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보다 지속성…‘렉라자’ 신화 만든 조욱제의 버드나무 경영 [CEO 탐구생활]

입력 2026-07-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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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원 신화⋯기본과 신뢰, 꾸준한 실행으로 조직 변화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국산 항암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글로벌 성공과 국내 제약사 최초 연매출 2조원 돌파 등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유한양행이 쓰고 있는 국내 제약산업의 새로운 역사다. 그 중심에는 전문경영인 조욱제 사장이 있다. 그는 화려한 언변이나 강한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끄는 리더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기본과 신뢰, 꾸준한 실행으로 조직을 변화시키는 ‘버드나무형 CEO’로 평가된다.

6일 유한양행에 따르면 조 대표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평사원 신화’다. 1987년 유한양행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병원영업부장, 마케팅팀장, 약품사업본부장 등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치며 30년 넘게 영업과 마케팅 현장을 누볐다.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통 영업·마케팅 전문가이자 내부 사정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그의 경영 철학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현장에 답이 있다.” 조 대표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평사원으로 입사해 현장에서 오랜 기간 뼈가 굵은 만큼 누구보다 현장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경영을 이어가겠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최고경영자(CEO)가 된 지금도 시장 변화와 영업 현장의 작은 움직임, 실무 지표까지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 내부에서는 숫자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꼼꼼함과 실행력을 동시에 갖춘 ‘실무형 CEO’라는 평가가 많다.

조 대표의 리더십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또 다른 키워드는 ‘인테그리티(Integrity·진실성)’다. 그는 회사가 글로벌 무대로 도약할수록 화려한 성과보다 기본과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올해 경영 기조 역시 ‘수익 우선’을 앞세운 내실 경영이다. 외형 확대에만 집중하기보다 비용 구조를 점검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다지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평소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그의 업무 스타일도 이러한 경영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해 주요 경영지표를 점검하고, 사업부별 진행 상황과 시장 변화를 세밀하게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내기보다 조직의 기본 체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리더십이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 (사진제공=유한양행)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 (사진제공=유한양행)

조 대표의 ‘말보다 행동’이라는 철학은 유한양행의 대표 성공 사례인 렉라자에서도 확인된다. 조 대표 취임 이후 유한양행은 글로벌 파트너사인 존슨앤드존슨(J&J)과 협력을 통해 국산 폐암 신약 렉라자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이끌어냈다. 국산 항암 신약 최초로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에 진출한 성과이자, 국내 신약 개발 역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업계가 더 주목한 것은 렉라자의 상업적 성공보다 조 대표의 의사결정이었다. 유한양행은 2023년 건강보험 급여 적용 전 약 6개월 동안 렉라자를 폐암 환자들에게 무상 공급했다. 총 895명의 환자가 혜택을 받았고 지원 규모는 약 330억원에 달했다. 단기 수익만 고려했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 결정은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창업자 고 유일한 박사의 철학을 실천한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창업 정신을 현실에서 구현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조 대표가 유한양행의 기업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계승한 전문경영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렉라자의 성공은 회사의 체질도 바꿔놓았다. 글로벌 상업화에 따른 마일스톤과 로열티 수익이 본격화되면서 유한양행은 국내 전통 제약사 가운데 처음으로 연결 기준 연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자체 개발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다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결국 조 대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화려함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빠르게 변화를 만들어내는 리더보다 신뢰를 바탕으로 조직의 방향을 세우는 리더에 가깝다. 단기 성과보다 기본을, 보여주기보다 실행을 중시하는 ‘버드나무 경영’은 창립 100주년 유한양행의 가장 큰 자산으로 꼽힌다.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이 뿌리를 내리는 그의 리더십은 유한양행의 미래를 더욱 단단하게 지탱해줄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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