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상속 농지 사들여 청년농 임대…밭·과수원 매입 기준 완화

정부의 사상 첫 전국 농지 전수조사가 시작되면서 농촌 현장의 농지 보유 부담이 커지고 있다. 상속으로 농지를 물려받았지만 직접 농사를 짓지 않거나, 구두 임대차로 농지를 맡겨온 소유자는 조사 결과에 따라 매각이나 제도권 편입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올해 공공임대용 농지매입사업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늘린 것은 전수조사 과정에서 늘어날 수 있는 매도 수요를 흡수하고, 이를 청년농 등 실수요자에게 다시 공급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농어촌공사는 농지 소유자가 안정적으로 농지를 매각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용 농지매입사업’을 확대 추진한다고 20일 밝혔다.
공공임대용 농지매입사업은 고령 농업인이나 상속 등으로 농지를 보유한 비농업인의 농지를 공사가 매입한 뒤 청년농 등 실제 경작 수요자에게 임대하는 사업이다. 농지를 계속 보유하기 어려운 소유자에게는 매도 창구를 제공하고, 청년농에게는 초기 영농에 필요한 농지를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구조다.
올해 사업 예산은 1조6138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68% 늘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농어촌공사는 그동안 누적된 매입 대기 물량을 우선 해소하고, 신규 신청 물량도 신속히 매입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농지 전수조사와 농지 임대차 특별정비기간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농지 매각을 원하는 소유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농지시장에 변화가 생긴 배경에는 정부의 관리 강화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방정부와 함께 18일부터 전국 농지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올해는 1996년 1월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를 중심으로 소유·이용 실태를 점검하고, 내년에는 1996년 이전 취득 농지까지 범위를 넓혀 전체 농지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조사 방식도 과거보다 정밀해졌다. 기본조사에서는 행정정보와 위성영상, 인공지능(AI)을 활용하고, 심층조사에서는 드론까지 투입해 실제 경작 여부와 불법 임대차, 불법 시설물 설치 의심 농지를 가려낸다. 농지를 보유하고 있지만 직접 경작하지 않는 소유자 입장에서는 조사 이후 처분이나 임대차 정비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농지 임대차 정상화도 함께 추진된다. 농식품부는 18일부터 7월 31일까지 농지 임대차 특별정비기간을 운영하며 구두계약을 서면계약이나 농지은행 위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농촌 현장에서는 가족·지인 간 구두로 농지를 빌려주고 빌리는 관행이 여전히 적지 않은데, 전수조사가 본격화되면 소유자와 임차농 모두 계약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농어촌공사의 매입 확대는 단순한 예산 증액을 넘어 전수조사 이후 농지시장 충격을 줄이는 장치로도 해석된다. 투기성 농지와 불법 이용 농지는 가려내되, 농지를 계속 보유하기 어려운 소유자에게는 제도권 안에서 매각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사가 사들인 농지는 다시 청년농과 귀농인 등 실제 경작 의지가 있는 농업인에게 공급된다.
매입 가능 범위도 넓혔다. 그동안 청년농 수요가 높은 밭과 과수원이 농업진흥지역 밖에 있으면 밭기반정비사업이 끝난 농지만 매입할 수 있었다. 농어촌공사는 지난달 지침을 고쳐 경지정리나 밭기반정비가 끝나지 않은 밭·과수원이라도 농업생산기반정비사업을 통해 배수시설이나 농로 등 기본적인 영농 기반이 갖춰지면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 여건을 반영한 예외도 뒀다. 제주특별자치도에 한정해 읍·면 계획관리지역 농지도 예외적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적용했다. 농어촌공사는 앞으로도 매입 가능한 우량농지를 발굴해 농지은행을 통한 공급 기반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관건은 늘어난 매입 예산이 실제 청년농의 농지 접근성 개선으로 이어지느냐다. 청년농은 초기 자본 부담 때문에 농지를 직접 사들이기 어렵고, 임차 농지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쉽지 않다. 공공이 매입한 농지를 장기 임대 형태로 공급하면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지만, 지역별 수요와 농지 조건이 맞지 않으면 매입 물량이 곧바로 영농 정착 효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김윤 농어촌공사 농지은행처장은 “농지 매각을 고민하는 농지 소유자라면 공공임대용 농지매입사업을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농지를 매도할 수 있다”며 “공사는 매입한 농지를 청년농 등 실수요자에게 공급해 농지 이용 효율을 높이고, 농업구조 개선에도 이바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농지 매각을 희망하는 소유자는 농지은행 통합포털의 ‘농지 내놓기’ 서비스나 농지 소재지 관할 지사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는 매도신청서와 토지대장, 등기부등본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관할 지사가 대상 농지 여부와 매입 기준 적합성을 심사해 매입 여부를 결정한다.



