 익힐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디렉터는 최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학교법인일송학원과 한국컨벤션전시산업연구원(ICEM) 등이 주최한 의료기술 사업화 콘퍼런스 ‘MEeT 2026’에 참가해 여러 연구자, 기업 관계자들과 의료혁신 가능성을 모색했다.
SPARK는 스탠퍼드대 의과대학에서 출발한 바이오·의료기술 사업화 지원 프로그램이다. 연구자가 보유한 초기 기술을 의약품과 진단기술, 의료기기 등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교육과 멘토링, 산업계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SPARK의 가장 큰 차별점은 일회성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연구자가 스스로 사업화를 추진할 역량을 갖출 때까지 교육한다는 점이다. 참여자들은 매주 대면 프로그램에 참석해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산업계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다. 학생과 교수, SPARK 관계자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연구자와 산업계 간 네트워크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김 부디렉터는 “단순히 진행 상황만 확인하는 프로그램과는 다르다”며 “참여자가 SPARK를 떠난 뒤에도 혼자 사업화를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SPARK는 매년 12~15개의 신규 프로젝트를 선정한다. 평가 과정에서는 기술의 혁신성과 미충족 의료수요, 실제 제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기존 제품을 일부 개선한 ‘미투’ 기술보다 계열 내 최초(First-in-Class) 제품이 될 수 있는 기술을 우선한다.
제품화 목표를 먼저 세우고 개발 과정을 역순으로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어떤 제품을 개발할지, 어떠한 규제 절차를 거쳐 허가받을지, 개발비용과 예상 판매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미리 검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부디렉터는 “연구는 흥미로운 데이터가 나오면 방향이 바뀔 수 있지만 사업화는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따라가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흥미로운 과학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의약품이나 진단기술로 발전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으로는 연구자의 태도를 꼽았다. 자신의 기술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도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스탠퍼드에는 뛰어난 역량과 강한 자신감을 가진 연구자들이 많다”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이를 개발 과정에 반영할 준비가 돼 있는지가 사업화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사업화를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도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단기간에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욕만 앞서 지식재산권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거나 충분한 시장조사 없이 개발에 뛰어드는 경우다. 기술에 대한 이해와 개발 의지가 부족한 투자자에게 성급하게 권리를 넘겼다가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사례도 있다.
한국 의료기술 사업화의 과제로는 대학이 보유한 우수 기술의 활용 확대를 제시했다. 대학에서 나온 기술을 산업계와 연결하면 신약과 의료기술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부디렉터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의약품의 55%가 대학에서 시작됐을 만큼 대학 기술은 중요하다”며 “한국도 뛰어난 기술력과 인재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학에서 나온 좋은 기술들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내 여러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SPARK와 연결된다면 미국의 바이오·의료 네트워크와 사업화 경험을 활용할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은 기술력이 탄탄하고 의료서비스도 잘 갖춰져 있어 개발한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이 충분하다”며 “세계 최대 바이오·의료시장인 미국에서 풍부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가진 프로그램과 연결된다면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