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명인 서분례의 안성 서일농원 찾아…예비 셰프들과 전통 장 체험
전수자 77명 지원·승계 절차 단축…판로·제품 개발로 전통식품 산업 육성

9일 찾은 경기 안성시 일죽면 서일농원. 2000여개의 장독이 자리한 청국장 명인 서분례 씨의 일터에 교복 차림 학생들이 모였다. 뚜껑을 연 항아리 곁에 둘러선 학생들은 나무주걱에 수북이 담긴 붉은 장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주변 참가자들도 스마트폰을 들어 명인의 시연 장면을 담았다.
이날 농원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마련한 ‘대한민국식품명인을 만나는 미식 여행’이 열렸다.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 학생 10명과 외식업 종사자 등이 명인이 만든 음식을 맛보고 전통 장의 제조 현장을 둘러봤다.
1학년 이승채 학생은 “된장을 어떻게 만드는지 눈앞에서 직접 보고 손으로도 체험해봤다”며 “손이 많이 가기는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장독대를 둘러보기에 앞서 일행이 모인 곳은 농원 안 한식당 ‘솔리’였다. 창가 전시대에는 순창고추장과 도라지정과, 유과, 전통주 등이 나란히 놓였다. 작은 안내문마다 명인의 이름과 품목, 제품에 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식사 자리에서 이어졌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식품명인 11명이 직접 재료와 제조법을 소개했다. 참가자들은 청국장과 김치, 유과·약과, 부각, 전통주 등을 맛보며 그 음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을 들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장을 만드는 현장으로 향했다. 기와를 얹은 돌담 앞에는 옹기들이 줄지어 있었다. 항아리 위에 올린 둥근 채반에는 재료를 나눠 담은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은 서 명인에게 청국장의 유래와 제조법을 듣고, 콩을 삶고 발효시키는 과정도 살펴봤다.
학생들에게 제조법을 설명한 서 명인은 친정 할머니로부터 3대째 이어온 청국장 비법을 바탕으로 전통 장류를 만들어 왔다. 2015년 대한민국식품명인 제62호로 지정됐고, 딸에게도 제조법을 전수해 왔다. 가정에서 대물림해온 기술을 이날은 조리과학고 학생들이 눈앞에서 접했다.
만드는 사람에게 배우고 함께 맛보는 경험에는 전통을 다음 세대로 잇는 의미도 담겼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장을 만드는 기술과 함께 담그고 나누는 공동체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4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다.
서일농원은 이런 체험 공간을 운영하면서 전통식품을 일상에서 먹기 편한 상품으로 다듬는 작업도 이어왔다. 서 명인은 발효 환경과 포장 방식을 개선해 청국장 특유의 냄새를 줄이는 데 주력했고, 딸 최소영 씨는 개별 포장과 디자인 개선에 참여했다. 현재 공식 온라인몰의 제품군에는 110g 단위로 포장한 청국장과 마늘·들깨 등을 활용한 제품도 포함돼 있다. 농원에서 맛본 음식에 대한 관심을 집에서의 소비로 이어갈 수 있는 구조다.
장독대를 둘러본 학생에게는 다시 찾아올 이유도 생겼다. 1학년 장소율 학생은 “평소 된장, 간장 담그는 법을 말로만 전해 들어봤다”며 “다음번엔 음력 정월에 방문해서 담그는 시연을 제대로 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명인의 일터에서 보고 맛보는 경험을 전국의 여행길로 넓히고 있다. 농식품부는 이날 체험·견학이 가능한 명인 운영 시설 44곳을 서울·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 등 6개 권역으로 묶은 ‘대한민국식품명인을 만나는 미식 여행길’을 공개했다. ‘K-치킨벨트’와 ‘찾아가는 양조장’에 이은 ‘K-미식 여정’의 세 번째 주제다.
안성에서는 서분례 명인의 청국장과 안성팜랜드를, 충북 청주에서는 조정숙 명인의 된장과 청남대를 연계하는 식이다. 명인의 기술과 이야기를 지역 농산물, 향토음식, 관광지와 묶어 여행객의 방문과 소비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미식관광 확대는 명인의 기술을 보전하면서 사업체의 성장도 뒷받침하려는 정책과 맞물려 있다. 정부는 1994년부터 전통식품의 제조·가공·조리 기능을 보유하고 계승·발전시켜온 장인을 식품명인으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그간 106명을 지정했으며, 현재 활동하는 명인은 88명이다.
전통식품의 소비 기반을 넓히는 일은 산업 측면에서도 과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전통식품 생산액은 8조3000억원으로 전체 식품산업 생산액의 6.1%를 차지했다. 2020~2024년 연평균 증가율은 6.3%로 전체 식품산업의 증가율인 7.7%보다 낮았다.
서울 종로구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는 명인 제품 300여개를 전시·판매한다. 정부는 관광 연계와 함께 온라인몰 운영과 백화점 입점, 판촉전을 지원해 명인 제품의 판로를 넓히고 있다. 상품화와 디자인, 홍보에 필요한 상담도 제공해 명인의 기술이 소비자가 찾고 구매하는 상품으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농식품부는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향후 정책 방향으로 전통 장류의 기능성 연구와 유해물질 모니터링, 발효에 쓰는 우수 종균 보급을 제시했다. 품질 편차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중소기업의 소스·전통장류 신제품 개발과 상품화를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전통식품 제조 기술을 이어갈 전수자 77명은 올해 1인당 연간 약 500만원의 활동 장려금을 받는다. 정부는 고령화로 제조 기술이 사라질 우려에 대응해 전승 과정과 제조법을 영상·도서로 남기는 기록화 사업도 진행한다. 현재 활동 명인 가운데 60명의 기록물 제작을 마쳤다.
전수자의 명인 지정 기간은 약 7개월에서 2개월 수준으로 짧아졌다. 농식품부는 승계 과정의 경영 공백을 줄이기 위해 7월 ‘식품명인 지정지침’을 개정해 전수자 신속 지정절차를 마련했다. 지정계획 공고를 생략하고 신청을 바로 접수하되, 시·도와 전문가의 검토 및 심의 절차는 거친다.
관건은 관광과 판로, 제품 개발, 전승 지원이 명인 사업장의 지속적인 소득으로 이어지는지다. 체험을 통해 생긴 관심이 재방문과 제품 구매로 연결되고, 그 수익이 제조 기술을 이어갈 사람을 키우는 기반이 돼야 한다.
정경석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이번 미식 여행길에 대해 “국민들이 전국 각지의 식품명인과 전통식품을 보다 쉽게 만나고 우리 식문화의 가치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식품명인 미식 여행길이 지역의 관광자원과 함께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대표 맛 지도가 될 수 있도록 콘텐츠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