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 탈락⋯한국 정말 '롤 최강국' 맞나요? [이슈크래커]

입력 2026-07-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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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내려오는 T1.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무대 내려오는 T1.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아니 잠깐만. 정신 좀 차려봐. 왜 그래?

T1이 무너졌습니다.

8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 리그 오브 레전드(LoLㆍ롤)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브래킷 스테이지 하위권 2라운드에서 LCK(한국 리그) 2번 시드 T1이 LEC(유럽 리그) 소속 G2 e스포츠에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하며 탈락한 건데요.

예상 밖의 결과였기에 팬들의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T1 출신 프로게이머 ‘뱅’ 배준식 역시 개인 방송에서 “정신 차려봐. 왜 그래?”라고 반복하며 “T1 경기 보면서 처음으로 경기를 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죠.

충격은 단순히 패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국제대회 최강자로 불렸던 T1이 경기 내내 좀처럼 주도권을 잡지 못했고, G2의 과감한 운영과 예상 밖의 변수에 흔들리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국제전에서 강팀으로 군림했던 T1이 상대에게 읽히는 듯한 장면도 적지 않아 위기감이 느껴지기도 했죠.

이번 패배는 단순한 이변이었을까요?

G2는 이미 LCK를 읽고 있었다

▲승리 직후 환호하는 G2.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승리 직후 환호하는 G2.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T1의 패배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딜런 팔코 G2 감독은 LCK 소속 한화생명e스포츠와의 MSI 브래킷 스테이지 상위권 2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LPL(중국 리그) 팀보다 LCK 팀을 상대하는 편이 낫다”는 취지의 생각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유는 LCK 팀들이 상대적으로 더 통제된 경기 운영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다시 말해 한국 팀의 플레이는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패턴이 많다는 의미였습니다.

물론 이날 G2는 한화생명e스포츠에게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했습니다. 그리고 이 패배로 G2는 하위 브래킷에서 또 다른 LCK 대표 T1과 맞붙게 됐습니다.

하지만 완패에도 G2의 자신감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G2 정글러 ‘스큐몬드’ 뤼디 세망은 “T1 역시 정말 강한 팀이고 이번 대회 우승 후보 중 하나”라면서도 “이번 다전제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는다면 T1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3일 뒤. G2의 자신감은 현실이 됐습니다.

8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MSI 브래킷 스테이지 하위권 2라운드에서 G2는 T1을 상대로 자신들이 준비한 경기 운영을 그대로 펼쳐 보였습니다. 시리즈 내내 탑 라인을 집요하게 공략했고, 교전 타이밍을 흔들었으며, 사이드 운영으로 T1의 판단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브로큰블레이드의 경기 활약. (사진=챗GPT AI 생성)
▲브로큰블레이드의 경기 활약. (사진=챗GPT AI 생성)
특히 승부를 가른 인물은 탑 라이너 ‘브로큰블레이드’ 세르겐 첼리크였습니다. 그는 2세트에서 초가스로 ‘도란’ 최현준을 강하게 압박하며 경기 흐름을 가져왔고, 4세트에서는 클레드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4세트 마지막 한타에서는 T1의 시선을 바깥으로 돌린 사이 홀로 넥서스를 파괴하는 과감한 백도어를 성공시키며 시리즈에 마침표를 찍었죠.

반면 T1은 바텀 듀오인 ‘페이즈’ 김수환과 ‘케리아’ 류민석이 분전했지만, 탑 구도의 열세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G2가 LCK를 무너뜨린 장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G2는 2017년과 2019년 MSI 정상에 오르며 유럽을 대표하는 국제전 강호로 자리 잡았고, 국제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LCK 강팀을 상대로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며 ‘LCK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강점'에 집중한 T1 vs '변수'를 준비한 G2

▲G2 '캡스' 라스무스 뷘터(왼쪽).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G2 '캡스' 라스무스 뷘터(왼쪽).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T1 역시 과거 국제대회를 지배했던 시절과는 같은 팀이 아닙니다. 지난해 스토브리그에서 핵심 탑 라이너였던 ‘제우스’ 최우제가 한화생명e스포츠로 이적했고, T1은 ‘도란’ 최현준을 영입하며 새로운 팀을 꾸렸습니다. 도란 역시 올 시즌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에 녹아들었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G2의 집요한 공략에 고전했습니다.

