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에서 최근 만난 천영성 KF-21 체계팀장은 한국형 전투기 ‘보라매’의 개발 과정을 이렇게 돌아봤다. 천 팀장은 사업 착수 전인 2014년 개발 조직에 합류해 설계부터 시제기 제작, 비행시험, 체계개발 완료까지 전 과정을 함께한 핵심 개발자다.
KF-21은 2015년 12월 체계개발에 착수해 올해 개발을 마쳤다. 사업 착수부터 완료까지 10년 7개월. 천 팀장은 "절대 긴 시간이 아니다"라고 했다. 해외 전투기 개발사업과 비교하면 오히려 짧은 기간이라는 설명이다.
개발 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고비는 코로나19였다. 해외 협력업체의 개발과 부품 납품이 줄줄이 밀리며 전체 시험 일정이 흔들렸다. KAI는 화상회의를 통해 뒤에 예정된 작업을 앞당기고 공급망이 정상화되는 즉시 밀린 일정을 따라잡는 ‘캐치업 플랜’을 가동했다.
개발진의 생활도 사업 일정에 맞춰졌다. 휴가를 반납하고 출근하는 일이 반복됐고 시험이 몰리면 명절에도 비행시험 현장을 지켰다.
천 팀장은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넘겼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며 "일정 하나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뒤가 계속 무너지고 사업에 대한 신뢰도 잃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지켜내야 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KAI, 공군, 국방과학연구소(ADD), 협력업체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숨기지 않고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은 것도 일정 준수의 배경으로 꼽았다.
실제 KF-21은 시제기 6대를 제작해 42개월 동안 약 1600회의 개발 비행시험을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마쳤다. 약 1만3000개 시험조건을 검증했고 지난 5월 최종 전투용 적합 판정을 획득한 뒤 7월 체계개발을 공식 종료했다. 방위사업청은 이를 독자 전투기 개발 능력을 확보한 성과로 평가했다.
10년이 넘는 개발 과정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은 순간은 2022년 7월 19일 첫 비행이었다.
전날 잠을 설친 천 팀장은 평소보다 일찍 회사로 나와 개발센터 옥상에 섰다. 수년 동안 컴퓨터 화면과 설계도에서 보던 전투기가 실제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KF-21이 땅에서 떨어져 하늘로 떠오르자 곳곳에서 함성이 터졌다. 일부 개발자는 눈물을 흘렸고 서로 손을 잡으며 "됐다, 됐다"고 외쳤다.
첫 비행 성공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후 비행영역 확대와 공중급유, 무장 발사, 항전장비 등 수많은 시험이 이어졌다. 올해 5월 전투용 적합 판정으로 KF-21 블록Ⅰ의 기본 비행성능과 공대공 임무능력 검증을 마쳤고 양산 1호기는 올해 하반기 공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KF-21 양산은 KAI 한 회사만의 사업도 아니다. 개발에는 국내 협력업체 약 500곳이 참여했다. 공군은 총 120대를 도입할 계획이며 최종 국산화율 목표는 65%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엔진, 한화시스템이 AESA 레이더와 항공전자 장비를 맡는 등 수백개 기업이 하나의 공급망을 이루고 있다. 개발 단계에서 시제품 중심이었던 국내 항공산업이 대량 양산과 후속 군수지원, 성능개량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체계개발은 끝났지만 KF-21의 진화는 계속된다. KAI는 방위사업청과 6859억원 규모의 추가무장시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8년까지 공대공 중심인 현재 임무영역을 공대지로 확대하고 AESA 레이더와 주요 항전장비의 공대지 기능도 검증할 예정이다.
수출도 다음 과제다. 인도네시아가 공동개발국에서 첫 해외 구매국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으며 중동과 동남아 국가들도 잠재 고객으로 꼽힌다. 첫 해외 운용국을 확보하면 후속 수출 경쟁에서도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
방위사업청의 시선은 더 멀리 향하고 있다. 방사청은 최근 유·무인복합전투체계와 광대역 스텔스, 인공지능(AI) 등을 적용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사전개념연구에 착수했다. 아직 실제 개발을 결정한 단계는 아니며 향후 소요 제기와 선행연구 등에 활용할 기초자료를 만드는 초기 단계다. KAI도 연구용역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4.5세대인 KF-21 역시 내부무장창 적용 등을 통한 저피탐·스텔스 성능 강화와 AI 기반 전투체계, 유·무인복합운용(MUM-T) 등으로 진화할 수 있는 확장성을 갖췄다. 장기적으로 전투기와 무인기, 센서·무장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차세대 공중전투체계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천 팀장이 개발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산 전투기 사업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만 약 10년, 실제 전투기를 만드는 데 다시 1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어렵게 확보한 기술과 인력이 다음 사업으로 이어져야 선진국과의 격차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렵게 만들어진 사업이어서 중간에 엎어진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며 "미국이나 선진국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그 격차를 최대한 줄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만든 항공기가 미국이 개발한 항공기와 견줘도 손색없다고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려면 5세대, 6세대까지 계속 나아가야 한다"며 "지금 탄력을 받았을 때 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