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팬들의 지갑이 나날이 얇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이 신선하고 귀여운 기획을 잇달아 쏟아내면서 소비 심리를 부추기고 있는데요. 다른 팀 팬의 굿즈를 보고 "이건 진짜 부럽다"고 감탄하게 되는가 하면, 야구 팬이 아닌 '머글(팬이 아닌 일반인)'의 눈길까지 사로잡은 사례가 이어집니다.
다만 새 굿즈에 팬들의 반응이 늘 뜨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기대와 환호 속에서 때로는 "야구 팬을 뭘로 보냐"는 날 선 지적도 나오는데요.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다 못해 모터를 단 프로야구 굿즈 시장, 과연 팬심만 믿고 달려도 괜찮을까요?

프로야구 굿즈 시장을 휩쓴 핵심 키워드는 단연 '귀여움'입니다. 경기력과 선수로 팬심을 사로잡던 구단들이 이제는 인기 캐릭터를 유니폼에 입히고, 인형과 키링으로 만들어 팬들의 일상에 침투하고 있는데요. 특히 구단 마스코트와 협업 캐릭터는 팬층을 넓히고 소비를 이끄는 또 하나의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LG 트윈스는 올해 첫 캐릭터 협업 대상으로 일본 인기 캐릭터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를 택했습니다. 협업 유니폼을 시작으로 키링과 스마트톡, 담요, 응원 타월 등을 선보였죠.
LG 트윈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름을 맞아 산리오캐릭터즈의 대표 캐릭터 '헬로키티'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햇볕에 그을린 모습의 '태닝 헬로키티'를 앞세워 유니폼과 모자, 인형 등 분홍빛 상품을 내놨는데요. KIA 타이거즈 역시 산리오캐릭터즈의 '쿠로미'를 태닝 콘셉트로 재해석한 상품을 선보이며 팬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SSG 랜더스도 '가나디'를 시작으로 '핑구', '굿모닝타운'까지 잇달아 협업에 나섰습니다. 가나디가 SSG 랜더스 유니폼을 입은 의류와 인형, 머리띠, 페이스 스티커 등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SNS 밈으로 재조명된 펭귄 캐릭터 핑구를 내세웠는데요. 핑구·핑가와 구단 마스코트 랜디·배티·푸리가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를 입히고 유니폼과 응원 도구 등 10종의 상품을 내놨습니다.
다른 구단도 분주합니다. 두산 베어스는 큰 인기를 끈 '망그러진 곰'과의 동행을 이어가고요. 롯데 자이언츠는 '보노보노', KT 위즈는 게임 '메이플스토리', NC 다이노스는 '도구리', 키움 히어로즈는 '몰티즈 앤 리트리버' 등과 손잡습니다.
외부 인기 캐릭터만 팬들의 지갑을 여는 건 아닙니다. 구단이 보유한 자체 마스코트도 색다른 콘셉트를 입고 재탄생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한화 이글스의 마스코트 '수리'입니다.
한화 이글스는 16일 여름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수리, 이른바 '탄수리'를 앞세운 컬렉션을 출시했습니다. 캐릭터 유니폼부터 모자, 인형 키링, 키캡 키링, 바디필로우, 스마트톡, 멀티 착 미니피규어(히퍼) 등 다양한 상품을 구성했는데요. 유명 외부 IP를 빌리지 않고도 기존 마스코트에 계절성과 이야기를 더해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태닝' 대신 '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도 호평을 받았죠.

야구 굿즈를 경기장에서만 사용한다는 인식은 옛말입니다. 유니폼과 응원 도구가 중심이었던 상품군은 텀블러와 화장품, 가방, 마사지기 등 일상용품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는데요.
올해 KBO가 선보인 협업만 살펴봐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스타벅스는 구단 유니폼을 입은 베어리스타 키체인과 캡 머그, 캔쿨러 텀블러 등을 출시한 바 있고, 크록스는 10개 구단의 로고와 상징색을 활용한 지비츠 참을, 오덴세는 구단별 텀블러를 내놨죠.
야외 활동이 많은 팬을 겨냥한 상품도 눈에 띕니다. 메디힐은 '경기 관람 시 선케어, 경기 후 진정 케어'라는 메시지 아래 패드와 선세럼, 아크릴 키링과 파우치 등 한정판 굿즈를 더했고요. 밤켈은 보냉백과 토트백 등 '쿨트백' 3종 세트를 선보였습니다. 바디프랜드 미니는 구단별 미니건과 종아리 마사지기를 출시했습니다. 특히 미니건의 버튼을 야구공 모양으로 제작해 귀여움을 더했습니다.