그럼에도 T1이 믿었던 강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수 구성은 달라졌지만, LCK가 오랫동안 쌓아온 안정적인 경기 운영은 여전히 팀의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한때 LCK를 대표하는 키워드 역시 ‘운영’이었습니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시야 장악과 오브젝트 관리, 정교한 한타 설계로 승리를 만들어내는 ‘교과서 같은 운영’은 한국 리그를 세계 최강으로 만든 가장 큰 무기였죠.

하지만 지금의 LCK는 과거와는 조금 다릅니다. G2 정글러 ‘스큐몬드’ 뤼디 세망은 “현재 한화생명e스포츠와 T1은 라인전부터 강하게 압박하고, 초반 교전으로 주도권을 잡는 LPL(중국 리그)식 플레이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 최근 국제대회 역시 초반 라인전과 정글 동선, 오브젝트 주도권이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메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시리즈에서 한발 앞서 있었던 쪽은 G2였습니다. G2는 정형화된 운영보다 상대의 판단을 흔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탑 라인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압박했고, 상황에 따라 과감한 사이드 운영과 교전 선택을 반복하며 T1이 가장 익숙한 경기 흐름을 만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밴픽에서도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G2는 ‘초가스’와 ‘클레드’처럼 상대의 허를 찌르는 선택을 적극 활용했고, 단순히 챔피언 상성만 따지기보다 경기 구도 자체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반면 T1은 자신들의 강점을 살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G2가 끊임없이 만들어낸 변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결국 승부를 가르게 된 거죠.

정말 LCK는 약해졌을까?

▲월드 챔피언십ㆍMSI 역대 우승 기록. (사진=챗GPT AI 생성)
▲월드 챔피언십ㆍMSI 역대 우승 기록. (사진=챗GPT AI 생성)
‘롤은 한국이 무조건 이긴다’는 공식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습니다.

라이엇게임즈가 주최ㆍ주관하는 롤 e스포츠 최대 규모의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LCK는 통산 9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가장 많은 정상에 오른 지역입니다. MSI에서도 LCK와 LPL은 각각 4차례씩 우승하며 공동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단순한 우승 횟수만 놓고 보면 LCK의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결승과 4강 진출 성적도 꾸준합니다. T1과 젠지e스포츠, 디플러스 기아(전 담원 기아), 키움 DRX 등 LCK 대표 팀들은 최근 국제대회에서도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 경쟁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달라진 건 LCK의 경쟁력이 아니라 국제대회의 경쟁 구도입니다. 과거처럼 LCK가 국제대회를 독식하는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LPL과 LEC 역시 언제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한 건데요. 한국이 약해졌다기보다 중국과 유럽이 한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혔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한국은 ‘롤 최강국’입니다. 국제대회 성적과 선수층, 리그 경쟁력만 놓고 봐도 LCK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입니다. 실제로 월드 챔피언십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매년 국제대회 우승 후보 역시 대부분 LCK 팀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세계가 LCK를 따라했다면, 이제는 세계가 LCK를 연구합니다. G2처럼 한국 리그 팀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강점을 무력화할 전략을 준비하는 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T1의 패배 역시 단순한 이변이라기보다 국제 e스포츠의 경쟁 구도가 달라졌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더 이상 ‘한국이라서 이긴다’는 공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누가 더 빠르게 메타를 읽고, 더 창의적인 전략을 준비하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시대가 됐습니다.

▲T1 '페이커' 이상혁.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T1 '페이커' 이상혁.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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