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논술형 평가 확대한다지만…초등 수학 평가자료 92.5% ‘풀이·정답형’

입력 2026-09-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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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개정 교육과정 이미 확대 명시…교과서·수업은 못 따라가
“62명 답안에 교사 10명 주말 채점”…공정성·업무부담도 과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일 '서·논술형 평가 도입을 위한 현황 진단과 과제' 4회 연속토론회의 제1차 토론회인 '유·초등 교육과정과 현장의 서·논술형 평가를 살핀다'를 개최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일 '서·논술형 평가 도입을 위한 현황 진단과 과제' 4회 연속토론회의 제1차 토론회인 '유·초등 교육과정과 현장의 서·논술형 평가를 살핀다'를 개최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부가 서·논술형 평가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의 수업과 평가 체계는 이를 뒷받침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등 수학 평가자료 대부분이 여전히 정해진 풀이 과정과 답을 요구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는 데다 서·논술형 평가가 성적 산출에 본격 활용될 경우 채점의 공정성과 교사 업무 부담을 해소할 장치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4일 교육계에 따르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최근 '서·논술형 평가 도입을 위한 현황 진단과 과제’ 연속토론회의 첫 번째 토론회를 열고 유·초등 교육과정과 학교 현장의 서·논술형 평가 실태를 점검했다.

서·논술형 평가는 새로운 평가 방식은 아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수행평가를 내실화하고 서술형·논술형 평가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이 이미 담겨 있다. 다만 평가 문항의 형태만 바꾸는 데 그쳐서는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사고력과 표현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온정덕 경인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서·논술형 평가 논의가 단일한 평가 문항 유형으로 축소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서·논술형 평가 확대를 단순히 시험문제의 형식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학교에서 경험하는 학습의 질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초등학교 수학 평가에서는 교육과정과 현장 사이의 간극이 확인됐다. 이환규 경기 빛가온초등학교 수석교사가 검정교과서 출판사 3곳의 평가자료 약 1300개 파일을 분석한 결과 92.5%가 ‘풀이 과정과 답을 쓰시오’와 같은 유형이었다. 시도교육청 등의 장학자료 295문항에서도 풀이 과정과 답을 요구하는 유형이 46%로 가장 많았다.

반면 서로 다른 풀이 방법을 비교하거나 오류를 설명하고 자신의 판단에 근거를 제시하도록 하는 문항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2022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이 추측의 근거 제시, 판단의 정당화, 사고와 전략에 대한 설명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 교과서와 평가자료에는 충분히 구현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 수석교사는 “수업은 계산과 알고리즘 중심으로 그대로 둔 채 평가만 사고 중심의 서·논술형으로 바꾸는 것은 학생에게 새로운 측정 방식 하나를 더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학교 수업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서로 다른 방법을 비교하는 경험부터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가 이러한 간극을 메우지 못할 경우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별도의 대비를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채점의 신뢰성과 교사의 업무 부담도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정충대 서울 구로초등학교 교사는 서·논술형 방식을 성적을 산출하는 총괄평가로 확대할 경우 “사후 재채점에 의존하기보다 처음부터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채점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구로초에서 진행한 비교판정 실험에서는 학생 62명의 답안을 처리하기 위해 교사 10명이 주말까지 참여했다. 정 교사는 현재와 같은 평가 횟수를 유지하면서 모든 평가를 정교한 서·논술형 평가와 피드백으로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학생 답안을 장기간 축적해 수행 수준별 ‘앵커 답안’을 만들고 타당성 높은 문항과 채점자 훈련 등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초등학생의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확대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수현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초등학교 6년 전체에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2학년에서는 긴 글을 요구하기보다 다양한 방식의 표현을 허용하고, 3~4학년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그 이유를 제시하는 수준으로, 5~6학년에서는 다른 사람의 관점까지 수용해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는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 부연구위원은 이러한 발달단계의 위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서·논술형 평가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저학년에게는 과도한 학습 부담과 사교육 수요를 낳고, 고학년에게는 오히려 평가기준이 모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논술형 평가 확대가 유아 단계의 선행학습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명하 안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는 "상급학교의 평가 변화가 사고력·문해력·표현력이라는 이름으로 유아 대상 독서·논술, 한글·어휘, 독해·글쓰기 프로그램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학교에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해서 유아기부터 글쓰기와 독해를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그 능력의 토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강조했다. 유아기에는 충분히 놀면서 질문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그림·몸짓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험을 보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부연구위원은 "·논술형 평가가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기댈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과 자료도 필요하다"며 "개별 교사나 개별 애플리케이션 차원에 머물러 있는 평가 자료를 국가 단위에서 공유·축적하고, 교사들이 함께 평가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전문학습공동체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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