이는 구단의 로고와 상징색, 마스코트 등을 활용해 수익을 내는 IP 라이선스 사업의 확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단은 직접 모든 상품을 개발하지 않고도 판매 영역을 넓힐 수 있고, 협업사는 충성도 높은 야구 팬덤을 신규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데요. 팬에게는 응원팀을 경기장 밖에서도 드러낼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사업 확대의 배경에는 프로야구의 가파른 흥행이 자리합니다. 2024년 사상 처음 1000만 관중을 넘어선 KBO 리그는 지난해 1231만2519명을 불러 모으며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올해도 전반기가 끝나기 전 역대 최소 경기로 600만 관중을 돌파했죠. 꾸준한 관중 증가세로 프로야구 역시 모기업 홍보 수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데요. 10개 구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총매출액은 약 7795억8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약 14% 증가했습니다. 입장권 매출은 물론 광고, 굿즈 등을 바탕으로 향후 매출 1조원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중입니다.
관중 수와 소비가 늘면서 프로야구 협업 상품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플랫폼 내 야구단 협업 굿즈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4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죠. 협업에 참여한 구단도 2배 이상 늘었는데요. 프로야구 구단의 상징성과 패션 브랜드의 디자인 감도를 결합해 일상에서 착용 가능한 패션 아이템으로 재해석하는 등 기존 야구 팬 중심이었던 굿즈 시장을 일반 소비자까지 확장하는 데 집중한 결과였죠. 구단은 신규 팬 유입·매출 증대·세련된 이미지 형성 효과를, 브랜드는 협업 레퍼런스 확보와 신규 고객 유입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모든 굿즈가 호평을 받는 건 아닙니다. 팬층에 대한 세밀한 이해 없이 익숙한 공식만 반복하는 '게으른 기획'은 오히려 구단 이미지와 팬심에 독이 될 수 있는데요.
최근 SSG 랜더스가 굿모닝타운과 선보인 협업 상품도 호의적인 반응만을 자아내진 못했습니다. SSG 랜더스는 캐릭터 유니폼 3종을 출시하면서 기장이 짧은 크롭 유니폼을 '여성용'으로 구분했는데요. 이를 본 일부 팬들은 성별에 따른 디자인 규정에 의문을 표했죠. 특정 디자인과 노출이 있는 옷을 여성의 선택지로 한정한 분류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입니다. 현재 SSG 랜더스 측은 상품 설명에서 '여성용'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상황입니다.
최근 프로야구 흥행을 이끄는 젊은 여성 팬들은 구단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소비층입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지난해 8월 9일부터 9월 26일까지 프로야구 각 구장을 방문한 15세 이상 구단별 홈팬 932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5년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에 따르면, 조사 응답자 중 여성 비율은 56.7%로 남성 43.3%를 앞섰습니다. 한화 이글스를 제외한 9개 구단에서 여성 관람객이 더 많았죠.
다만 젊은 여성 팬을 '귀여운 캐릭터와 분홍색, 크롭티를 좋아하는 소비자'로 단순화하는 건 곤란합니다. 같은 성별과 연령대 안에서도 선호하는 디자인과 색상, 체형과 착용 방식이 다른 만큼 '여성용' 상품을 별도로 만드는 것보다 다양한 기장과 크기, 디자인을 제시하고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이 조명받고 있죠.
팬심 자체를 무한한 구매력으로 해석하는 태도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정판은 소장 가치를 높이지만 비슷한 캐릭터와 상품이 반복되면 희소성이 떨어지고 구단 고유의 정체성도 흐려질 수 있는데요. 충성도 높은 팬덤을 상품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는 고정 수요로 치부한다면 지출 부담과 피로가 불만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팬심이 가격과 품질, 기획을 제쳐두고 상품 흥행을 보장하는 만능 카드는 아니라는 거죠.
굿즈 시장의 지속 가능성은 협업 횟수보다 팬들의 만족도와 재구매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하느냐에 달린 모습입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것도 좋지만, 다양해진 팬을 하나의 취향으로 묶거나 팬심을 구매가 보장된 수요로 착각하지 않는 기획이 필요한 시점인데요. 야구 팬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할 똘똘한 굿즈는 무엇이 될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