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질병 청정국·지역 재인정…동아시아 방역 의제 주도권도 확대

가축질병 방역이 축산물 수출과 국제 통상 신뢰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이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총회에서 항생제 내성 대응과 청정국 지위를 동시에 확인받았다. 제주도의 구제역 백신접종 청정지역 지위가 재인정되면서 수출 검역 협상에 필요한 국제 신뢰를 이어가게 됐고,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육상동물 항생제 내성 분야 협력센터로 새로 지정돼 동물질병 과학·방역 외교의 역할도 넓어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8일부터 22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93차 WOAH 정기총회에 참석해 이 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23일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농림축산검역본부의 WOAH 육상동물 항생제 내성 협력센터 지정이다. 항생제 내성은 사람과 동물, 환경을 함께 관리해야 하는 원헬스(One Health) 의제로 다뤄진다. 축산 현장의 항생제 사용과 내성균 관리는 단순한 방역 이슈를 넘어 식품 안전, 수출 검역, 국제 기준 대응과 맞물려 있다. 검역본부가 소·돼지·닭 등 육상동물 항생제 내성 연구와 분석 역량을 인정받은 만큼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감시체계, 기술지원, 국제 공동연구에서 역할이 커질 전망이다.
청정국 지위도 지켜냈다. 이번 총회에서 한국은 아프리카마역, 소해면상뇌증(BSE), 가성우역(PPR)에 대한 청정국 지위와 제주도 구제역 백신접종 청정지역 지위를 재인정받았다. 특히 제주도 구제역 청정지역 지위는 지난해 신규 인정된 뒤 다시 확인받은 것이다. WOAH의 청정 지위는 수입국이 축산물 검역 조건을 판단할 때 참고하는 국제 기준인 만큼 제주산 축산물의 수출 협상에도 방역 신뢰를 보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제주도 구제역 지위가 갖는 의미는 전국 단위 청정국 인정과는 다르다. 국내에서는 2023년 충북에 이어 2025년 전남, 올해 인천·경기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전국 단위 청정국 추진에 제약이 생겼다. 이에 정부는 지리적으로 분리된 제주도를 별도 지역 단위로 관리하는 전략을 택했고, 이번 재인정으로 해당 전략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 확인받은 셈이다. 다만 청정지역 지위가 곧바로 수출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수출은 상대국과의 검역 협상, 작업장 승인, 시장 수요가 맞물려야 가능하다.
국제 규범 논의에서도 한국의 관여 폭이 넓어졌다. 한국은 이번 총회 기간 WOAH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 핵심그룹 일원으로 선정됐다. 핵심그룹은 지역 전체 회의에 앞서 논의 의제 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ASF)처럼 국경을 넘는 가축질병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지역 방역 의제 설정 과정에 더 깊게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 것이다.

정부는 이 흐름을 동아시아 협력으로도 이어갈 계획이다. 2027년 7월경 한국에서 동아시아 수석수의관(CVO) 포럼과 한·중·일 수석수의관 회의를 열어 주요 동물질병 공동 대응과 정보 공유 방안을 논의한다. 회의에서는 AI, 구제역, ASF 예방·통제 전략과 함께 원헬스 관련 의제도 다뤄질 예정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동물위생규약과 매뉴얼 개정도 함께 논의됐다. 구제역과 돼지열병 청정국·청정지역이 축산물을 수입할 때 수입위험분석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 가금류 도축 시 전살 기준 명확화, 연어류 질병 청정지역 선언 조건 재설정, 양식장 휴지기 기준 정비 등이 의결됐다. 육상동물 진단·백신 매뉴얼에서는 구제역 백신 효력 평가 기준 통일과 백신 품질관리 강화, 접종 이후 효과·안전성 모니터링 강화 등이 포함됐다.
이동식 농식품부 방역정책국장은 “우리나라가 WOAH 항생제 내성 협력센터로 신규 지정되었고, 제주도 구제역 등 4개 가축전염병에 대한 청정국(지역) 지위가 재인증되었다”며 “우리나라의 동물질병 관리 역량과 국제적 신뢰를 다시 한번 확인받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동물보건기구 아시아태평양 지역 핵심그룹의 일원으로 선정된 만큼 동물질병의 방역과 검역분야에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